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시작은 가을부터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1-11-15 0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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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악몽 같은 텃밭 낙원으로 바꾸기(1)

단테는 그의 글, 신곡에서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고 지옥문에 쓰여 있다고 했습니다. 설마 우리의 텃밭이 그런 공포의 문일 리 없겠죠. 지옥 같은 텃밭은 과장입니다. 악몽이라면 어떨까요? 지옥문 앞에 서 있는 악몽 말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기대와 희망이 어그러질 때마다 지옥 같은 순간을 경험합니다. 주객전도의 상황에도 많이 처하고,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속수무책의 상황에 놓일 때도 많습니다. 벗어나고 싶으나 자력으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꿈이었으면 좋을 그런 순간을 텃밭에서 느끼신 적이 있나요?


텃밭에서 그런 악몽을 경험한 분이 텃밭만큼이나 많다고 제가 알고 있는데요. 아니라고요? 그러면 제 글을 잠깐이라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내 자신의 텃밭이 지옥이었음을 깨닫게 될 겁니다. 장담합니다. 그런 지옥이라고 맞장구치시는 분들이여, 안심하소서. 제가 텃밭으로 난 그 지옥의 문을 낙원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로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놈의 원수 같은 텃밭에 미련이 남은 분들께만 드리는 말씀입니다.
 

▲ 신문지와 유기물을 활용한 덮개

 


텃밭도 농사

5평, 아니 1평의 밭떼기를 일구더라도 농사입니다. 그 밭을 가다루는 사람은 농민이고요. 자격이 아니라 굴레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흙을 뒤적거려 무어라도 얻어내려면 굴레를 써야 합니다. 골프공을 제대로 치자면 그에 걸맞은 자세와 동작을 먼저 갖추어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어려운 골프 기본기에 견주어 농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입니다만, 어쨌든.)


아닌 척하면서도 사람들은 농사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농업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인 까닭에 우리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공유 기억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농사, 텃밭 농사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기억합시다. 얕잡아 보는 순간 지옥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텃밭에도 게임의 규칙이 있고, 그것을 가벼이 여겨서는 몸과 마음이 고달프다는 것 말입니다. 물론, 그 규칙은 무척 간단해서 듣는 순간 누구나 그 원리까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규칙 설명에 앞서 먼저 생각해봅시다. 텃밭은 왜 시작했는지, 또는 왜 시작하려는지 스스로 물어봅시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답이 있겠고, 어떤 동기와 계기가 작용했든 소중한 결심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노는 땅이 있어서 시작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경제성과 생산성에 바탕을 두고 텃밭 농사를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텃밭을 일구는 목적이 무엇이든 텃밭의 핵심 기능을 버리고서야 얻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성과 생산성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지금은 뭉뚱그려 실용적 텃밭 가꾸기 정도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산 절개면의 토양층

농사의 기초

“피어나는 것을 보며 심고, 시드는 것들을 보아가며 거둔다.” 여씨춘추에 나오는 글이라는데, 농사의 속성을 이처럼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순리라는 말이 퍼뜩 떠오르지 않습니까? 먼 옛날의 문장입니다만, 오늘날의 우리 역시 농사에서는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더구나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는 이 시대이고서야 날씨에 대응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론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농사는 반 이상을 날씨가 짓습니다. 우리는 이를 거역하여 늘 풍작을 이루는 방법을 아직은 잘 모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기후조건을 이겨내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흙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농사의 많은 부분이 흙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이 또한 이해와 실천이 까다롭지는 않습니다. 제가 잘 모르기도 하려니와 농사꾼이야 흙 자체를 연구하기보다는 그것을 활용하는 요령만 알면 되기 때문입니다.

텃밭 겨울나기

제가 글을 쓰는 오늘은 11월 11일입니다. 초겨울이죠. 이미 텃밭을 하고 계시는 분들의 텃밭은 오늘 그 모습이 어떠한가요? 아내와 제가 농사짓는 이곳, 덤바우는 밭마다 조금씩 다르군요. 마늘과 양파 심기를 진작 마친 밭이 있고, 그 아래 밭은 토란을 캐고 얼마 되지 않아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농로 너머의 콩밭은 일찌감치 거두어 타작한 터라 얼마 전 고랑에 심었던 청보리가 새파랗게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로 싹이 나왔습니다. 그 위 또 다른 밭에는 기습 추위로 겉잎이 누렇게 변해버린 배추가 역경을 이기고 속살을 찌우는 중입니다. 여러분의 텃밭은 오늘 현재 어떻습니까?


