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과 권력자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 기사승인 : 2021-10-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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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명의 고전 성독

여행의 발길이 우연히 ‘허균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 기념관’에 이르렀다. 난설헌은 蘭雪軒이요, 난초와 눈을 그리는 집이다. 영혼의 맑기가 이랬다는 말인가. 본명은 초희(楚姬)다. 아버지는 허엽(許曄), 오빠들은 허성(許筬)과 허봉(許篈), 동생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이다. 아버지와 아들딸 네 자녀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강릉 ‘5문장가’라 칭송한다. 아버지와 아들딸이 자랑스럽다.


영특한 어린 초희는 서자 출신 천재 시인 이달(李達)에게 한시를 배워 학문이 깊어졌다. 이럴수록 중세라는 시대적 한계, 남편의 열등의식으로 금이 간 부부금슬, 더하여 고부간의 갈등은 난설헌을 힘들게 했다. 친정 집안은 몰락하고, 어린 자녀들을 일찍 잃고, 뱃속의 아기까지 온전할까 노심초사하며 지내야 했다. 사회 불공평, 여성 억압, 불행한 가정사 등 이 모든 시련을 시 창작으로 승화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까지 문명(文名)을 날렸다.


마침 뉴스를 타고 권력자 아들들의 과도한 일탈이 충격을 준다. 권력자의 아들은 음주운전을 해도 빠져나간다. 집행유예 기간에 또 음주운전을 했다. 눈에 뵈는 게 없다. 또 다른 권력자의 아들은 수십억 원이라는 비상식적인 퇴직금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한다. 후안무치 안하무인의 극치다. 권력 남용이 자식을 망치는 안타까운 사례다. 강릉 허씨 부녀 다섯 문장가, 난설헌과 일찍 잃은 자녀들, 비난받는 권력자와 아들들이 함께 역사를 수놓는다.

곡자(哭子)라 : 먼저 간 아들딸을 그리며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하고 : 지난해 사랑하는 큰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를 :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여 : 슬프다, 너희 묻힌 광릉 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를 :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섰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하고 : 으스스 백양나무 바람에 흔들리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를 : 도깨비불 소나무 가래나무에 반짝여
紙錢招汝魄(지전초여백)하고 : 종이돈으로 너희 넋을 부르고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를 : 맑은 물을 너희 무덤에 따른다.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하고 : 마땅히 형제간에 혼을 알아보고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를 :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겠지.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하나 : 비록 어미 뱃속에 아기가 있으나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을 : 어찌 장성하기를 바라리오.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하며 : 부질없이 황대사 읊으며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을 : 슬픔을 머금고 피눈물을 흘리노라.
<蘭雪軒詩集>

*黃臺詞(황대사) : 본처 소생이 계모의 계략에 걸려 죽을 처지를 알고 벗어나려고 부른 슬픈 노래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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