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 기사승인 : 2020-07-23 1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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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영래, 노무현, 김근태, 노회찬, 박원순.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고, 이제는 우리 곁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은 그중 김근태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회고하는 내용과 자료 등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해 소설가 방현석이 쓴 것이다. 방현석은 울산에서 태어나 신동엽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고 <당신의 왼편>, <하노이에 별이 뜨다>,<랍스터를 먹는 시간>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어린 김근태가 닭장에서 달걀을 훔쳐 나와 과자를 바꿔먹는 에피소드와 유별나게 머리를 깎기 싫어하는 아이였다는 누나의 진술을 통해 김근태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미묘하게 가려진 억압을 발견하는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아이였음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두물머리의 여름을 알리는 전령은 원추리꽃이었다. 새벽이슬을 머금고 초록 들판 사이로 무리 지어 피어난 원추리 꽃은 황홀했다. 허리 높이로 솟아오른 늘씬한 원추리의 줄기 끝에 달린 꽃은 새침하고 화려했지만 도도하진 않았다. 바람은 원추리가 도도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바람은 쉴 새 없이 방향을 바꾸어 가며 높이 솟아오른 원추리를 흔들었다. 흔들리며 피어나서 흔들리며 빛나다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을 때 지는 꽃이 원추리였다.” 소설 서두에 이 문장이 나온다. 김근태는 원추리꽃 같은 사람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는 1970~80년대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 전태일 분신,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농성, 광주민중항쟁 등의 진행 과정이 생생하게 들어있다. 한국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삼국지 못지않게 많은 인물이 등장해 서슬 퍼런 독재와 억압의 두터운 얼음장에 균열을 내는 과정이 실화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재미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지금도 정치적 사건의 굽이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소환되고 있는데 김근태의 경우는 아래의 이유 때문이라고 주변인들은 회고한다. 


김근태는 수배 시절 보일러 자격증을 따서 염색 공장에 취업했다. 보일러실은 12시간 맞교대였고, 내부공간은 한 사람이 의자를 놓고 앉을 만큼 좁았는데, 김근태는 그 안에서 만화책과 삼국지 같은 책 속에 공부할 책을 끼워두고 수배시절의 무력감과 싸우면서도 치열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운동권 사람들은 조직 활동을 많이 하느라고 꾸준하고 철저하게 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김근태는 쫓기면서도 항상 공부하는 형이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사람들을 지도하고 도움을 주는 위치에 설 수 있었어요. 소위 말하는 정치적인 영향력보다는 내면적인 실력 같은 것이 김근태가 지도력을 발휘하는 동력이 되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김근태는 정치인으로서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김근태를 떠나보내고 나서 김근태를 재평가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역설적이죠. 살아 있을 때는 가치를 잘 모르다가 떠나고 난 빈자리를 보고서야 그의 가치와 크기를 뒤늦게 깨닫는 거지요. 그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가 가지고 있었던 단단한 내용, 그걸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내공을 가진 사람이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박성진)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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