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에서 구로까지...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동자생활체험관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19-11-08 18: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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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80년대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를 보여주는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기획취재: 노동자도시 울산에 노동박물관을>  

 

1. 노동박물관이 품은 노동존중 세상을 말한다
2. 핀란드 탐페레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부심
3. 섬유공장을 되살린 스웨덴 노르셰핑 노동박물관
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덴마크 노동박물관
5.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6. 청계천에서 구로공단까지...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도체험관
7. 노동역사를 담은 그릇, 석탄박물관과 강제동원역사관
8. 울산노동역사관에서 노동박물관으로 한 걸음 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을 함께 불꽃이 되어버린 노동자 전태일. 1970년 가을에 산화한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전쟁 이후 4.19 혁명 때 잠시 반짝였을 뿐 독재정권 아래 짓눌렸던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올해 4월 30일 개관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은 전태일이 일했고 노동자모임을 만들었으며 결국 스물셋 청년으로 삶을 마감한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 세워졌다. 서울시가 매입한 6층 건물을 꾸몄으며 운영은 전태일재단(이수호 이사장)에 위탁해 관리하고 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기념공간으로 수장고와 공연장 그리고 전시실로 구분되고 4층부터 6층은 노동권익지원시설로 나뉘어 있다. 권익지원시설 안에 눈에 띄는 것은 ‘노동허브’라는 이름으로 7개 단체가 입주한 4층이다. ‘알바노조’ ‘특성화고졸업생노조’ ‘노후희망유니온’ 등 신생 노동단체가 공간을 나눠 사용하고 있었다. 원래 5개 단체를 선정해 입주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신청한 곳이 많았고 의견을 조율해 최대한 많은 곳을 품게 됐다고 한다.

2004년부터 준비해 15년 만에 완성

기념관 인근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전태일동상이 세워져있는 ‘전태일다리’도 멀지 않다. 다리 근처에는 양쪽 길을 끼고 바닥에 수많은 동판이 깔려 있다. 2004년부터 전태일기념관 건립운동이 시작되면서 함께 기획됐던 것으로 2005년에 세상에 선보였다. 그때가 전태일이 산화한 후 35년이 되는 때였다. 당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추진했는데 다리가 먼저 열렸지만 기념관 건립은 그 뒤 한참 동안을 기다려야만 했다. 다시 기회가 온 것은 2015년.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면담하고 기념관 건립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를 거친 후 2017년 ‘전태일기념관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박차를 가하게 된다. 기념관 장소를 선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는데 전태일이 일했고 분신했던 장소 근처 건물을 임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지만 여의치 않아 조금 거리를 둔 지금 장소로 정하게 됐다. 

 

▲ 구로 가리봉시장 건너편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

▲ 체험학습 온 아이들이 직접 적고 만든 공작물

 

청년 전태일 그리고 이소선 어머니

한 명의 인물을 조명하는 기념관은 의외로 많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곳은 널리 알려진 소설가와 시인을 기념하는 문학관이다. 이육사, 박경리, 윤동주, 기형도 등 당대를 풍미했던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공간들이다. 울산에는 비슷한 곳으로 울주군 언양의 오영수문학관과 중구에 서덕출기념관이 있다. 문학 외에도 미술 쪽의 백남준, 이중섭 등과 음악으로는 윤이상 기념관 등이 있다.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관도 많은데 심산 김창숙, 매헌 윤봉길 그리고 최재형 기념관 등이 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중 산화한 박종철, 이한열 기념관도 한 인물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담아낸 곳이다. 전태일기념관은 국내 최초로 노동자를 중심에 둔 공간이다. 시대로 보면 전태일 열사의 생애를 따라 1960~70년대를 중심에 두고 있다. 그리고 전태일이 산화한 이후 그 정신을 가장 선두에서 지켜온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생애도 담고 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했던 지난 9월 초, 전태일과 청계 피복공단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기념관 3층 상설전시장에서 입체적으로 전시중이었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의 궤적은 기획전시로 다루고 있었다.

전시와 공연공간에서 전태일 거리로

2층에서는 특별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소선합창단이 준비한 ‘전태일의 꿈, 어머니의 세상’이란 제목의 공연이 기념관의 하반기 초청공연으로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3층 전시장 바로 아래층에 공연장 ‘울림터’가 있는데 소극장 정도 규모다. 노래공연 외에 영화상영, 연극도 가능한 복합시설을 갖춰 전시와 공연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기획도 가능했다. 그리고 공연 외에 학술 세미나 장소나 회의공간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전시장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지는 않다. 전태일재단이 그동안 수집해 온 자료나 기획된 전시만 갖고도 꽉 찰 정도였다. 개관 전부터 전시기획에 참여한 큐레이터도 단독 건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상설전시 공간이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결국 전태일기념관 운영진의 고민은 건물 안이 아니라 바깥으로 열려지고 있다. 기념관을 중심에 두고 전태일다리와 분신 장소를 잇는 ‘전태일 거리’를 구상중이다. 현재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하니 그 결과 또한 기대가 됐다.

 

▲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쪽방(벌집)을 재현한 생활공간
▲ 전태일기념관 3층 전시장과 2층 공연장이 연결돼 있다.


