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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19-07-12 18: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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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일기

젊은 엄마들이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며 겪는 고충에 대해 나누고 있었다. 애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부터 우리 애는 요즘 이래서 미치겠다까지 일화들이 끊이지 않았다. 흡사 무림의 고수들이 모인 듯하나 장성한 아들이 있는 중년 여성 앞에서는 조무래기에 불과하다. 듣고 있던 중년 여성이 지나온 이야기를 풀었다. 아들이 고등학생 때 쓸데없이 의리가 넘쳤다는 말로 시작했다. 


출근길에 아들을 차에 태워 학교 정문 앞에 내려주고 갔는데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왔단다. 아들이 가끔 학교에 늦게 온다는 선생님의 말에 엄마는 의아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길래 지각을 한단 말인가. 엄마의 머리는 복잡해졌고 저녁이 되어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학교 앞에 내려줬는데 바로 안 들어가고 뭐 했니?” 아들은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친구를 깨워서 같이 학교 가느라 늦었다는 아들의 대답에 엄마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친구를 너가 왜 깨워서 가는데?” 이 친구도 나름 사정이 있었다. 친구는 재혼한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 부모님은 애가 학교를 가든지 안 가든지 관심이 없고 집을 나서기 바쁘다. 아침에 친구는 혼자다. 빈집에서 늦잠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서 학교에 같이 가느라 아들은 지각을 하곤 했다. 엄마는 아들의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 그 친구와 어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화가 난 아들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소리쳤다. “어렸을 때 엄마가 친구랑 사이좋게 놀라고 말해놓고 왜 지금은 친구를 가려요? 이 친구는 되고 저 친구는 안 되는 기준이 뭔데요?” 엄마는 쪽만 팔리고 말을 잊지 못했다. 


어느 날, 아들이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다. 웬걸! 친구는 아주 순한 인상이었다. 발랑 까진 친구일 거라 상상했는데 실물을 보고나니 엄마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언제부터인지 돈을 달라고 하는 게 수상했다. “오만 원이 왜 필요한데?” 친구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싶다는 아들의 대답에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돈을 꿨는데 갚을 돈이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라나 뭐라나. 쓸데없이 의리가 넘치는 사춘기 아들 때문에 엄마의 근심이 깊어졌다. 아들의 성적은 뚝뚝 떨어지고 올라올 기미는 안 보이니 더욱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방학을 맞이했다. 부모님에 의해 친구는 시골 외가댁으로 보내졌다. 잠깐이라도 아들이 친구를 안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개학을 앞두고 믿기지 않는 소식이 들렸다. 시골에서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아들이 친구를 잃은 슬픔에 빠진 건 당연하다. 한데 엄마는 좀 달랐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을씨년스러워진다. 엄마는 친구가 죽어서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들이 친구 챙긴다고 피해를 볼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 후 마음 잡은 아들이 공부를 하더라는 말로 이야기는 끝났다. 


“잘됐다 싶지 뭐에요~” 중년 여성의 갈 곳 잃은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친구가 죽었다는 반전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마 친구를 귀찮게 여겼던 부모도 똑같이 생각했을지 모른다. 학기 중에는 의붓아들을 방임하다가 방학이면 전 부인의 친정에 보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그놈 죽어서 잘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성애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엄마는 그릇된 모성애인가? 자식에게 방해가 되는 모지리 친구의 죽음은 잘된 일인가? 모성애로 감쌀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따끈한 모성애의 온도를 알 수만 있다면.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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