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 씨

조숙향 시인 / 기사승인 : 2019-08-14 11: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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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우리 부부가 손주를 데리고 중금 씨의 복숭아 가게에 들렀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남편은 그곳이 중금 씨네 가게인 줄은 몰랐다. 다만 중금 씨가 근방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다고 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주머니 한 분이 복숭아를 선별하고 있었다. 복숭아 꽃봉오리 같은 땀방울을 송글송글 흘리는 모습이 무척 건강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지 남편은 그 아주머니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중금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가게 안이 떠들썩할 정도로 큰 웃음보가 터졌다. 


아주머니는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다며 오늘 꼭 만날 사람들이었나 보다고 말했다. 중금 씨는 자신의 남편이라며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다소 머뭇거리며 고향에서 함께 살았던 형님이라고 말했다. 고향 형님이라는 말이 퍽이나 정겨웠나 보았다. 아주머니는 살갑게 일손을 내려놓고 중금 씨에게 곧장 전화를 넣었다. 전화벨 소리가 한참을 울려도 전화를 받는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아마 하루 일을 갈무리하느라고 중금 씨는 전화를 받을 새도 없이 바빴던 모양이었다. 


남편이 찾던 고향 형님 중금 씨는 머슴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어린 나이에 가장이 돼야 했단다. 중금 씨가 마을의 부잣집에 들어온 것은 열다섯 살 정도 됐을 때였다. 새경으로 일 년에 쌀 서너 가마니 받기로 하고 말이다. 부잣집의 일은 물론이고 주인아저씨 대신 마을 품앗이를 도맡아 했다고 했다. 그는 성실한 소처럼 군소리 없이 다부지게 일을 쳐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중금아 그렇게 불렀다. 중금 씨는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고 언제나 그냥 슬며시 웃어넘기기 일쑤였단다. 따져보면 중금 씨의 친구나 동생뻘이 될 나이들인데, 모두 아랫사람 부리듯 서슴없이 하대를 하곤 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조목조목 짚어가며 인권을 운운하기에는 그 시절이 역부족이었다고 시절만을 탓해야 할까.


중금 씨가 속내를 보인 것은 딱 한 번이었다고 했다. 추수를 앞둔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다. 중금 씨의 또래들이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있었단다. 지게를 지고 꼴을 베러 나오던 중금 씨가 논두렁에 서서 또래들이 시내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장승처럼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남편은 평소 중금아 하고 아이들이 놀려도 씩 웃던 중금 씨의 외로운 속내를 처음으로 보았단다. 논두렁에 맺힌 이슬처럼 보이더라고 말했다.


우리 부부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복숭아 가게를 다시 들른 것은 어둠이 짙어가는 밤이 돼서였다. 중금 씨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착한 선비 같은 첫인상에 나는 움찔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 중금 씨를 상상하고 있었다. 왠지 세상살이에 많이 찌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소한 체형에 실린 차분한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밝음이 오히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나는 무색해졌다.


현재 중금 씨가 복숭아 과수원을 하고 있는 지역의 땅값이 많이 올랐기에 이젠 풍요롭게 살고 있을 거라고 우리 부부는 생각하고 있었다. 중금 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애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다 보니 땅을 살 형편이 못 됐단다. 지금도 남의 집 땅을 빌어 과수원 농사를 붙이고 있다고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 뒤편에 서린 인생의 노곤함이 엿보여 마음이 아릿했다. 그 옛날에 남편이 자신에게 중금아라고 불렀을 터인데 마치 친형 같았다. 손수 농사지었던 복숭아를 듬뿍 챙기고 승용차에 타고 있는 우리 손자에게 다가와서 용돈까지 집어주었다. 미안하고 감사한 내 마음이 복숭아 위에 얹혀졌다.


조숙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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