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개와 덮개작물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1-12-13 00: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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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악몽 같은 텃밭 낙원으로 바꾸기(2)

아내와 제가 일구는 밭들은 산골이어서 여러 다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 한 밭떼기는 돌아가며 한두 해 농사짓지 않습니다. 휴경입니다. 이런 밭은 여름이 채 깊어지기도 전에 푸서리, 풀밭이 되고 맙니다. 쑥대밭이 따로 없습니다. 두 번째 봄을 맞을 즈음에는 실로 다양한 풀들이 뒤죽박죽되어 밭을 가득 메우게 됩니다. 농사짓는 다른 밭 가에서는 흔히 보기 드문 것들도 뒤섞여 있습니다. 심지어 꽃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꽃도 피어나는 걸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생태계의 조화입니다. 땅과 흙이 주인공이라면 바로 이러한 푸서리가 낙원일 것입니다. 그래서입니다. 휴경을 마친 밭은 기름집니다. 단순히 영양이 풍부한 것이 아니라 작물이 자라기에 매우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한두 해 쉰 밭이 좋아졌을까요? 핵심은 뿌리입니다. 뿌리와 흙의 왕성한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흙 속의 미생물이 많아지고 다양해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시사철 빼곡히 흙을 덮은 식물들 덕입니다. 이뿐이겠습니까? 워낙 많은 이유가 있어 그저 총체적인 선순환이 이루어져 그렇다고 얼버무리겠습니다. 잰 체하자면, 생태계의 동적 균형의 산물입니다.

▲ 오이, 호박, 콩 터널 안쪽에 심은 청보리

풀과 하는 싸움의 기술


제가 앞선 글에서 ‘덮개로서 가장 좋은 것은 살아있는 작물’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 ‘작물’에 풀은 단연코 포함되지 않습니다. 거칠게 비교하자면, 풀은 프로선수이고 농작물은 아마추어입니다. 경쟁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텃밭을 여러 해 하면서 내공이 쌓인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알뿐 아니라 대응체제도 마련합니다.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제초제입니다. 농작물을 심기 전에 선택적인 제초제를 뿌리는 텃밭 농민이 실제로 있습니다. 농작물 심을 자리만 빼꼼히 내놓고 이른바 제초매트라고 불리는 부직포를 이랑, 고랑 할 것 없이 죄다 덮는 이도 있습니다. 작기 내내 죽기 살기로 풀과 사투를 벌이는 이도 있고요. 아예 풀과 농작물의 공존을 선언하고 내버려 두는 분도 계시고요. 이게 가장 나쁜 예인데, 작기 내내 풀과 싸우다 말기를 반복하는 이도 있고요. 잘잘못을 떠나서 이 모든 방책은 흙의 거죽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문제에서 파생된 결과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덮개로서 가장 좋은 것은 살아있는 작물입니다. 단편적인 예를 들겠습니다. 혹시 올 초겨울에 마늘 심은 분이 있으시다면 이렇게 해보시죠. 아무런 덮개 없이 심었든 비닐을 씌우고 심었든 상관없습니다. 내년 3월 중순, 마늘을 심지 않은 자리에 당근 씨를 적당한 간격으로 심으세요. 비닐 덮개를 한 경우 비닐을 벗겨도 되고 그냥 둔 채로 구멍을 내 그리 해도 됩니다. 이를 섞어 심기(혼작)이라고 합니다. 당근은 이파리가 제법 무성해서 마늘밭의 온습도 조절에 일정한 이바지를 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풀도 억제하는 수단이 됩니다. 수확하여 드실 수도 있겠네요. 3월은 지역과 날씨에 따라 당근 심기에 이른 감이 있어 수확물이 불량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마늘밭에는 3월에 심으시기 바랍니다.(텃밭에서 섞어 짓기나 사이 짓기는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봄 즈음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풀을 직접 상대하지 않으면서도 풀을 억제하는 좋은 기술 아닐까요?
 

▲ 이랑과 고랑 사이에 심은 메밀

5월, 사막의 계절

덮개를 논하면서 자꾸 풀을 들먹이는 것은 자연 생태계에서 풀은 다양성의 상징이고, 자신을 포함한 식물들이 좋은 조건에서 서식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텃밭에서는 악당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당근의 예처럼 밭에서는 밭작물을 활용하여 풀의 역할을 인위적으로 도모해야 합니다.


