행복했던 기억은 남은 생을 살아갈 힘을 준다

박세진 울산 북구 그루매니저,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일자리발전 / 기사승인 : 2019-06-14 11: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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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매니저 워크숍

2019년 제7차 그루매니저 워크숍을 다녀와서

살다보면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외로운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난 5월 2일 제2기 그루매니저로 선발돼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하나이듯, 울산시의 시장이 하나이듯 울산 북구에 그루매니저가 유일하게 나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루매니저가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노라면 갑자기 막막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직 그루매니저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기엔 부족하기 때문일 테죠.


이 순간, 어깨 기댈 친구 한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렇게 함께할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산림일자리발전소는 우리를 워크숍에 초청합니다. 아마도 새로 시작한 일에서 느낄 고충을 이미 잘 알기 때문일 겁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고 해야 할까요. 6월 4일부터 5일, 1박 2일간 울주군 소호마을에서 열린 제7차 그루매니저 워크숍은 채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단했던 그루매니저 활동을 위로받는 따뜻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 워크숍에 참가한 그루매니저들이 울주군 상북면 소호분교 느티나무를 에워쌌다.

전국 24개 지역으로 대폭 확대된 그루매니저 2기

지난해 산림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일자리발전소. 2018년 1기 그루매니저 시범사업지역으로 선정된 울산 울주, 강원 인제, 경북 영주, 서울, 전북 완주지역에서는 지역당 평균 6개의 그루경영체를 선발하면서 일자리 창출사업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그리고 알찬 그루경영체를 발굴해냈기 때문입니다. 2019년엔 울산 북구를 포함 24개 지역에서 그루매니저를 선발해 좀 더 많은 그루경영체를 만들어낼 계획입니다.

 

▲ 소호체험휴양마을 앞 그루매니저들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산림일자리발전소 사업은 각 부처에서 지원했던 기존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과 다르게 ‘사람중심의 산림순환경제’를 통해 산림일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기존의 지원방식이 시설 등 하드웨어 중심의 지원으로 ‘시설투자→운영관리→단순고용’이었다면 사람중심의 산림순환경제는 ‘사람지원→운영관리→시설투자’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루매니저의 역할은 바로 그 ‘사람’을 지원하는 일입니다. 산림순환경제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인 게죠.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 익숙하지 않은 지원방식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상대방과 소통하는 시간이 그만큼 길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쉽지 않은 일을, 1기 그루매니저들은 어떻게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이루어낸 걸까 그저 존경스러운 마음이 먼저 앞섭니다. 오늘은 그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24명의 2기 그루매니저들이 울산 울주 1기 김수환 그루매니저가 터전을 이루고 있는 소호마을로 모두 모였습니다.

야생차 마을협동조합, 산촌유학 그리고 ‘철수에서 목수로’

소호마을은 모두가 알고 있듯 전국적으로 유명한 공동체운동과 산림사회적경제가 실현되는 ‘산촌마을’입니다. 15년쯤 되었을까... 생명의숲 활동가로 일할 때 소호마을에 터를 잡은 유영순 님과 야생차 만들기 동아리를 만들어 고헌산 일대를 헤매고 다녔던 것이. 야생차를 만들어 손에 손에 한 보따리 들고 가는 것에 환호하던 다른 분들과 달리 활동가였던 나는 유영순 님 댁 뒤편 작은 텃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바람에 서걱대는 나뭇잎 소리, 살랑살랑 춤추던 풍경 소리를 듣는 것에 마음을 충분히 위로받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워크숍 덕분에 태고의 기억 같은 소호마을을 찾아 오랫동안 천천히 걷고, 잊고 있던 밤하늘 올려다보면서 충분히 위안받았습니다.


1974년부터 20년간 진행된 한·독 국제협력 산림사업의 결과물인 소호 참나무 숲속 종료기념비를 방문하면서 워크숍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래된 숲답게 나뭇잎과 곤충의 사체로 폭신하게 삭여진 땅의 감촉이 무척 좋았습니다. 1984년 사업 종료할 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기념비에 둘러서서 단체사진도 찍었습니다.

 

▲ 소호마을 들머리에 있는 참나무숲 한독사업종료기념석 앞에서


그리고 곧 이어진 김종관 님(한국사유림발전연구회)의 한독산림경영사업기구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산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임도를 처음 만들었던 일, 4개 지역의 협업체에 조림하고 양묘, 표고, 싸리, 양봉 등 단기소득 사업을 벌였던 역사를 쭉 훑어보았습니다. 살아있는 증인 김종관 님의 오래전 사업종료 단체사진을 보니 괜히 가슴이 뭉클합니다. 평생을 한자리에서 묵묵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 오래된 당산나무처럼 느껴져서 그런가 봅니다.


