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야 하는가

박가화 수필가 / 기사승인 : 2022-01-04 0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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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은 늘 남다르다. 한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뒤돌아보고 다가오는 새 삶에 설렌다. 사실 날이 바뀐다고 딱히 새로울 것도 없음을 잘 알면서도 괜스레 용기를 북돋워 보게 된다.


지난해, 나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적 한계에 힘이 빠져 “왜 하필 내게~”라는 공허하고 답 없는 질문들로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했다. 살면서 행복할 땐 그 이유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의 높은 파도에 휩쓸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그 이유를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끊임없는 물음들로 고뇌하게 된다. 결국 인간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고 만다.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차피 우리 모두가 죽을 운명이라면, 우리가 살면서 이룬 어떤 것도 남지 않을 운명이라면, 애초에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써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을 면치 못함에도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 


독일의 도덕철학자 미하엘 하우스켈러가 자신의 책 <왜 살아야 하는가>의 서문에서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그는 윤리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허용되거나 허용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따지기보다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탐구하기를 좋아한다. 사실 이런 궁극적인 질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물어온 질문이라 전혀 새로울 것은 없다. 궁극적 의미는 한계적 존재인 인간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의 핵심을 파고드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지만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에 궁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이 책에서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섰던 10인의 철학자들의 깊은 사유와 삶의 고뇌를 들어 본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에서 궁극적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삶에 관한 이 의문은 다른 누군가가 우리 대신 답해 줄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책에 등장하는 대답들은 단지 세계와 세계 속 인간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하는 가설로서 읽고 이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작가는 삶이라는 질문은 정답이 아닌 표현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첫 장은 쇼펜하우어다. 우리에게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그는 세계는 지극히 나쁜 곳이며 그렇다고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고통과 고난은 삶 곳곳에 만연하며 삶의 본질 가운데 속한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에게 삶은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중 최악의 세계 속에서 참을 수 없는 비참함이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고통을 겪을 운명 속에서도 다행히 한가지 탈출구가 존재하는데 그것을 “의지의 부정”이라 부른다. 모든 고통은 우리의 의지가 생존과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진정한 삶의 목적은 그런 우리의 의지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섯 번째 장은 니체다. 니체는 위험한 삶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에 대해 말한다. 19세기 말엽 서유럽을 지배하던 세계관은 유물론과 인본주의였다. 신을 믿었던 시대에서 사람들이 사실상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믿는 것을 관두게 되었다. 그 모호한 상태를 끝내기 위해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우리가 신이 없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현실에 따르는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존재하던 것을 파괴하지 않고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가 없으며,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은 악으로 여겨지지만 저지를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사실은 비극이라 여겼던 삶이 희극이라는 점, 삶이 웃음을 터뜨릴 만한 무언가라는 점, 우리가 유쾌하면서도 무심한 태도로 삶을 탐험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삶을 영원히 긍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래, 다시 또 해보자!”라며 용기를 내기만 한다면 죽음 자체까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홉 번째 장은 비트겐슈타인이다. 오늘날 비트겐슈타인은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20세기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갈구한 것은 “진실한 삶”이었다. 진실한 삶이란 행복한 삶이기도 했다. “행복을 얻기를 원한다면 무엇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죽음도 포함된다. 오직 시간 속이 아니라 현재 속을 살아가는 삶만이 행복하다. 현재의 삶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의지하는 존재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신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행복을 얻는 비법을 이론적으로 밝혀낼 수는 없다.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매 순간 존재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이 스스로 멈출 때까지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 속에서 살면 된다고 그는 전한다. 


열 번째 장은 알베르 카뮈다. 그의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인간의 필요와 욕구, 야심과 열망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세계는 냉정하고 냉혹하다. 우리 인간이 의미를 갈구하도록, 무엇이든 이해하기를 갈구하도록 구성된 존재임에도 세계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카뮈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원하는 것과 세계로부터 얻는 것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리켜 부조리(absurd)라고 부른다. 그는 이런 부조리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것이라 규정하며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답을 독자에게 던진다. 


저자는 열 개의 장 중 어떤 장에도 결론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독자가 직접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인생이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폭풍우 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끔 삶이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허무에 빠질 때, 오히려 어두워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삶에 관한 질문들을 읽어볼 수 있는 이 책을 권해본다. 어쩌면 삶이라는 바다에서 열 명의 사상가가 흔들어주는 부표 같은 희망의 깃발을 보며 또다시 어기차게 노를 저어 나가게 될지 모른다.


박가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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