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령(三花嶺)의 차 공양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0-08-13 11: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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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지난해 중양절(重陽節 음 9월 9일) 제31회 충담재(忠談齋)가 경주 첨성대 잔디밭에서 열렸다. 오래 전부터 마음 한 구석 숙제처럼 남아 있던 바람이라 달려갔다. 경주가 고향이고 차를 좋아한다지만 31회를 이어온 차(茶) 행사에 이제서야 참여하게 돼 좀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찾은 것이다. 경주신라문화원이 주최하고 예다원, 선다회, 원정차문화원, 다임차예절원이 주관하는 충담(忠談)스님께 차례(茶禮)를 지내는 행사였다. 충담사(忠談師)도 있고 차(茶)도 있고 제사(祭祀)도 있었지만 삼화령의 차 공양(供養) 설화 속에 담긴 교훈과 역사의 향기 그리고 신라인의 신앙은 담아내지 못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없었다. 긴 시간 동안 말이다. 흔히들 말하는 다도(茶道) 시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역시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차인(茶人)들이 충담스님께 차례지내는 행사일 뿐이다. 너무 큰 실망에 기운이 쭉 빠진 상태로 집이 아닌 삼화령으로 걸어갔다.


선덕왕 때 석생의(釋生義)라는 스님은 도중사(道中寺)에서 살았는데 꿈에 어떤 승려가 나타나서 남산으로 끌고 올라가면서 풀을 묶어 표시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산의 남쪽 골짜기에 이르렀는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청컨대 대사께서는 꺼내다 산마루 위로 옮겨 주시오.” 꿈을 깨고 나서 그는 도반들과 함께 표시를 따라 찾아가 한 골짜기에 이르렀다. 땅을 파자 돌미륵이 있는지라 꺼내다가 삼화령 위에 모시고 절을 지으니 생의사(生義寺)다. 경주박물관에 가보면 삼화령 미륵부처는 천진난만한 어린 애기부처다. 충담선사는 이 애기부처와 자주 찻자리를 한 것이다. 삼월삼짇날과 중양절만 아니라 틈틈이 삼화령을 찾고 귀여운 애기부처와 함께 차를 나누며 미륵이 가져올 신천신지를 꿈꿨을 것이다. 내가 차 공양이라 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생각이다. 향가의 작가로 알려진 충담 대선사의 구도의 세계를 헤아려 보면서 감히 그렇게 표현 한 것이다.


충담재(忠談齋)에 참여한 내가 원했던 바는 왕과 함께한 찻자리에서 충담사가 불렀던 향가 <안민가(安民歌)>를 듣고 이 시대의 진정한 소통 문제를 고민하고픈 것이었다. 왕과 신하와 백성이 함께 찻자리에 앉아 미륵세계를 꿈꾸며 안민가를 부른 것이 너무 좋아 보여 그것을 기대하고 간 것이 잘못이었다. 


삼화령의 차 공양은 기록상 최초의 차 공양 이야기요 차례(茶禮)의 기원이라 할 수 있겠다. <삼국유사> ‘생의사 석미륵조’에는 경덕왕 때 충담사(忠談師)란 스님이 매년 삼짇날과 중양절에 이곳에 있는 미륵부처에게 차(茶)를 끓여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느 해 삼짇날 경덕왕이 신하들과 함께 귀정문 누각에 올라 망태기를 걸머진 스님 한분을 맞아들이는데 그 망태기 안에는 다구(茶具)가 들어있었다. 왕이 물으니 충담사(忠談師)라 했다. 왕이 다시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으니 “소승은 삼짇날과 중양절에 금오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차를 달여 드립니다. 오늘이 삼짇날이라 차를 공양하고 오는 길입니다.”했다. 왕이 자기에게도 차 한 잔을 줄 수 있느냐고 하니 충담은 곧 차를 달여 올렸는데 맛이 고상하고 그윽한 향이 있었다. 차를 마신 왕이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노래를 지어 달라고 하니 충담은 즉석에서 노래를 지어 바쳤는데 향가 <안민가’(安民歌)>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스런 어머니시라. 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라 하신다면 백성이 그 은혜를 어찌 알리. 아아! 임금답게 산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 안은 태평하리이다.”


경덕왕과 신하들 그리고 충담사는 찻자리를 마련하고 차를 나누며 안민가를 불렀던 것이다. 잠시나마 미륵세계가 현현(顯現)한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 소통의 공간이다. 충담사의 차 공양은 어린 백성을 향한 차 공양이요 하늘(미륵세계)과 땅과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소통의 자리인 것이다. 천진한 미소의 애기부처에게 차 한 잔 올린 충담사, 차는 이처럼 신(神)과 사람을 감동시킨다. 나는 충담사와 차의 관계를 안민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청와대 상춘재에서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허름한 촌로가 함께 앉아서 차를 마시며 안민가를 부르는 미륵세계를 꿈꿔본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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