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와 묻지마 지지

손영식 울산대 철학과 교수 / 기사승인 : 2022-01-24 0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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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대와 중세에는 정복 전쟁이 유행했다. 전쟁을 해서 승자는 전부를 갖고, 패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 이른바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이긴 자는 주인이 되고, 진 자는 노예가 된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이는 결과가 참혹하기 때문에 근대에 들어서면, 시장 논리가 나타난다. 욕망을 가진 당사자들이 시장에서 상품을 내놓고, 상품을 산다. 경제뿐만 아니라 학술, 정치 모두 시장 논리로 나간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에 출마할 사람이 상품 제공자라면, 투표하는 사람들이 상품 소비자가 된다. 더 매력 있는 상품을 선택하게 된다. 무력으로 싸워서 승자가 왕이나 권력자가 되는 체제와 정반대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구조에서 발전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로서 어떤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여기에는 칸트의 이성의 안티노미(antinomie)가 적용된다. 사람들의 이성은 늘 안티노미, 즉 모순되는 두 가지 것으로 양분된다. 미국을 예로 들자면, 총기 규제에 대해서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갈라진다. 찬성자는 이성적 사유로 논증하여 합리화한다. 반대자 역시 이성적 사유로 논증하여 증명하려 든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이렇게 정반대의 모순되는 두 입장으로 나뉘는 것, 이것이 집단 이성의 특징이다.
이래서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두 개의 주된 정당이 나타난다. 이성의 모순된 결론 한 자락씩 잡은 것이다. 이렇게 두 개의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면 최선의 결과를 낸다. 모순은 Α와 ~Α로 표시된다. Α+~Α=전부이다. 따라서 두 정당이 각각 그 하나씩을 잡으면, 나라는 전체의 일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박정희 전두환은 중화학 공업에 올인했다면, 김대중 노무현은 IT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 둘을 합한 결과 한국은 최강의 국가가 된다. 일본은 자민당이 일당 독재를 했다. 그 결과 아직도 굴뚝 산업에서 IT 산업으로 체질 전환을 하지 못하고, 침몰하는 중이다.


한국은 민주주의가 발전했기 때문에 양당이 번갈아 집권한다. 그러나 한국의 특정 지역은 일본이나 중국처럼 사실상의 일당 독재가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민주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조선 시대의 붕당은 정당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정당은 지지 계층에 근거한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표적이다. 반면 붕당은 지주와 소작인 가운데 지주들이 만든 것이다. 계층으로 분리될 수 없었다. 그 결과 학연 지연 혈연으로 갈라진다. 서인은 서울 충청 지역, 동인은 영남 지역, 이렇게 갈라졌다.


이는 현대에 와서 다시 부활한다. 박정희는 김대중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당선됐다. 이후 지역감정은 고질병이 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지역감정은 희석됐지만, 이번에는 좌파 우파의 진영 논리로 확대된다. 무엇이 좌파이고 우파인가? 이는 모호하다. 그나마 지역감정은 지역이란 명확한 근거가 있지만, ‘좌파-우파’는 그마저 없다.


이는 진영 논리로 발전해, 정치를 내 편과 상대편으로 갈라놓는다. 내 편은 무조건 옳고 이겨야 한다. 상대는 무조건 그르고 져야 한다. 이런 전쟁 논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합리적 사유를 무력화시킨다. 진영 논리는 감정과 욕망에 근거하며, 이성을 노예로 부린다.


이 결과 특정 정당을 무조건 묻지 마 지지를 하게 된다. 이렇게 지지하면 우리 편이 승리하는가? 정치인들은 이런 진영 논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거기에 편승하기만 하면, 그냥 막 당선된다.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이다. 이보다 더 편리할 수는 없다.


이러다 보니 정치인들이 게을러진다. 무식해진다. 진영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논리만 알지, 상대 논리를 논파할 줄 모른다. 정치인 역시 그렇게 된다. 이번에 대장동 사건으로 세 번째 사람이 자살하자, 야당의 원내대표는 그것을 ‘간접 살인’이라 했다. 재판에서 가장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살인죄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살인죄로 판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살인이라 했을까? 자기 지지자들과는 ‘간접 살인’이 아니라, 살인자라고 욕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보자면, 정말 무식한 이야기다. 저런 소리 하는 사람이 전직 판사였다고?


언젠가 우리 지역구 의원이 의정 활동 보고 유인물을 보내왔다. 남구에서 했던 모든 일을 자신이 다 했다고 적어 놓았다. 다 했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언제까지 국회의원을 해야 하는가?


자기보다 못한 자에게 지배받는다는 것, 그것은 수치다. 진영 논리와 묻지 마 지지는 이성을 감정의 노예로 만들고, 나아가 유권자 자신을 노예로 만든다. 인간이 자발적 노예근성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왜 특정 지역에서만 그러한가?


손영식 울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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