친환경을 존중하는 어떤 분이 풀의 생장점에서 잘라 덮개로 삼는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밭을 갈아 깔끔한 자리에 최초로 작물을 심게 될 때, 작물 사이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고민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생장점을 자르면 거의 모든 식물은 마구잡이로 생장점이 생깁니다. 놀라운 생명력입니다만,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늘어난 생장점만큼의 꽃대를 올릴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강인한 생명력입니다. 친환경 농민의 의도는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땅바닥을 기게 만들겠다는 전략입니다. 일종의 잔디로 만드는 것이죠. 잘라낸 것은 덮개로 사용해서 땅에 되돌려준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작물을 심게 되는 5월 초는 그리 하고 싶어도 풀이 별로 없습니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은 밭은 거의 한 달 사막이나 다름없는 살풍경한 밭으로 변합니다. 그사이 돋은 싹이나 모종은 이른 봄의 뙤약볕과 밤낮의 큰 일교차를 고스란히 제 몸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그들의 처지에서는 반환경의 조건에 온몸을 내맡기는 셈입니다.


다행히 풀이 마구 자라 주어서 생장점에서 베어 자른 부분은 작물 사이를 덮어주었다고 합시다. 생장점을 일일이 훼손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덮어준 이파리들은 금세 사라지고, 아니 증발하고 맙니다. 작물이나 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죠. 밭고랑과 이랑에 난 풀의 양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풀을 덮으시겠다면, 잠시 후 말씀드릴 작물 심기 전의 밭 덮개를 염두에 두시면서 이렇게 하시죠. 밭 주변에서 왕성하게 자란 풀들을 모아 통에 담은 다음 물을 가득 채워주세요. 담은 통의 입구는 그늘질 정도로 덮어 3~4일 두었다가 밭에 덮어주는 겁니다. 양은 많을수록 좋겠죠. 덮개의 효력이 그냥 덮을 때보다 훨씬 오래갑니다.
 

▲ 콩과 메밀의 섞어 심

심은 사이에 심기

마늘밭에 당근 심기를 말씀드렸는데요. 이를 확장해보겠습니다. 당근 심기 약 한 달 이전인 2월 중순, 언 땅이 녹을 무렵 마늘밭 이랑이 아니라 고랑에 보리를 파종하는 겁니다. 줄을 그어 심거나 흩뿌림 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적정량을 심는다는 차원에서 줄뿌림이 나은 것 같습니다. 마늘밭에 당근을 심거나 웃거름을 주기 위해 걸어 다닐 공간이 필요할 텐데요. 고랑이 너무 좁으면 마늘밭의 한쪽 고랑만 심도록 합니다. 비어 있는 밭도 마찬가지로 고랑을 엇갈리게 심으면 되겠습니다. 밭 가장자리에도 심어 줍니다. 혹시 고추 심기가 예정된 밭이라면 고추를 심게 될 줄만 비워두고 보리를 심습니다. 이러자면 일찌감치 2월에 텃밭을 고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지난해 가을에 이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나았겠습니다만, 현재의 계절인 12월에 드리는 조언입니다.


2월에 이런 작업을 하셨다면 작물을 대대적으로 심게 되는 4월 중순이나 5월 초의 밭 풍경은 어떨까요? 잘 자랐다면 어른 종아리 정도 높이로 자란 보리밭으로 보이겠습니다. 그 보리밭 사이에 작물을 심으시면 됩니다. 생각만큼 작업하기에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번거로우시면 이렇게 생각해보시죠. 잘 자란 보리는 흙 속뿐 아니라 밭 공간의 온습도 조절에 큰 역할을 합니다. 심지어 5월쯤 출몰할 진딧물을 줄여주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보리가 그리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또 보리를 심을 때에 완두콩을 사이사이 심게 되면 후에 자란 완두가 보리에 기댈 수 있어 좋습니다. 보리가 가늘어 못 미더우시면 완두 심은 사이에 옥수수를 심어주면 잘 타고 올라갑니다. 물론 옥수수는 완두와 함께 심기에 이르니까 4월 초순에 파종합니다. 모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습도 유지는 텃밭 농민이 직접 해주지 못합니다. 오로지 날씨가 관장하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먼저 자란 작물이 곁에 함께 하면 새로 파종된 씨앗이나 모종이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 흙 안팎에서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심은 작물에 방해될 정도로 보리 키가 커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다음 글, 덮개 만들기에서 설명하겠습니다.

 

▲ 보리에 나타난 진딧물의 강적, 무당벌레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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