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굽어보며 걷는 절경의 남지개비리길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6-13 17:17:14
  • -
  • +
  • 인쇄
발로 쓰는 자연이야기

 

▲ 남지개비리길은 강풍경이 아름답고 좁고 아늑한 길이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예전에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남지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뒤 택시를 타고 남지개비리길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의 여정은 개비리길을 타고 가다가 박진교 건너 낙서면 고개를 넘어 낙동강을 개주둥이를 닮은 강변길을 따라 걸어 합천 적포 삼거리를 까지 가는 여정이다.

강은 산을 만나면 짐승처럼 할퀴어 산을 갉아 먹고 가파른 절벽을 만든다. 그 가파른 절벽은 타고 가는 길이 지름길이지만 목숨을 거는 위험한 길이다. 돌아가는 길이 안전하겠지만 급한 이들은 가파른 길 타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남지개비리길은 처음에는 마을 개들이, 뒤에는 길손들이 조금씩 넓혀 가며 만든 길로 알려졌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육이오의 전투를 격렬했다. 낙동강 전선의 가장 격렬했다는 창녕박진전투의 현장이다. 우리가 있는 곳은 유엔군이 지키던 곳이었고 반대편은 인민군이 마주 보고 있었다. 개전 40여일이 지난 8월초, 낙동강을 끼고 최후의 방어선을 만들게 되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절박한 상황 하에서 왜관-상주-영덕을 연결하는 전선은 국군이, 현풍-창녕-진동을 연결하는 전선은 유엔군이 방어하게 되었다. 이곳 박진지역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낙동강을 넘어온 북한인민군과 미군이 2주간 사투를 벌였던 격전지다. 당시 북한의 최정예부대인 제4사단이 기습 침투하여 벌어진 전투로 영산읍까지 빼앗겼으나 혈투를 전개하여 끝까지 이 진지를 사수했고 그 전쟁승리를 기념하는 박진전쟁기념관이 있다. 당시 낙동강물이 벌건 핏물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푸르른 신록만 가득하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흰 구름이 두둥실 멋지게 떠다닌다. 전쟁박물관 추모비, 전승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을 막고 여유롭게 걷는 이런 평화를 만드는 일이다.

남지개비리길은 벼랑을 타고 걸어가는 폭 좁은 길이다. 왼쪽은 강이 내려다보이고 한쪽은 벼랑에 매달린 마삭줄 같은 신록이다. 길이 깊어지니 대나무숲에 죽순이 싱그러운 향기를 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니 마음도 몸도 가벼워진다. 이런 개비리길이 도로건설로 파괴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또 얼마나 아름답던 많은 개비리길이 다이너마이트로 없어졌을까?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명물이 됐을 것이다.

개비리길이 끝나자 길은 도로와 나란한 그늘 부족한 강변길을 걷다가 이내 갈대숲이 있는 강변 아래로 떨어진다. 샛강이 흐르는 곳에서 오디를 잔뜩 단 뽕나무를 만났다. 점심 먹을 자리를 여러 번 보았던 터라 배는 고파질대로 고파진 상태였다. 그 뽕나무를 둘러싸고 허겁지겁 오디를 따먹는 동무들, 비상용 톱으로 나뭇가지를 하나 잘라내자 길은 완전 잔치날이 되었다.
서로 공범임을 자처하며 적보라빛 손끝을 모아 인증샷을 날렸다. 전원주택 같은 슈퍼 마당에 국시를 겸한 김밥으로 요기를 했다.

박진교를 넘어가면 의령땅이다. 강에 붙은 가파른 절벽은 접근이 안 돼 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을 타야한다. 깊은 골짜기에는 대형 돼지공장이 있었다. 고개를 넘어 갈 때까지 그 악취는 우리 등을 떠밀고 정신없이 계속 따라 올라왔다. 공기 맑은 곳에 키운다고 청정돈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악취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지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고개를 내려가는 길가에 한창 익어가는 산딸기를 만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딸기를 따먹었다. 오디뿐만 아니라 제철을 잘 맞춰 온 것이고 걷는 사람들이 없으니 온통 우리 차지다.

이번 낙동강 걷기에는 새로이 참가하는 동무가 2명이었다. 처음 참가하는 동무들은 ‘걷지 못한 이전 코스를 틈틈이 알아서 채우는 숙제를 따로 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로 그들을 환대했다. 기존 사람들 속에서 1~2명의 멤버들 변화는 새로운 활력과 생기, 사람관계의 역동성을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여자애들은 단짝하고만 걸었다. 낙동강 걷기를 여러 번 반복하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리 저리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편한 사이가 됐다. 원래 낙동강 걷기는 거리를 두고 따로 혼자 걷기로 이끄는 대장이 선포했었다. 하지만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리저리 섞였다.

따라 올라가는 강둑길에서 왼쪽은 아주 드넓은 옥수수밭이고 오른쪽은 수만 평 드넓은 초지다. 정자에 쉬면서 만난 촌로의 말에 의하면 정곡리(의령군 낙서면) 마을의 특산품이 옥수수라고 했다. 모래밭에서 재배한 옥수수가 맛이 좋다는 데 갈 길이 멀었다. 갈대를 벤 드넓은 강변 풀밭 유역이 엄청 나게 넓었다. 기동비행단의 공중투하훈련장으로 쓰인다고 하니 신기했다.

강변을 따라 올라가면 경계는 다시 합천군으로 들어서게 된다. 도로옆 드러난 바위들이 잘 쪼개지는 편마암이서인지 바위 틈새 곳곳에 기린초들이 무더기로 노란꽃을 피웠다. 저 멀리 적포교 가로등불이 반짝이며 강물에 비친다. 허름한 식당에서 돼지고기 두루치기로 방전한 몸을 충전했다. 합천 돼지는 육질이 아주 쫄깃하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누군가 아까 그 돼지공장 고기가 아닌가 씁스레 물었다. 걷기에 참가하면 3개의 ‘집’을 가지고 돌아간다고 대장이 말했다. 50대가 넘으면 누구든지 ‘고집’, ‘아집’을 기본으로 두 채, 오래 걸으면 생기는 발의 ‘물집’. 다행히 난 물집이 잡히지는 않았다.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동고 기자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