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0년을 맞아 남겨진 숙제들

배문석 / 기사승인 : 2020-05-22 11: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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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70주년과 울산보도연맹 학살

우리는 지난 2월부터 3개월 동안 가장 오랜 시간 은폐됐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을 진실한 마음으로 마주하고 노력했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하는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을 다시금 기억하는 과정이었다. 


한국전쟁이 국군과 인민군,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정규군끼리만 총을 겨눈 게 아니라, 자국의 국민에게도 향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세계사로 보면 냉전이 시작된 후 벌어진 첫 이념전쟁이며 양쪽 진영의 정부와 군대에 의한 민간인 사살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동안 보도연맹 학살에 대해 말을 꺼내면 그 끔찍한 과정과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실을 뒤섞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북한군은 얼마나 많은 민간인을 죽였나?’ ‘전쟁은 누가 시작했냐?’ ‘야산대(빨치산)은 얼마나 잔인했나?’와 같은 문제를 벗어난 반문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민간인 학살로 그어진 상흔을 안고 생존을 이어간 이들이 있다. 울산에서 벌어진 학살은 전국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만큼 큰 학살이었다. 전향과 자수를 하며 믿었던 국가에 의해, 회유와 포섭 그리고 강압에 의해, 읍장과 면장 그리고 경찰을 믿어서 들어갔던 보도연맹이 학살의 덫이 될 줄 몰랐던 이들 중 일부가 살았다. 학살당한 다수의 유족이 겪은 일들은 거듭 말할 필요 없이 생지옥이었다. 


우리가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대면하는 것은 단지 상처를 헤집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평화의 마음과 같다. 그리고 야만이 점령한 세상이 아니라 인권이 우선되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직권조사로 시작된 보도연맹학살 조사결과가 가장 먼저 나왔던 울산은 국가의 사과도 맨 먼저 받았다. 2008년 1월 24일 울산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의 책임을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 ‘울산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영상으로 사과한 노무현대통령
▲ 노무현 대통령이 울산보도연맹 학살사건에 대해 영상 사과한 메시지 전문

 

울산 유족들은 2008년 6월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2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선고 공판이 열려 1심에서 승소했다. 한국전쟁 기간 보도연맹 학살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울산보도연맹 사건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1심 결과 후 6개월 뒤인 2009년 8월 18일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유족들이 패소했다. 국가배상 청규시효가 끝났다며 “사건 발생 시점은 1950년으로 손해배상 소멸 시효인 5년을 훨씬 경과했다”는 고등법원 재판부 선고 내용이었다. 그 뒤 다시 2년 가까이 지루한 시간을 거쳐 2011년 6월 30일 대법원은 국가의 법적 책임을 최종 인정하고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2011년 6월 30일 선고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던 2007년 객관적으로 유족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봤다. 그리고 여기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어떠한 경우에도 법에 의한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는 것도 어겼다고 적시했다. 

 

▲ 진실화해위원회 종합보고서 2010년

그리고 오랫동안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처형자 명부 등을 3급 비밀로 지정해 진상을 은폐한 국가가 이제 와서 뒤늦게 유족들이 집단 학살의 진상을 알아 소송을 제기한 것에 소멸시효를 주장하여 채무이행을 거부한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고 밝혔다. 파기 환송 후 울산 유족들이 최종 승소한 때가 2012년 8월 30일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매우 긴 4년이다. 결과로 받아든 배상금은 유족들이 대법원까지 가는 동안 사용한 각종 비용을 제외한다면 금전적 보상은 많지 않았다. 배상 결과는 학살희생자에 대해 8000만 원, 배우자에게는 4000만 원, 부모와 자녀에게는 800만 원, 형제·자매에게는 400만 원씩 배상해야 하고 희생자가 사망했을 경우 배상금은 상속인에게 주도록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민으로서 받아야 할 사과를 사법판결이란 형태로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보도연맹 학살 사건 직권조사를 마치면서 국가에 권고한 내용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 진실화해위원회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권고


울산광역시는 2020년 하반기에 한국전쟁민간인학살 위령탑을 건립하겠다고 2019년 5월 7일에 밝혔다. 장소는 중구 약사동으로 3억 원가량의 예산을 확보한 시는 부지 300㎡에 높이 5m, 폭 8~10m의 위령탑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민간인학살이 벌어진 다른 시, 군의 경우 대부분 위령탑이나 추모비 그리고 평화공원이 조성됐는데 울산은 늦은 편이다. 장소가 보도연맹 학살과 관련해 아무런 역사적 맥락이 닿지 않는 곳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궁금하며 울산시민이 그곳에서 도시의 아픈 역사를 바로 대면하게 될지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다. 


추모기념물이나 공간만큼 중요한 것이 미처 다 조사하지 못한 숙제를 푸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부 차원의 ‘제2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것은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피해자들이 배상도 중요하지만, 아예 신청조차 하지 못한 더 많은 피해자와 유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정리기본법을 개정해 소위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의를 설립하고 진실규명활동을 더 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져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이 많이 발의됐다. 그리고 20대 국회의 마지막 행정안전위위원회 전체회의가 5월 19일에 열렸고 ‘피해자 배상’ 등 몇 가지 부분을 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기간을 최대 3년으로 연장해 다시 활동할 수 있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20일 통과가 유력해 보인다. 

 

▲ 한국전쟁 전후 울산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조감도


울산광역시도 지방정부로서 과거사 조사에 대한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 한다. 보도연맹 학살에 대한 조사결과와 국가 배상이 가장 빨랐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못한 이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전쟁 70년에 맞춰 광역시와 구·군에서도 형식적인 행사에 머물지 않고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지역 공감대 형성을 위해 다양하고 실질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


배문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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