김종관 님이 오래 동안 소호숲을 만들고 지켰다면, 새로이 이 역할을 자처한 울산산촌임업희망단 정병모 단장님의 ‘철수에서 목수로’라는 강의는 현대중공업 퇴직노동자들이 산림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철덩어리를 만지다가 이제는 나무를 만지는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준 정병모 단장님. 우여곡절도 많았고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높지만, 그 아름다운 시도에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주변의 산을 인간에게는 지속가능한 숲으로, 산에 살고 있는 생태계 동식물들에게는 안전한 숲으로 돌려주고 싶다는 지금의 다짐을 꼭 이루길 응원합니다.  

 

▲ 강의를 듣다 웃음이 터졌다.


제각기 다 다르게, 그래서 서로 기댈 수 있게

다음으로 이어진 강의는 2008년부터 울산생명의숲을 지켜온 윤석 국장님의 노거수 보전 활동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들었던 이야기이기에 ‘여전히 강의를 재미나게 잘하시는군’하면서 설렁설렁 들었는데, 제주숲길 이서형 그루매니저는 전체 강의 중에서 앞으로 활동하면서 벤치마킹할 가장 좋은 강의로 이것을 꼽더군요. 제주에 돌아가서 꼭 노거수를 매개로 사업을 펼쳐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시리 뿌듯해집니다. 내 식구 칭찬받은 것처럼 말이지요. 울산 노거수를 찾아서 오랜 시간 동안 발품 팔았던 윤석 국장님의 노고가 이렇게 인정받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적정기술을 통해 사회적경제 영역의 지평을 열고 있는 진일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연구소장님의 강의입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규모 은퇴 시기가 현실 문제로 닥친 울산의 사회흐름과 숲을 매개로 인생의 제2막을 열어갈 것을 제안하는 진일주 님의 강의는 거시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나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잠시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태양열교육협동조합은 이미 자리를 굳힌 다양한 숲공동체와 연결해 지역순환경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적정기술(필요 이상 소비되는 에너지를 줄여 적정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 에너지를 다시 나누는 순환형 기술)로 기여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자연생태계에 기여할 것인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 소호야생차 체험


행복했던 기억은 남은 생을 살아갈 힘을 준다

소호마을을 둘러보며 아침을 열고 다시 선배님들의 강의를 듣습니다. 소호마을의 시조라고 해도 무방한 유영순 님의 강의는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을 만큼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십여 년의 세월을 단 두 시간 만에 다 말할 수는 없었기에 교육생들의 입장에서는 궁금한 것이 더 많았던 모양입니다.


1998년 겁 없이 소호마을로 이사 와서 터전을 잡고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야생차 만들기(현재는 소호야생차협동조합)부터 산촌유학, 김장절인배추작목반, 소호마을 도서관, 소호마을센터 등 마을 곳곳에 만들어진 다양한 공동체 활동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원주민과의 갈등, 원주민 자녀세대들과의 갈등에서부터 새로 입주하는 귀촌 2세대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촌유학을 다녀간 많은 아이들과 나누었던 추억은 다른 어떤 강의보다 내게는 감동적이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혼자 유학하는 아이는 단지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소호에서 산촌유학을 경험했을 뿐이었답니다.


창의적인 인재로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부모님은 아이를 산촌 유학 후 도시로 데려와 독일에 유학을 보냈는데 혼자 힘겨운 유학 생활을 견뎌내는 시간을 유영순 님과 나누었답니다. “유학 떠나기 전 소호마을에 들렀을 때 밤늦게 마을 이웃을 찾아가 놀다가 친구 두 명과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산길을 걸어 내려왔어요. 밤하늘 별빛에 길을 찾아서. 그때 친구들이랑 들었던 찔레꽃이라는 노래는 잊혀지질 않아요.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그날의 그 밤길이 생각나요.” 덧붙여 ‘행복했던 기억은 앞으로 남아있는 생을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다’는 유영순 님의 말에 갑작스레 눈물이 솟아오릅니다. 마치 그 아이가 찔레꽃을 들으며 그때를 기억하는 것처럼 나의 깊은 곳에 숨겨둔 행복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 것 같습니다.  

 

▲ 소호마을 아이들이 그린 마을지도를 소개하는 김수환 울산 울주 그루매니저(마이크를 들고 있다)


그루매니저의 역할은 ‘같이 꿈꾸게’ 만드는 것

요즘 ‘그루매니저’가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많이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꾸는 꿈을 같이 꿔보자고 제안하는 사람’이라고요. ‘당신이 꿈꾸는 것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일이 내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그루매니저이지만,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서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잊고 있던 꿈을 꾸게 되었고, 잊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하자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호마을에서 함께 했던 워크숍도 나중에 힘겨울 때 꺼내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의 한 켠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박세진 울산 북구 그루매니저,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일자리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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