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 ‘훌훌 훨훨’] 오월의 포구 연가-처용암과 목도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2-05-23 00: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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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시인이 손님으로 왔다. 타지역이 고향이지만 어린 시절 울산으로 이사를 와 고향처럼 사는 이와, 울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시인을 맞았다. 울산을 잘 모르는 이가 찾아왔을 때 어디를 소개해 주면 가장 좋을 것인가. 화려한 꽃이 피어 한창 보기가 좋은 태화강국가정원으로 안내를 할까, 바다 경치가 절경인 대왕암으로 갈까. 시인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고민했다. 산업도시의 근간을 이루며 외지인들이 더 많이 유입되어 성장한 울산, 누군가에게 울산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나조차도 잘 모르는 울산은 과연 어떤 곳일까, 모인 이들 모두 함께 그 속살을 들여다보자 했다. 시인은 자신이 태어난 곳도 바다였는데 지금은 간척이 되어 바다가 그립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잃어버린 바다의 추억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바다에 머물러 살고 있는 사람이든 떠나 사는 사람이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도로로 들어섰다. 화학, 정유 공장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창문을 꼼꼼히 닫아도 화학물질에서 발생하는 냄새가 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시인은 그것이 차 안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고 창문을 연다. 누구도 먼저 말해주는 이가 없었으므로. 안내하는 우리들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으나 괜스레 미안해진다. 나는 이곳을 언제 와봤던가. 아마 십수 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그렇게 인적 드문 바다로 가는 길은 화물차들이 대부분이고 도로는 스산하기까지 하다.


처용암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자동차를 세웠다. 정자가 있는 작은 포구다. 수리할 것이 있는 배가 뭍에 올라와 있고 요트와 몇 척의 배가 줄이 매어져 묶여있다. 내리자 몇십 미터 앞 바다 위로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풀로 뒤덮인 볼품없는 바위섬이 덩그러니 앉아있다. 짙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 저만치 바다 건너편 공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공장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혹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적막함에 마음 먹먹해지는 처용암이다. 포구는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인데 울주군 온산읍 처용리와 경계하고 있다. 처용에 대해서는 일반 사람들도 대부분 잘 알고 있다. 2022 수능에도 나올 만큼 의미 있는 설화다. 시인도 처용에 대한 시를 지은 것이 있다고 했다. 처용암을 실제로 처음 본 것이다.

울산만에서 외황강을 따라 내륙 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곳은 약 6000년 전 신석기 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라의 장려 사업으로 마을 사람들이 김양식을 했고 김양식에 쓰인 대나무발 ‘세죽’을 사용해서 마을 이름이 세죽이다. 세죽,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대여섯 살 때 아버지가 이곳 초소에서 순경으로 근무를 했다. 이곳에 예전 술집이나 식당들이 즐비했다는 말을 일행 중 누군가 꺼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세죽, 이 마을에 형제들과 엄마가 방문했을 때 최순경 가족이라고 인사를 하면 마을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며 용돈도 주곤 했다.

 

▲ 김양식 할 때 쓰던 세죽이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된 세죽마을

처용은 <삼국유사> 권2 기이편 ‘처용랑 망해사’ 조에 나오는 설화의 주인공이다. 통일신라 49대 헌강왕이 이곳 개운포(開雲浦) 나들이를 왔을 때 구름이 드리워지고 안개가 자욱해지면서 갑자기 날씨가 궂어지자 이유를 물었다. 동해 용의 장난이니 좋은 일을 하여 풀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고 그리 지은 절이 망해사다. 용이 기뻐하며 나타나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의 여덟 아들 중 하나가 처용이다. 처용암이 초라하게 관리되고 축제가 축소돼 예전의 명성을 잃고 있는 것은 몇 해 전 논란이 된 처용가 때문이다.

서라벌 밝은 달에 밤들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로리 넷이러라/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건만 앗음을 어찌하리고

아내가 역신과 잠자리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부른 노래가 처용가다. 설화의 내용이 외설스럽고 무당을 기리는 일은 우상숭배라는 단편적인 논리가 등장했다. 학계에서는 처용은 향가의 주인공일 뿐이고 비록 고대 무당이라 하더라도 천 년 전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특정 종교가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마도 그 논란의 중심에 있어서 그런지 처용문화제는 많이 축소돼 울산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저리 초라한 모습으로 찾는 이 없는 조그만 바위섬이 된 처용암 앞에 다들 마음이 좋지 않았다.

