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껍질의 추억

최미선 한약사 / 기사승인 : 2021-12-20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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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약재 산책

며칠 전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길거리에서 귤을 내놓고 팔던 어린 형제 이야기를 미소 지으며 읽은 기억이 난다. 그 형제의 나이 즈음 내 어린 시절엔 귤이 흔한 과일은 아니었다. 겨울이 되면 할머니가 사과 한 박스를 사놓고 긴긴밤에 하나씩 꺼내주었다. 그러나 귤은 아주 가끔 특별식을 주듯이 하나를 까서 동생과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귤껍질은 향이 좋다며 자는 머리맡에 널어 두셨다. 말린 귤껍질은 화로의 주전자에 넣어 종일 보글보글 끓였다가 놀다가 볼이 발갛게 얼어온 우리에게 억지로 마시게 했다. 할머니만의 감기 처방이었다.

 


귤껍질은 한방에서는 귤피 혹은 진피라고 부른다. 진피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는데, 실제로 오래 묵은 진피는 거의 보질 못했다. 진피는 맛이 맵고 쓰고 성질은 따뜻하다. 맵고 따뜻한 성질은 기(氣)를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를 소통시킨다 함은 스트레스나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서 기육이 뭉치고 소화가 안 돼 답답하며, 담이 생성되고 두통이 있거나 몸이 무거운 증상 등을 해소시키는 기능이 있다는 말이다. 


진피는 소화기계에 작용해 구토하거나 메스꺼움, 소화불량에 효능을 보인다. 특히 생강과 진피를 넣어 끓여 임산부의 입덧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쓴다. 감기 증상에도 효능을 보이는데, 연약해 보이는 소음인 경향 사람의 몸살이나 기침 가래에 효능이 좋다. 가래나 객담 또는 담을 삭히는 효능이 뛰어나 한방에서 담을 삭히는 처방인 이진탕의 주요 약재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귤껍질을 먹기 꺼리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재배할 때와 유통할 때 약물 처리가 걱정돼 그런 듯하다. 일단 귤껍질을 식용으로 쓰려면, 먹기 전에 소금이나 소다 등으로 세척한 다음 말린 후 20여 분 정도 끓이면 잔류 약물이 거의 휘발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현재 유통되고 있는 귤은 우리가 약으로 먹던 그 귤은 아니다. 옛날 진피로 쓰이던 귤은 제주 토종 귤로 크기도 작고 신맛이 강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귤껍질도 옛 진피와 유사한 효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은 유난히 밖에 바람 소리가 스산하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할머니가 까 주는 귤 하나가 그만큼 간절한 날이기도 하다.


최미선 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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