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우익 쿠데타로 모랄레스 전격 사퇴

원영수 국제포럼 / 기사승인 : 2019-11-12 18: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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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이유는 미스터리, 향후 정국은 미궁 속으로
▲우익 쿠테타로 10일 전격 사퇴를 선언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텔레수르

 

11월 10일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전격 사퇴했다. 에보 모랄레스는 TV 연설을 통해 “더 이상의 유혈폭력을 막기 위해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고 말하면서, 반정부 시위대에게 방화와 공격을 멈출 것을 호소했다. 

 

헌법상 권력승계의 위치에 있는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과 아드리아나 살바티에라 상원의장도 모랄레스와 함께 사임했다. 그에 따라 11월 11일 야당인 사회민주운동(MDS)의 헤아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50세)이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새로운 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임시정부를 운영하게 된다.

 

한편 11월 11일 멕시코 정부는 에보 모랄레스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무장관은 “군대가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했기 때문에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며, 이는 볼리비아의 헌정질서를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멕시코가 망명을 제의했고, 모랄레스의 공식 요청으로 “인도주의적 이유와 볼리비아의 비상 상황” 때문에 모랄레스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볼리비아에서 주말을 거치면서 벌어진 쿠데타 사태는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모랄레스의 갑작스런 사퇴에 대해 멕시코,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니카라과, 쿠바 정부는 볼리비아 쿠데타를 강력히 비판했고, 러시아와 중국도 뒤를 이어 헌정질서 파괴를 규탄했다. 노엄 촘스키나 에콰도르 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역시 볼리비아 쿠데타를 비판했다. 

 

그러나 쿠데타는 이미 예견된 시나리오였다. 볼리비아 정부도 선거 전부터 쿠데타 음모를 인지하고 있었고, 쿠데타를 모의하는 음성 파일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여기에서 미국 공화당의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밥 멘데스, 테드 크루스 등이 언급됐는데 이들은 볼리비아 반정부 진영과 접촉을 지속해 왔다. 

 

이런 류의 쿠데타 계획은 여러 차례 폭로된 바 있지만, 이번 볼리비아 쿠데타에서 거의 그대로 실현됐다. 부정선거 시비와 규탄시위, 시위의 폭동화와 전국적 확대, 정치적 위기의 고조 순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라틴 아메리카 정치에서 하나의 공식이다. 촉발 계기는 달라도 2002년 베네수엘라와 2008년 온두라스, 2016년 브라질의 탄핵 쿠데타, 2018년의 니카라과 사태 등에서 미국 정부는 국가민주재단(NED)을 내세워 라틴 아메리카판 컬러혁명을 반복했다.

 

이미 예견된 쿠데타(?)

 

반정부 우익은 일부에서 선거 보이코트를 주장하며 폭력시위를 벌였고, 선거에 참가한 세력은 투표 전부터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10월 20일 대선 투표에서 에보 모랄레스의 승리는 거의 확실했고 다만 문제는 모랄레스가 과반수 득표 또는 과반수에 미달하는 경우 상대 후보에게 10퍼센트 이상의 격차를 벌여 결선투표 없이 승리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그럼에도 반정부 우익의 무차별 공세가 가능하게 했던 정치적 단초는 2016년 연임 개헌 시도였다. 2016년 모랄레스는 2009년 헌법이 금지한 연임조항을 개정하려는 국민투표에서 뼈아프게 패배했다. 이후 헌법재판소 판결이라는 편법을 통해 연임을 가능하게 한 다음, 10월 대선에서 47.08퍼센트 득표로 승리했지만, 2005년 53.74퍼센트, 2009년 64퍼센트, 2014년 61.36퍼센트 등 과거의 압도적 과반득표에 비하면 모랄레스의 정치적 정당성과 지지도는 상당히 훼손당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폭력이 있었지만, 10월 20일 개표가 시작되면서 부정투표과 개표조작을 이유로 반정부 세력의 조직적 저항과 폭력사태가 본격화했다. 카를로스 메사는 개표 초반부터, 즉 개표 초반 아직 표차이가 10퍼센트 이상 벌어지지도 않은 시점부터 투표 부정을 주장했다. 마지막에 개표할 곳은 농촌의 투표구와 해외 부재자 투표였는데, 모랄레스의 몰표가 예상되고 있었기 때문에 모랄레스의 결선투표 없는 승리가 확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판을 깨고 나선 카를로스 메사는 부정투표에 항의하는 전국적 시위를 선동했고,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와 폭력사태가 이어졌다. 카를로스 메사와 함께, 전통적 반정부 우익의 기반인 산타크루스에서 시민위원회의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가 반정부 폭동을 이끌었다. 가짜뉴스와 폭력선동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부정선거 규탄에 나선 반정부 진영은 볼리비아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세력을 결집시킨 것처럼 보였다. 전통적으로 모랄레스의 지지층이었던 코카 재배 농민과 광부, 좌파적 입장에서 정부를 비판한 수도 라파스의 교사, 무상의료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와 의과대학생 등이 우익 시민위원회의 반정부 시위에 합류했다.

 

그러나 폭력사태를 주도한 것은 우익과 미국이 조직하고 매수한 청년 폭력배들이었다. 카를로스 메사가 이들에게 일당을 지불하면서 매수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폭로된 사실이다. 이들의 거리시위는 단순히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모랄레스와 집권당을 지지하는 원주민에 대한 무차별 구타, 당사와 원주민 가게의 방화 등은 강력한 인종주의적 폭력이었다.

