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월든>을 읽고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회원 / 기사승인 : 2021-11-30 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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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많은 중년 남성들은 갑갑한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과거로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건대 200년 전의 미국은 급속한 도시화, 개발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마치 그것이 진실이거나 당위적인 삶으로 맹신했다. 그 시대에 도시 생활에 찌든 영혼을 다시 보살피고 순수한 본연의 자아를 찾아가고자 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1817~1862)라는 사회운동가가 있었는데 바로 그가 ‘자연인’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소로우가 세속과 단절하고 찾아간 월든 호수에서의 생활을 섬세한 필치로 기록한 <월든>은 이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요구하는 하나의 사상서로 읽히고 있다. 시중에 번역본이 20여 종 나와 있는데 나는 소로우의 저서를 전문적으로 번역하고 있는 강승영이 번역한 <월든>(2011, 은행나무)을 읽었다.


일찍이 마하트마 간디가 이 책을 칭송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법정 스님이 이 책을 애독한 것으로 알려져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에는 <갯마을 차차차>라는 TV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 책을 손에 잡고 읽는 장면이 연출돼 광고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안다.


소로우는 1817년 미국 동부지역의 콩코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로서 청년기부터 사회를 바라보는 예리한 관찰력과 시선으로 일찍 사회운동에 동참했다. 19세기 초반 물질문명과 세속화를 거부하면서 정신적 삶과 자기 내면의 깨우침을 강조하던 초절주의에 빠져들었고 초절주의의 거두 에머슨과 교류하면서 사상을 확장해나갔다. <월든>에서 내세우는 그의 신비주의, 탈물질주의와 정신적 삶에 대한 확고한 생각은 이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2년 2개월간 ‘월든’이라는 호숫가 오두막에서의 삶은 소로우 자신도 경이로웠지만 200년이 지나서 책으로 읽는 지금의 현대인들에게도 생생한 간접경험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책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숲속 오두막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다양한 나무, 새, 짐승들에 대한 세밀하고도 호기심에 가득한 묘사는 읽는 내내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특히 우리가 자세히 몰랐던 짐승의 소리와 쏙독새, 올빼미, 부엉이 등 온갖 새소리를 의인화시켜서 표현한 섬세한 필치, 문학적 감수성은 탄성을 자아낸다. 월든 호수 안의 온갖 물고기와 호수에 비친 하늘, 숲에서 만난 온갖 나무와 꽃과 곤충을 보고 교감하는 장면에서 그것은 인간 대 자연의 만남이 아니라 자연 속에 겸손히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고귀한 생명체의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200년 가까이 지나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전원일기를 벗어나서 그 당시 사회에 대한 성찰과 인간 문명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월든>은 작자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난해한 문장도 더러 있지만 지엽적인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내용은 쉬워지고 재미는 더해진다. 어느 부분을 골라 읽어도 문장 하나하나가 격언과 경구로 가득찬 아포리즘을 담아내고 있어 한편의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책 속으로 들어가 월든의 진가를 조금이나마 느껴보자. 책의 중반부에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자연으로 떠난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바랐으며 참다운 자아와 본연의 삶을 만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속임수와 기만이 가장 건전한 진실로 존중을 받고 있으며, 반면에 진실은 거짓으로 여겨지고 있다. 만일 사람들이 진실만을 똑바로 보고 속임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라고 현실을 탄식하면서도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는 작자의 심경이 절절히 드러나고 있다. 


월든에서의 생활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삶의 양식을 바꾸고 자연의 순수함과 소박함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에 세 끼를 먹는 대신 필요할 때 한 끼만 먹어라. 백 가지 요리를 다섯 가지로 줄여라. 그리고 다른 일들도 그런 비율로 줄이도록 하라.”라는 경구에 가까운 이 말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의 명문장이다.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희석하지 않은 순수한 아침 공기 한 모금이다.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아침 공기를 마시려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라는 표현은 문학적 표현을 넘어서 우리에게 자연과 함께하고 싶은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개발주의자, 자본주의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소로우는 그러한 삶을 너무 고지식할 정도로 결연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개발지상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은 우리의 삶과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다. 소로우가 경험했던 월든 호수에서의 삶은 이후 흑인 노예해방 운동과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이어지는 동력이 됐다.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면서도 사회적 의무가 조화로운 삶을 살았던 소로우는 휴머니스트이자 세계시민주의자임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못내 아쉬운 시간이다. 책장에 있지만 손이 잘 가지 않는 <월든>을 꺼내서 읽어보자. 그 속에서 때 묻지 않은 우리들의 원초적 모습과 참된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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