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따따따 따따 따 따따따

배문석 / 기사승인 : 2019-08-22 12: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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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후감

기존 흥행작과 차별한 새 재난영화

이 정도까지 잘 나갈 줄 알았을까? 7월 말에 개봉 후 20여 일이 지났는데도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개봉 18일 만에 700만 명이 관람했고 ‘천만영화’를 향해 순항 중인 <엑시트>. 기존 재난영화들과 남다른 차별화 전략을 살펴보면 재미가 배가된다. 

 


이야기 구조는 간단한다. 국제신도시의 뷔페 ‘구름정원’에서 잔치를 끝내고 용남(조정석) 가족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무렵 갑자기 도시 전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퍼진다. 몸에 닿기만 해도 발작을 일으키고 들이마시면 사망으로 직결되는 초특급 재난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용남은 뷔페의 매니저로 일하는 대학시절 산악부 후배 의주(윤아)와 함께 가족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눈물겨운 탈출계획을 시작한다.
탈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막혀 암벽등반을 하듯 건물 벽을 타고 올라야 했고, 가족들은 소방헬기를 타고 탈출했지만 용남과 의주는 수용할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서 남게 된다는 것. 그리고 대피시켜야 할 시민들이 많아 두 사람에게 헬기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상황이 겹쳐진다. 결국 두 사람이 서로를 지탱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행보를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탈출은 성공한다. 그리고 이 성공이 굳이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다는 게 영화의 장점이자 다른 재난영화와 차별점이 된다. 험난한 장벽은 있지만 결국 넘어설 거란 긍정의 코드가 계속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가족이나 연인을 앞세운 신파를 자제한 것도 돋보인다. 게다가 ‘고구마’를 먹이는 등장인물과 악역도 최소화했다. 또 대부분 재난영화에서 앞세웠던 엉망인 국가 시스템이나 탐욕스런 자본도 드러내지 않았다. 


성공한 재난영화들은 대부분 사회비판이 배어들어 있었다. 거대한 쓰나미에 속수무책으로 쓸려갔던 <해운대>(2009)에는 무능한 관료가 있었고, 세상 사람이 온통 좀비로 변해버린 <부산행>(2016) 기차엔 이기적인 고위층이 동승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차 <설국열차>(2013)에는 꼬리칸과 황금칸이 계급을 상징했으며, 핵발전소 폭발로 국민들이 피난 가는 <판도라>(2016)에선 상황 은폐에 목숨 거는 핵마피아가 있지 않은가. 

 


악당들은 사회 시스템인데 반대로 희생자들은 모두 가족을 먼저 구하려는 보통 사람들인 것도 공통분모였다. 물론 <엑시트>도 보통사람이 주인공이고 가족 사랑이 끔찍하다. 그러나 차이는 눈살이 찌푸려지고 보기 힘든 상황을 펼쳐놓아 ‘보통’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그 대신 맨몸을 사용해 최소한으로 주어진 구조장비를 가지고 유독가스로 가득 찬 도시를 빠져나가는 행보가 그려진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유쾌와 뭉클함의 경계를 넘나든다. 다른 약자에게 구조를 양보하는 미담도 쿨해 보이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국민이 다 함께 응원하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됐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심지어 ‘따따따’라고 긴박한 상황에 외치는 SOS 신호마저 따라하는 관객들이 미소를 지을 정도다.

 


물론 설정이 과도한 것도 분명 있다. 상황이 결말로 향하면서 약간은 무리수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눈에 띈다. 진지한 이들은 너무 비판정신이 없는 오락영화를 만들었다고 시비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TV 생중계로 목격한 것 외에도 수많은 재난사고 소식을 보고 듣지 않았나. 굳이 회초리를 높이 치켜들지 않더라도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주인공, 청춘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관객들에겐 비통함에서 한 발 나아가 절박한 뜀박질이 결국 안착하는 순간에서 더 큰 울림을 찾는 게 아닐까.

 

배문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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