 

국제 주류 언론은 객관성을 포장한 채, 이번 반정부 시위가 마치 광범한 선거부정에 분노한 자연발생적 투쟁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익의 폭력공세는 원주민과 모랄레스 지지 세력에 대한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살상과 폭행의 연속이었다. 한 원주민 여성은 “거리에서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식들이다. 이 아이들은 술과 마약에 매수돼 거리에서 사람을 때리고 건물에 불을 지르고 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쿠데타의 미스터리-모랄레스의 자충수(?)

 

반정부 우익의 무차별적 폭력이 지속되자, 모랄레스는 안이하게 미주기구(OAS) 측에 개입과 공정한 재검표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주기구의 조사단은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대표(베네수엘라 정부가 아니라 후안 과이도 그룹)가 주도했다. 이 시점에서 카를로스 메사는 미주기구가 모랄레스 정부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면서 미주기구의 중재를 거부했다. 그의 의도는 지속적인 폭력사태를 증폭시켜 모랄레스 정부를 더욱 압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미주기구 조사단은 예정된 날짜(11월 14일)보다 더 일찍 재검표 예비결과를 통보하면서, 대규모 부정이 발생했으므로 모랄레스 정부에 재선거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미주기구의 권고에 따르기로 약속했던 모랄레스는 사태의 진정을 기대하면서 재선거 실시와 선관위 개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거듭되는 유엔 등 국제기구의 호소를 무시하는 반정부 진영의 폭력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인 11월 11일 모랄레스는 전격 사임을 발표한다. 공식적인 사퇴의 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고 더 이상의 폭력을 막기 위한 결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BBC와 여러 언론은 이 시점에 모랄레스가 군부와 경찰로부터 사퇴 요청(?)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일부에서는 지속된 폭력사태로 대통령의 사저까지 불타는 상황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는 추측성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사임 결정을 강제한 요소가 무엇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모랄레스는 전날인 11월 10일 <텔레수르>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재선거와 선관위 개편의 정치적 결단을 강조했고, 사임을 단호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전격적인 사퇴 결정은 더욱 많은 의문을 던진다. 또 인터뷰에서 모랄레스는 군 개입 우려에 대해 “군대는 문제가 없고, 거리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볼리비아 군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했었다.

 

더 나아가 모랄레스 외에도 권력승계 서열에 있는 부통령과 상원의장까지 동시에 사퇴함으로써 모랄레스와 사회주의운동(MAS)은 정권 자체를 완전히 포기했다. 이 역시 의문스러운 행보다. 설사 모랄레스 자신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하더라도, 리네아 부통령이 권력을 승계해 사태 수습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승계 예상자들이 모두 동시에 사퇴한 것은 동반사퇴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특히 대선 투표에서 모랄레스의 승리 자체는 의문의 여지가 없고, 집권당이 상하원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했으며, 지자체 선거에서도 80퍼센트 이상의 시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모랄레스와 리비에라가 한 번에 정권을 모두 포기한 이유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쿠데타 전 과정에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이 메카니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앞으로 밝혀져야 할 문제이다. 폭력사태로 정치적 위기를 촉발한 카를로스 메사와 페르난도 카마초는 표면적으로 이번 반정부 투쟁의 지도자들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모랄레스와 MAS 정부를 압박한 군부 또는 경찰의 실체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물론 모랄레스는 트위터를 통해 원주민 봉기를 인용해 “투팍 아마루처럼 수백만 명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협박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코차밤바에서 멕시코로 떠나면서도 “다시 강해져서 형제자매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계획은 현재로선 주관적 소망일뿐이다.

 

사퇴 이후-투쟁은 이제부터

 

반정부 우익은 산타크루스를 기반으로, 친정부 세력의 핵심 기반인 라파스와 코차밤바까지 진출해 반정부 폭동을 전국화함으로써 쿠데타의 절대조건인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였던 모랄레스 지지자들과 원주민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살해했다.

 

그러나 모랄레스의 사퇴 이전부터 폭동사태가 길어지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라파스 사회운동 지도자들은 페르난도 카마초에게 48시간 내에 라파스를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적 시위에 나섰다. 그런데 모랄레스의 갑작스런 사퇴 이후 상황은 다시 급변했다. 모랄레스 지지자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우익 폭력의 방관 또는 수동적 수용이 가져온 결과가 새로운 저항의 동학을 작동시켰다.

 

2005년부터 14년 동안 모든 수단을 통해서 좌파 정권의 전복을 시도한 우익 과두제는 일단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미국의 비호 아래, 볼리비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 헤아니네 아녜스가 임시정부가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지도 미지수이며, 임시정부 아래서 실시될 재선거가 곧 우익의 정권 복귀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본격적 대결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볼리비아 쿠데타와 라틴 아메리카 정세

 

올해 상반기에 베네수엘라 우익 쿠데타가 실패했고, 10월에는 레닌 모레노의 IMF-긴축에 맞선 에콰도르 민중항쟁이 승리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대선에서 좌파가 승리하면서, 민중의 저항이 선거의 승리로 이어지는 흐름이 형성됐다. 또 칠레에서 신자유주의 우파 피녜라 정권이 전민중적 저항에 부딪혀 위기 속으로 휘말리면서, 2015년부터 기세등등했던 우익의 기세가 꺾이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에보 모랄레스의 사퇴로 2019년 라틴 아메리카 정세는 다시 요동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강제하려는 우파 정권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거나 선거에서 패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 정권에 대한 우파의 폭력공세가 지속되는 혼미한 정세로 바뀌고 있다. 어쨌든 라틴 아메리카에서 반신자유주의-반긴축 민중투쟁은 선거정치와 맞물려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원영수 국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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