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생태학과 생태농업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1-09-13 00: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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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농생태학의 이해(8)
▲ 키 작은 토종, ‘앉은초’ 말리기

‘3무 농법’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경남 거창군은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3무 농업' 실천 농가에 최대 50만 원의 장려금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거창군의 3무는 화학적 제초제, 생장조절제, 착색제 등을 말합니다. 일반 농약보다 훨씬 독성이 강하고 잠재적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이는 화학 농약들입니다. 특히 착색제는 덜 익은 과일의 껍질이 익은 것처럼 보이게 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기만적인 농약입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과일의 품질을 형편없이 떨어트리는 착색제가 공공연히 사용됐습니다. 많은 농민이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조기 출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발생한 폐해였습니다. 거창군의 ‘3무 농법’은 널리 알려진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제의 ‘3무 농법’과 조금 다릅니다만, 오히려 특정 농약을 콕 찍어 사용하지 말라는 점에서 실천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민의 친환경농업 참여를 독려하는 좋은 정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6무 농법’도 있습니다. 경운, 비닐 피복, 제초, 화학농약 사용, 화학비료 투입, 공장형 퇴비 투입 등을 하지 않는 농법입니다. 상당히 까다롭고, 실천하기에 버거운 농법입니다. ‘6무 농법’이 실제로 이뤄지는 방식이나 전략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어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3무’와 ‘6무’ 또 달리 있을지 모르는 ‘n무 농법’ 등의 목표가 친환경농업이고, 무에 속하는 요소들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생태순환농법을 지향한다는 볼 수 있습니다. 토양에 투입하는 양분과 토양 피복, 심는 순서(작부체계)마저도 유기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외부 자재의 무투입은 자연스레 농지 안에서 일정한 순환을 유도하고, 이 순환의 동력은 생태와 그에 의한 환경이 될 것입니다.
 

▲ 메밀꽃 필 무렵

생태와 생태주의

생태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제가 사는 도시의 버스에 무슨 무슨 ‘생태도시’라는 광고가 붙은 지 오래입니다. 친환경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좋은 낱말을 ‘생태’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농사짓는 저 역시 실천은 더디지만, 생태순환농법이 농업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늘 궁금합니다. 기후와 환경위기에 놓인 현실에서 그것을 극복할 바람직한 방향에 ‘생태’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좋은데, 위에 예를 든 무슨 무슨 무농법의 경우처럼 실질적으로 의미하고 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입니다. 생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글자 그대로 뜻을 새기면 생태는 ‘살아가는 모양’인데, 무척 중립적인 표현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 이것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생태라는 말을 쓸 수 있겠습니다. 이에 비추어 풀면 생태도시는 그 안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방해받지 않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라는 뜻이 됩니다. 이를 좀 더 개념화하면 생태는 ‘유기체나 유기체의 무리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맺는 관계’이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은 생태학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생태도시는 살아있는 것들과 환경 사이의 호의적인 관계를 제공할 때 완성되는 셈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환경위기의 극복은 바로 이 호의적인 관계의 복구와 구축으로 가능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관계 회복의 방법론은 다양해 서로 대립하기도 합니다. 크게 보아 인간중심주의(anthroyocentric)와 생태중심주의(ecocentric)로 양분됩니다. 인간중심주의는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라고 할 수 있는데, 인류의 생산과 소비 체제를 유지하면서 환경을 관리,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생태중심주의 입장에서는 자연의 문제를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고, 생태계의 내재적 질서와 가치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근본생태론).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청산하자는 것은 두 주장이 공유하는 가치입니다만, 생태계, 자연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접근방식이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을 대립 항으로 보고,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두 주장의 지향과 무관하게) 같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3의 길이 모색됩니다. 사회생태론입니다. ‘인간사회와 자연과의 연속성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상호작용입니다. 이에 대한 정의를 우리는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노동은…인간의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인간과 자연과의 과정이 다…이러한 운동을 통해 인간은 외부의 자연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자연(본성)도 변화시킨다.”(Marx <자본> 1권 MEW 23 192) 


노동을 통해 자연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스스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물질적 생활을 생산하는 것이며 이러한 생산 방식은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생태론 또한 ‘인간사회와 자연과의 연속성 회복’ 전략에서 분화합니다. 간단히 말해 전면적으로 사회정치적 구조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가, 국가와 사회 영역이 아닌 독자적인 지역 공간에서 생태 문제를 재구성하는가에 따라 다른 해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 크고 넓다, 토란

생태와 농업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는 토양의 생산성은 토양의 양분 총량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최소량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는데, 작물에 필요한 필수 무기물이 풍부하더라도 매우 적은 양의 미량 원소가 결핍하면 작물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 아연, 망간, 붕소 등입니다. 실제로 붕소가 토양에 전혀 없으면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미량 원소는 말 그대로 적은 양만 있으면 되므로 결핍 현상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유기물 대신 화학비료의 광범위한 사용과 높은 의존도가 일반화되면서 농지에서 미량 원소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생산성, 또는 생산력이 유용자원의 풍부한 투입만으로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식물은 생존을 위해 환경과 미묘하고 섬세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리비히의 연구 결과에 대해 생산력과 관련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인간의 생산력은 단지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 시대 인간이 자연과 교류하는 방식이나 관계를 고려한 사회적 개념’이라는 마르크스의 정의를 새롭게 새겨볼 대목입니다.
다양한 생태 논의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늘 딜레마에 빠지게 만듭니다.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의 반성이나 변화의 당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업으로서의 농업에서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담당자인 농민이 주체가 된 적이 없습니다. 생산은 늘 유통과 소비에 종속된 채로 가치가 정해져 왔습니다. 따라서 여러 생태론의 관점과 지향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 김장밭 일구기

농생태학

농생태학은 새로운 농(업)학입니다. 농학이 생태학을 배제하는 학문이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인 도입을 하는 추세입니다만, 농학과는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연구에 주안점을 두는 농학과 달리 농생태학은 실천과 운동의 영역까지 편입시키고 있습니다. 생태학적 농사방식에서 식량 생산과 소비, 유통과 관련된 사회경제체제까지 아우르는 연구영역을 갖추고 있습니다. 학문의 역사가 짧아 개념에 대한 혼선이 있고, 연구와 실천 그리고 운동을 한데 묶는 이론적 체계가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농생태학을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이며, 운동의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농민이어서 당연히 실천에 관심이 큽니다. 경작지를 생태계의 한 단위인 농업생태계로 이해하고 자연생태계와 상호작용한다는 기본 전제는 농사방식의 설계에 많은 영감을 줍니다. 생태학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제시되는 지속 가능한 농업의 설계와 실천 원칙들은 농사의 큰 틀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세계 각국의 전통 농업이 보여주는 지속 가능한 농법에 주목해 내놓는 연구들은 접근과 응용이 무척 쉽습니다. 우리 전통 농업에서 해오던 섞어짓기, 사이짓기 등은 생태적 농사짓기의 든든한 디딤돌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농생태학은 지속 가능한 농업을 추구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농민의 생산성과 경제성을 견지하도록 돕는 전환과정에 천착하고 있어 그 성과가 기대됩니다.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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