구로공단의 역사를 한 눈에 담다

서울시에 노동역사를 담아낸 공공시설은 2013년 금천구청에서 문을 연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 체험관-금천 순이의 집’이 첫 번째다. 노동운동 활동가와 노동역사연구자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자료관 ‘노동역사 한내’가 2008년 문을 열었지만 공공시설로는 노동자생활체험관이 첫 사례였다. 울산북구청이 노동역사관을 같은 해 2월에 세워 대한민국 첫 공공 노동역사관으로 기록되는 데 구로는 3개월 뒤인 5월에 개관했다. 가산디지털단지 근처 주택가 안에 위치해 있고 2층 양옥주택을 매입해 내부를 개축해서 전시 및 체험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양옥 집 바로 옆에 ‘가리봉상회’라는 간판을 달고 70~80년대 상점을 재현한 전시장이 붙어 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에겐 추억의 공간이 되고 이후 세대에겐 과거를 알려주는 신기한 공간이 되는 셈이다.

1960~80년대 구로공단을 재현하다

구로공단이 문을 연 것은 1964년이다. 울산이 첫 국가공업단지로 지정된 때인 1962년 이후 이태 뒤부터 서울을 대표하는 공단으로 구로에 중소규모의 제조공장이 연이어 들어섰다. 울산이 석유화학과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공업이었다면 구로공단은 ‘한국수출산업공단’이란 명칭을 달고 저임금,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위주로 조성됐다. 대표적인 업종이 섬유, 봉제, 전자 그리고 가발 등의 잡화를 생산해 수출하는 기업이었다. 그리고 울산은 남성노동자들이 많은 대기업들인 데 반해 구로는 10대부터 20대 초반의 여성노동자들이 다수였다. 노동자생활체험관은 그 여성노동자들이 마치 ‘벌집’처럼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간에 모여 살았던 것을 재현하고 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학교진학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상경해 집에 남은 형제들을 위해 희생했다. 주말도 쉬지 못하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 번 돈을 모아 고향으로 보냈던 그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었고 생활공간은 더 형편없었다. 수십 가구가 함께 쓰는 공동화장실은 달랑 하나, 겨우 두 평도 되지 않는 쪽방에 돈을 아끼려고 세 명이 함께 살기도 했다. 요즘 교도소의 독방보다도 작은 공간이다. 그 속에서 청춘을 보냈던 세대들이 이제 중년에서 노년이 돼 참 아련한 세월로 남았다.
 

▲ 전태일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전시벽면
▲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흉상이 관람객을 환하게 맞이하고 있다.

 

‘구로동맹파업’과 공단지역의 큰 변화

전시관 한켠에는 노동자 생활과 함께 1985년 6월 대우어패럴노동조합 파업에 호응해 구로공단의 노동조합들이 연쇄적으로 파업에 참가했던 구로동맹파업도 기록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첫 연대파업으로 기록되는데 이후 울산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번진 노동자대투쟁보다 2년 앞서 벌어졌다. 하지만 1988년을 기점으로 공단은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됐고 그 뒤 10년이 지나면 빈 공장들이 늘어나게 된다. 현재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경된 명칭이 보여주듯 과거와 다른 지역이 됐다. 과거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엔 중국에서 건너온 이들이 자리 잡았고 현재 가리봉시장은 한국어만큼 중국어로 된 간판이 수두룩 걸려있다. 그리고 중국 관광객들을 노린 중저가 아울렛 빌딩들이 잇달아 문을 열어 영업 중이다. 결국 구로공단의 역사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지워진 상태다. 어쩌면 노동자생활체험관이 만들어져 과거 이곳에서 일했던 노동자 그리고 그들이 외치고 투쟁했던 노동운동 역사를 마지막으로 보존하는지 모른다.

청소년 체험공간으로 큰 인기

노동자생활체험관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체험학습 공간으로 적극 활용 중이다. 방문객 대부분이 초등과 중등 학생들이다. 최근 아이들의 학교밖 수업과 진로체험 학습이 부각되고 있는데 이를 적극 수용해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서울시교육청도 이곳을 ‘서울학생배움터’로 지정해 진로체험분야로 추천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과거 노동자 이야기가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체험관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해설사들은 마치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아주 살갑게 맞이한다. 관람과 함께 직접 손으로 공작놀이하듯 만들기 체험을 하는 꼭지를 더해 놀이와 노동을 연결한 체험으로 이끌고 있다.

청계시장상가와 구로공단 그리고 울산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동자생활체험관은 모두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서울지역 노동자들이 밀집한 공간과 그 곳의 노동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노동존중’을 바탕으로 과거 기억과 현재 체험을 말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지자체의 변화와 단체장의 의지도 한 몫을 했다. 울산은 그보다 더 너른 역사를 품고 있다. 앞선 두 곳이 1980년대 이후 공단의 변화를 겪었다면 울산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이고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가 살고 있는 노동자도시라는 점이다. 공공시설로 노동역사관 또는 박물관이 울산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 전태일이 일했던 과거 청계상가 공장을 축소해 재현해 놓은 상설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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