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없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19-08-16 1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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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옆에서 지켜보니 남편에게 휴가는 여름 극기훈련이다. 회사에 가지 못해 온종일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목격한다. 남편은 사건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남편의 빨간불이 잦아지면서 면역력도 떨어지는지 비염 증상도 심해진다. 참다못해 “왜 자꾸 사고를 치니!” 아빠의 호통에도 아이들은 본디 제 길을 가듯 기록을 갱신한다.


휴가에 앞서 그 전날에 카페에 갔다. 아이들과 카페에 가는 건 민폐이기 때문에 잘 가지 않는다. 7살, 4살인데 이제 카페에 데려가도 괜찮겠지. 아이스크림과 생크림이 올려진 와플이 먹고 싶어서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와플이 나오기도 전에 달려있는 조명이 작은아이 머리에 부딪히면서 깨졌다. 다행히 아이는 다치지 않았다. 아이를 확인하고 곧바로 카운터로 내려가 설명을 드렸다. 평화로웠던 카페에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주문을 취소하고 싶은데 와플은 구워지고 있다. 사장님과 통화가 길어지는 알바생, 쏟아지는 시선들, 얼어버린 작은 아이, 유리조각에 손을 대는 큰아이, 난감한 우리 부부. 차마 같은 공간에 있기가 눈치 보여 실외 자리에서 와플과 하필 뜨거운 음료를 마주했다. 아이들은 속죄하듯, 부부는 화를 꾹꾹 누르듯 말없이 먹었다. 전화를 받고 사건 현장으로 사장님이 오셨다. 연락처를 남기고 사과드리면서 앞으로는 둘만 오자고 다짐을 했더랬다. 이틀 뒤에 카페 앞을 지나가면서 보니 조명이 고쳐져 있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길이길이 남을 휴가 전야제다.


아이들이 기차를 좋아할 나이라 안동으로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태화강역에서 2시간 반이면 도착하니 거리가 적당해 보였다. 차를 타면 벨트 때문에 배가 아프다고 하거나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야 하지만 기차는 벨트를 하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도 있어서 마음에 든다. 하지만 기차는 공공예절을 지켜야 한다. 그러고 보니 여태 아이들이 어리다고 공공장소에 잘 데려가지 않았다. 여행 계획을 짤 때는 칙칙폭폭만 생각했는데 막상 기차를 타보니 공공예절을 배우는 장소다. 시끄럽지 않게 아이들의 입을 막으려면 간식은 필수품이다. 준비해간 과자를 다 먹었다고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무궁화호는 미니 카페에 음료나 과자 자판기가 있다. 조용하게 놀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잠깐 미니 카페로 간다. 여기서는 그나마 편하게 웃을 수 있다.


안동에 예약한 숙소에서 야경으로 유명한 영월교로 가는 길이 걸어서 30분 거리다. 땡볕에 더운데 막판에 오르막이 제법 오래 나타났다. 거기다 평소 낮잠을 자는 작은아이에게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결국 작은아이를 안고 오르막을 올랐다. 큰아이와 앞서갔던 내가 뒤에 도착한 남편을 보니 넋이 반쯤 나갔다. 아이는 분명 땀에 젖은 아빠 품에서 아기천사처럼 잠들어 있었는데 시원한 실내에 눕히자마자 눈을 뜬다. 허무함이 사무친다.


영월교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풍선을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도 받으러 가는 길에 아이들이 손잡고 걷다가 둘다 넘어졌다. 큰아이는 제법 무릎에서 피가 났고 작은아이는 살짝 까졌다. 아파서 울면서도 풍선은 받아야겠다니 답답하다. 이미 식당에서 물을 세 번 흥건하게 쏟았고 손에 들고 있던 팝콘도 와르르 쏟았고 긴 줄을 서서 받은 풍선은 어찌 된 일인지 금세 터졌다.


두 시간 반 타는 기차 안에서는 자라고 해도 쌩쌩하더니 오십분 걸리는 버스에서는 업어가도 모를 만큼 곯아떨어진다. 


다음날, 하회마을에서 안동역으로 오면서 아이들을 안고 버스에서 낑낑거리며 내렸는데 깜빡 졸은 것처럼 바로 살아난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잠도 오고 피곤한데 애들은 엄마아빠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무릎이 맞닿는 좁은 기차 자리에서 온갖 상황극이 연출된다. 그런 와중에 조용히 시켜야 하니 부모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을 씻기기 바쁘다. 남편이 방에서 헉 소리를 내고 누웠다. “애들아, 아빠 숨 쉬는지 가서 보고 와라.” 남편에게 휴가는 없다. 여름 극기훈련이 있을 뿐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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