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차 태평후괴(太平猴魁)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0-07-09 11: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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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사람은 누구랑 만나고 어울리는가에 따라 인성(人性)이 결정되고 삶의 내용이 달라진다. 동양의 제왕학(帝王學)이라 일컫는 <정관정요>에는 ‘무너지는 담장 밑에 서지 마라’고 하면서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요즘은 개인주의의 팽창과 어려운 사회 환경 등으로 인해 더불어 함께하는 어울림의 문화가 자꾸만 소멸되고 있어 안타깝다. 옛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모범으로 ‘지란지교’(芝蘭之交)를 말하고 꿈꿨다. 지란지교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사귐’이란 말인데 벗 사이에 높고 맑은 사귐의 뜻을 갖고 있는 사자성어다. 함께 있어 서로를 빛나게 하고 더욱 맑고 더욱 향기롭게 하는 것이다. 


차나무도 함께 있음으로 더 맑고 더 향기로운 것이 있다. 중국 안휘성 황산시 태평현(太平縣)이 주산지인 태평후괴(太平猴魁)라는 차다. 눈으로 마시는 차라고도 하는 태평후괴는 원숭이(猴)를 훈련시켜 찻잎을 따는 데 으뜸(魁) 되는 차라는 의미다. 지난해 친구와 함께 황산 여행을 할 때였다. 차창가로 보이는 산이라는 산은 모두 푸른 대나무로 덮여 있었다. 순간 나는 설명의 필요를 느끼지 않고 중국 10대 명차인 태평후괴 차를 알 수가 있었다. 대나무와 함께 자란 차이기에 아마도 대나무의 영향으로 곧게 높이 자라서 사람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 많이 자라는 원숭이를 훈련시켜 찻잎을 땄을 것이다. 그래서 이 찻잎은 다른 찻잎과는 달리 대나무 잎처럼 길쭉하고 빳빳하다. 그리고 황산 태평 지역은 야생 난(蘭)이 지천으로 있어 차나무와 함께 더불어 자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명 원숭이 차라 불리는 후괴차(猴魁茶)는 안휘성 황산시 태평현 후갱 봉황산, 계공산, 태평호반에서 주로 생산된다. 대나무와 난과 함께 자라서 그 맛이 깔끔하고 시원하며 뒷맛이 달고 떫지 않다. 향(香)은 대향(竹香)과 난향(蘭香)이 은은히 스며들어 그윽하다. 엽저는 대나무 기운으로 인해 곧고 길며 납작한 것이 특징인데 그 길이가 7∼10㎝ 정도 된다 그래서 이 차를 우릴 때는 차호(茶壺)를 쓰지 않고 크고 긴 유리컵을 이용한다. 유리컵 속에 있는 찻잎이 흡사 다시마처럼 생겨서 아내는 원숭이 차 태평후괴를 다시마차라 부른다. 나는 보는 즐거움이 있어 이 차를 더 아끼고 좋아하게 됐다.


태평후괴는 제다과정에서 유념(揉捻)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포성(耐泡性)이 다른 녹차보다 높고,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도 떫지 않다. 일 년에 단 한 번 봄에 잎을 따는 것이 다른 차와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커피에서 ‘고양이 똥 커피’라 불리는 ‘루왁’이 고가(高價)인 것처럼 녹차에서 원숭이가 딴 차 태평후괴가 고가(高價)여서 비교하면 재미가 있다. ‘고양이 커피와 원숭이 차’. 루왁이 고양이가 먹고 난 뒤 배설물에서 조금 발효된 커피라면 태평후괴는 원숭이가 딴 잎으로 특별히 만든 차다. 


여행 중 황산에서 당연히 맛 볼 수 있다고 여겼던 연둣빛 탕색의 원숭이 차를 만나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관광지에 고급차를 내어놓지 않는다. 저들이 먹기에도 모자라는 귀한 고가의 차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팔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를 졸라서 차 시장으로 갔다. 그런데 차 시장에서도 규모가 있는 차청(茶城)에 가서야 이 후괴차(猴魁茶)를 만날 수가 있었다. 


옛날에는 선비가 고고하게 살고 있는 집을 ‘난향지실’(蘭香之室) 이라고 했다. 선비의 고고한 인품이 난향과 더불어 방안에 가득함을 말한 것이다. 청라마을 청허당(淸虛堂) 차실(茶室)에는 법일(法一) 선사가 쓴 ‘다향만실’(茶香滿室)이라는 액자가 있다.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의 인성(人性)이 차향처럼 맑고 향기롭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걸어 둔 것이다. 차나무가 대나무와 난초를 만나 함께 어우러짐으로 연출하는 맛(味), 향(香), 멋(形), 기(氣)의 조화를 원숭이의 수고로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오늘도 금란지교(金蘭支交)를 꿈꾸며 다향만실에서 원숭이의 고마움을 담아 차 한 잔 내리고 싶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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