 

▲ 포구에서 옛 추억을 찾아 여행하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목도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1967년 공업축제로 시작해 지금까지 올해로 56회를 맞으며 이어져 내려오는 처용문화제가 있다. 당시에는 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시 전역에 걸쳐 가장행렬을 비롯해 무척 성대한 축제였다. 인류 문화 다양성의 원천으로 창의성을 증명하는 데 기여해 처용무는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세종대왕 때 유일한 남자들의 궁중무로서 오방처용무라는 춤으로 승계돼 국가 중요무형문화제 제39호로도 지정돼 있다.


처용무는 궁궐에서는 악귀를 쫓아내고 새해를 맞아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진행됐다. 가면, 의복을 비롯해 춤과 노랫말, 악기 등 여러 분야에서 확장됐다. 성종 때 쓰인 악학궤범에는 3악장으로 되어있는 봉황음을 비롯해 처용무에 쓰인 여러 음악이 수록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불교음악인데 영산회상, 미타찬, 관음찬 등이다. 오방처용무에 참여한 악공은 67명이나 되고 가야금, 거문고, 당피리, 대금, 동발, 장구, 해금 등 악기도 무려 20여 종이나 됐다. 고유한 풍습을 중시한 선조들의 수준 높은 예술 문화다.

 

▲ 목도 전경. 지금은 공장에 둘러싸인 동백섬

한 나라의 문화에서 가장 의미 있고 주목받아야 하는 진짜 문화는 변방의 지역 문화다. 앞에서 한발 물러서 용서하고 춤과 노래로 승화하는 의미를 담은 가무인 처용무는 이 시대에도 닥친 역병 앞에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할 좋은 의미 전달로 손색이 없다. 멋진 여러 콘텐츠로 천 년을 넘게 이어온 설화를 현시대의 잣대로 누구도 결코 재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곳 세죽에서 배를 타고 십 분 정도 들어가면 목도라는 동백섬이 있다. 공장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울산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인 섬이다. 당시 유원지가 많이 없던 시절 동백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아주 인기가 있었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천연기념물 제65호다. 면적은 축구장 2배 정도 되는 작은 섬이다. 하지만 동해안 유일하게 동백, 후박나무 등 상록수림이 많이 자라는 자그마한 섬이다. 1970년대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집단 이주를 하고 세죽과 목도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 목도는 훼손돼 보존 명목으로 벌써 30년째 입도 금지가 되어있다. 몇 달 전 문화재청 심의가 있었고 다시 10년 동안 개방이 금지된다. 40년이다. 올해 한 시의원은 그것이 정유 화학 공장을 가진 대기업의 압력이고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재심의를 요청했지만 아직 별다른 답이 없다고 한다. 시에서는 문화재청 관리 지역이라며 적극적인 대응도 하지 않는다.

 

▲ 세죽마을에서 바라본 처용암

사실 목도가 다시 개방된다 해도 결코 예전의 명성으로 사람들이 찾지는 않을 것이다. 화물차들이 위험하게 다니는 산단지역의 화학 공해 가스를 맡아가며 공장으로 둘러싸인 섬을 보고자 하겠는가. 하지만 그 역사 그 시절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단지 섬 하나가 아니라 마음의 고향이며 뿌리가 되는 것이다. 존재의 증명이 아닌가.


누군가 울산은 모래알 같은 도시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수백 년 수천 년을 바닷속 뿌리로 엉켜 서로를 지켜내는 열대의 맹그로브 나무가 떠오른다. 진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것이 새로 생겨난다는 것과 격이 다르다. 지난 상처의 과거를 품고 확장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고 흉내 내지 못하는 유일이 되는 것이다. 처용암과 목도는 바닷속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그곳에 탑을 쌓아나가면 될 일이다.

 

▲ 포구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인

후미진 구석 마을, 먼바다를 바라보며 시인이 한참을 서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는 그의 고향 바닷가가 떠올랐을까. 포구에는 그 흔한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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