겨울 나는 작물을 심은 분이 계시겠고, 김장거리 배추와 무를 이미 거둔 분도 계시겠습니다. 파장하여 깨끗이 치워 빈 밭이 된 곳도 있겠고, 거두고 남은 작물과 덮개로 썼던 비닐이 남아 있는 곳도 있겠군요. 어떤 경우든 이제는 별로 할 일이 없으시죠?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옛 책에서 ‘가을 밭갈이는 깊게, 봄 갈이는 얕게 하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땅 얼기 전에 이듬해 오이, 호박 가꿀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넣고 아예 씨까지 묻어두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이듬해 쓸 요량으로 두엄더미도 만들었다고 하니 옛 농민들이 늦가을까지도 바빴겠습니다.


아, 참. 흙 얘기를 해야죠. 그 전에 하나 묻고 넘어가겠습니다. 지금 텃밭에는 무엇이 덮여 있습니까? 봄에 깔았던 비닐을 깔끔히 걷으셨나요, 아니면 귀찮아서 내년 봄에 걷으려고 놔두셨나요? 흙의 관점에서 비닐 깐 채로 겨울 나는 게 좋을까요, 걷어낸 게 나을까요? 깐 채로 겨울을 나는 것이 좋습니다. 텃밭이 헐벗은 채로 겨울을 나면, 그동안에 쬐는 볕과 바람과 비와 눈에 흙이 굳습니다.(흙 속에 있던 양분도 많이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내년 파종이나 모종을 심게 되는 4~5월까지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흙은 깊은 데까지 건조하고 단단해집니다. 흙으로서는 최악입니다.
 

▲ 겨울 별미, 토란 갈무리

 


맨땅이 최악이다

신문지 한 장을 까는 한이 있더라도 텃밭은 무언가로 덮여 있어야 합니다. 그 덮개로서 가장 좋은 것은 살아있는 작물입니다. 1) 텃밭 가득 양파나 마늘을 심으셨다면 흙으로서는 만점입니다. 2) 혹시 텃밭 한가득 보리나 밀을 심으셨다면 그 역시 최상입니다. 3) 식용으로 쓰지 않는 작물의 남은 부분을 밭에 그대로 놔두고, 비닐 또한 걷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4) 집안 대청소하듯 깔끔히 치웠다면 최악입니다.


들과 산에는 아시다시피 맨땅이 없습니다. 나무와 풀은 잎과 제 주검으로 저마다의 자리를 덮고 있습니다. 동물과 달리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자연스럽게 삶을 이어가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흙을 보호하는 것이죠. 제 몸을 덮개로 삼을 뿐 아니라 덮개는 분해되면서 흙에 녹아 양분이 되어줍니다. 식물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자기 자신인 셈이죠. 


먹이 또는 양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고, 식물이 자신의 그늘과 살비듬으로 보호하는 흙은 어떤 성질을 가지는 걸까요? 그냥 공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쾌적한 공기의 요건은 다들 아시잖습니까? 우선 바람이 잘 통해 산소가 풍부해야 합니다. 둘째, 적당한 습기가 있어 숨쉬기가 편해야 합니다. 셋째, 공간이 툭 터져 있어 늘 새로운 공기가 유입되어야 합니다. 넷째, 공기에 불순물이 섞이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공기가 그렇듯 식물의 뿌리가 숨 쉬고 활동하는 또 다른 공간이 흙입니다. 그런 흙을 보호하는 것이 식물의 삶 자체이기도 하고요.

요약과 강조

텃밭 흙이 물리적으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덮개입니다. 가장 좋은 덮개는 작물입니다.(작물과 작물 사이의 공간과 덮개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겠습니다.) 사시사철 거두고 심기를 반복하여 텃밭이 헐벗은 날이 없으면 최상입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을 덧붙이겠습니다. 겨울 나는 작물을 심었더라고 텃밭에 빈틈이 있을 겁니다. 고랑은 말할 것도 없고 밭 가장자리는 비어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곳에도 빈틈없이 작물을 채워야 합니다. 가을에 심기 좋은 것으로는 보리와 밀입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시점, 11월 중순에 보리와 밀은 심기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죠. 이왕 이렇게 된 거 내년 땅 풀리는 2월에 심으면 됩니다. 겨우내 굳은 흙은 뿌리가 깊이 뻗는 저들이 알아서 굳은 흙을 풀어줄 것입니다. 가을보다는 못해도 과히 하책도 아닙니다. 다음 글에서는 덮개와 덮개작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수월하고 경제적이면서도 노동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식들을 소개하겠습니다.

 

▲ 철없이 11월에 피어난 흰젖제비꽃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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