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러남, 나를 찾아가는 시간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 기사승인 : 2021-11-16 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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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제일 즐거우면서도 두려운 시간은 바로 차가 우려지길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다. 특히 처음 접하는 차일수록 어떤 맛과 향일까 너무 두근거리고 설렌다. 차의 이름이나 첨가되는 재료를 보고 큰 기대를 했는데 막상 우려낸 후 희한한 맛을 내는 차, 차 봉지를 뜯자 코를 틀어막게 하는 구린내가 나는데 우려내니 너무나도 맛있는 차. 우려내서 향과 맛을 보기 전까지는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시간. 그리고 ‘우림’이라는 기다림을 거치고 나면 찻잎 상태에서는 알 수 없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들이 드러난다.


그럼, 대체 차는 어떻게 우려야 할까? 차를 우리는 데에도 황금 법칙이 존재한다. 홍차 초보 중에 차 우리는 법을 몰라 다시는 마시고 싶지 않은 것에서 골든 룰을 알고 차에 매료됐다는 경험담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또 어떤 카페는 손님의 요청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홍차 2g에 물 400ml, 3분이라는 절대 규칙을 수호하기도 한다. 


사실 같은 차를 몇십 번 우려도 수많은 조건 중 무엇 하나가 맞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향과 맛을 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맛과 향은 개인의 기호,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기억해야 할 것은 차는 결국 기호식품이라는 것이다. 골든 룰이 존재하지만, 그 룰이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우리는 살아가는 시기에 따라 꼭 거쳐야 하고 해내야 하는 숙제들이 정해져 있다. 아니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10대의 입시, 20대의 취업과 진로, 30대의 결혼 육아, 40대의 자녀교육과 재테크 등. 그 연령대에 반드시 거치거나 해내야 하는 과정들. 일반적으로 연령에 맞다고 여겨지는 시기가 아닐 때 그 일을 겪어내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적절한 때가 있다고 하는지 알게 된다. 왜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나 혹은 너무 일찍 시작했다 등의 후회 어린 자기고백을 들으면서 어른들이 말하는 ‘적절한 때’라는 말이 왜 존재하는지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러나 그 적절한 때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시기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나는 20대를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20대의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40대가 되어도 그럴 것 같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응원했고, 또 누군가는 비웃기도 했다. 나 스스로 유통기한 임박, 기간 마감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그 위에서 조바심만 내며 오도 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좋아하는 일로 밥을 벌어먹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외줄 타기를 해왔다. 사실은 반쯤 포기상태로. 


40대 후반에 출산한 지인이, 20대에 출산했더라면 체력적으로 더 좋았을 테지만 아마도 아이도 본인도 불행했을 거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오롯이 한 사람을 키워내는 부모로서는 지금의 자신이 적절하고 충만하며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었고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차마다 맛있게 우러나는 온도와 시간이 모두 다른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맛과 향이 모두 다른데 왜 한 가지 법칙을 따르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차의 맛과 향을 찾아가는 과정

● 준비물–찻잎(티백), 깨끗한 물, 티팟 또는 머그컵 등 차를 우릴 그릇, 거름망, 타이머


① 물: 차를 우리기에 더 적합한 물이 있다고 한다. 물의 경도니 산소포화도니 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런 것까지 따지지는 말자.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정수된 물(수돗물)이면 충분하다. 


② 물의 온도: 준비된 물을 팔팔 끓인다. 그리고 준비한 컵과 그릇에 부어 예열한다. 가지고 있는 차에 맞는 온도대로 물을 식혀준다. 차 하나 마시는데 온도계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다. 


◆ 100~95℃ - 팔팔 끓인 직후, 홍차, 보이차, 허브차
◆ 90~95℃ - 불을 끄고 1분 후, 홍차, 중국녹차, 일본녹차, 우롱차, 허브차
◆ 85~80℃ - 불을 끄고 2분 후, 홍차(다즐링), 우롱차, 황차, 세작
◆ 75~70℃ - 불을 끄고 3분 후, 우전, 백차


③ 물을 붓는 법: 티팟에 차를 넣고 물을 붓는 방법에도 매우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만 알아도 괜찮다. 나머지 방법들은 차 우림이 익숙해지고, 혹시 궁금해지면 알아도 된다. 


◆ 잎의 형태가 온전한 잎차와 티백: 차를 먼저 티팟에 넣고 그 위에 물을 붓는다.
◆ 잎의 형태가 분쇄된 잎차와 티백: 티팟에 먼저 물을 붓고 그 위에 차를 넣는다.


④ 차와 물의 양: 티백은 뒷면에 물의 양과 온도 시간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럽 브랜드는 석회질 물에 그 기준이 맞춰져 있어서 우리나라 물로 우리면 매우 쓰고 진한 차가 될 수 있다. 찻잎의 양과 물의 양은 여러 번 시도하면서 나에게 맞는 기준을 찾아가야 한다. 잎차를 기준으로 밥숟가락 한 번(대략 3g), 생수통 500ml를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입맛대로 줄이거나 늘려보자.


⑤ 우리는 시간: 차와 물의 온도 또 날씨에 따라 우리는 시간은 계속 달라져야 한다. 고정된 정답이 없다. 그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나한테 맞는 적절한 시간은 내가 찾아야 한다. 물을 부은 직후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의 맛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한 모금씩 마셔보면서 제일 맛있는 시간대를 찾아보자.

여느 날 친구와 같이 차를 마시던 중, 나는 2분대에 적당히 우러난 차를, 친구는 4분 이상 두어 쓴 차를 더 맛있다고 느낀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쓴 그 차 덕분에 친구는 차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한다. 내 기준에서라면 그 차는 버려질, 망한 차였다. 


혹시 지금까지 차가 맛이 없었다면, 남들이 정해놓은 법칙에 조바심을 내어 찻잎을 너무 일찍 빼거나 티백을 너무 휘둘렀거나 너무 높은 온도로 찻잎을 괴롭힌 건 아닌지 떠올려보자. 그리고 나만의 황금 법칙을 천천히 만들어 보자.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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