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담론 3: 영화에서 배틀 로열 게임의 원조 <배틀 로얄>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11-16 0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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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배틀 로열(Battle Royale)’은 프로레슬링에서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마지막 1인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방식을 말한다. 종종 전쟁영화에서 이런 방식을 활용한 장면이 있지만 이 자체를 영화의 플롯으로 사용한 영화는 <배틀 로얄>(2000, 후카사쿠 킨지)이 원조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직전까지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든 국가 중 하나(최고 수준일 때 연간 800편 이상)로 알려져 있지만 기록에서만 확인되고 실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945~1952년 미군점령기에는 검열정책이 시행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 일본영화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지다이게키(시대극時代劇)’인 사무라이물이 서양인들에게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켰고, 전후 우후죽순 생겨난 유럽의 각 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영화인들이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등의 작가주의 영화에 환호했기 때문이다.


이후 1968~1969년에 걸쳐 일본에는 ‘전학공투회의’(일명 전공투)가 일어났는데, 같은 시기 프랑스의 대학과 노동계의 사회변혁운동인 ‘68항쟁’과 다르게 일본은 각 대학이 각자 목적하는 투쟁을 위한 폭력시위를 벌였다. 전공투 세대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할 수 없었고, 이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영화계였다. 지다이게키는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겐다이게키(현대극現代劇)인 야쿠자물로 전환해 탐정물과 함께 대량생산됐고, 초창기 일본의 5대 제작사였던 닛카스조차 살아남기 위해 ‘로망포르노’라는 장르를 만들어 수익을 추구했다. 검열의 정책적 문제든 제작비의 경제적 문제든 창작에 제한이 걸리면 창작자들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더 높은 수준의 창의력을 발동한다. 이후 할리우드에 잠식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이전까지 일본영화계는 화려한 영상이나 현란한 기술보다 독특하고 기발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7인의 사무라이>(1954, 구로사와 아키라)는 <황야의 무법자>(1964,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작이고, <매트릭스>(1999~2003, 워쇼스키 남매)의 원작은 전공투 세대의 대표적 감독인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로, 다음 달 <매트릭스 4>가 개봉될 예정이다. <배틀 로얄>은 <헝거 게임>(2012~2015)과 <오징어 게임>(2021, 황동혁)의 교과서적 작품으로, 아이들을 납치하는 장면이나 게임이 벌어지는 장소 등은 <오징어 게임>이 차용했고, 시간대별 방송이나 경고 등의 게임 규칙, 무작위로 주어지는 무기와 아이템 등은 <헝거 게임>에서 재현된다.


영화 <스타워즈>는 1978년부터 42년간 총 9편이 출시됐다. 1978년 4부, 1987년 6부, 1997년 5부, 그리고 1부가 1999년에 개봉되는 등 순서가 뒤죽박죽인데, 조지 루카스 감독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제작했다. <배틀 로얄>은 개봉 당시 전례 없던 플롯이 충격적이었지만 <헝거 게임>의 스펙터클과 <오징어 게임>의 세련미와 비교하면 소품, CG 등의 미장센에서 한참 수준이 떨어진다. 특히 인간의 감각은 자극이 일정 수준 이상 충족되면 더 강한 자극을 원하기 때문에 21년 전의 <배틀 로얄>은 진부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배틀 로얄>은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과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면에서 일본 특유의 니힐리즘이 엿보인다.


오프닝 자막인 “신세기의 시작. 한 나라가 파괴됐다. 실업률 15%, 실업자 천만 명, 등교 거부생 80만 명. 급증하는 소년 범죄. 자신감을 잃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결국 한 법안을 가결했다. 신세기 교육 개혁법. 통칭 BR(Battle Royale)법”. 새로운 세기의 시작인 2001년을 앞두고 전 세계가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에 들떠 있을 때 이 영화는 X, Y세대의 암울한 미래만 전제했다. 이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극단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주최 측인 기타노 다케시(선생 역)는 게임에 직접 개입하며 아이들을 살해하고, 자신에게 친절했던 유일한 소녀를 살리기 위해 편법을 썼으며, 한 명의 생존자만 섬을 벗어날 수 있는 규칙에서 둘이 탈출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멋대로 게임의 규칙을 만든 어른이 아이들에게 그 규칙을 강요하고, 결과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빌어 어른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복수극을 벌인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는데, 오토바이 사고로 안면마비증이 생겼다. 이후 <하나-비>(1998), <소나티네>(2000), <자토이치>(2004) 등에서 인상적인 연출과 연기를 선보였고, <키즈 리턴>(2000), <기쿠지로의 여름>(2002) 등의 수작(秀作)들도 제작했다.


인상적인 것은, 이 처참하고 비극적인 장면들에서 역설적인 베르디,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바흐의 선율이 흘러넘친다. 이는 <시계태엽 오렌지>(1971, 스탠리 큐브릭), <레옹>(1994, 뤽 베송)의 베토벤만큼이나 기괴하고, <올드 보이>(2003, 박찬욱)의 라흐마니노프만큼 처절하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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