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고릿한 기억

최미선 한약사 / 기사승인 : 2021-10-12 00: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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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약재 산책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 아래 으깨진 은행에서 고릿한 냄새가 올라온다. 나에게 이 냄새는 외할머니와 연결고리다. 외할머니는 오랫동안 천식으로 고생하셨다. 밤에 숨이 차서 누워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산촌의 가난한 살림살이로 할머니는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었다. 할머니 옆에서 항상 잠이 든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숨을 헐떡거린 채 이불에 기대어 앉은 할머니를 무력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누군가가 할머니에게 은행 과즙을 짜서 먹으면 천식이 낫는다는 말을 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부턴가 방안에 고릿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은행 과육의 즙을 내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찡그리며 그 냄새나는 노란 물을 마시던 할머니의 표정이 흑백사진처럼 기억에 박제돼 있다. 


그 후로도 할머니 천식은 나아지지 않았다.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는 그렇게 천식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지금도 은행 과육의 고릿한 냄새에는 가쁘게 몰아쉬던 할머니의 모습과 이별을 예감했던 어린 두려움이 함께 실려 온다. 

 

 


은행이 천식과 숨 가쁨, 기침에 효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과육 즙이 아닌 그 안에 든 씨앗 즉 백과에 있다. 백과는 익은 과실을 채취해 겉껍질을 제거한 후 사용하는데,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면서 약간 쓰다. 이 백과는 주로 밖으로 나오는 체액과 관련된 증상에 사용한다. 위로는 기침과 가래 천식 등에 사용하고 아래로는 백색의 대하나 소변을 자주 보며 잘 참지 못하는 증상 등에 사용한다. 백과에는 독성 물질이 함유돼 있어 반드시 익혀서 먹어야 하고, 익혀서 먹을 경우에도 많이 먹으면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어 성인은 10알 미만으로 먹을 것을 권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할머니가 고릿한 냄새 나는 은행 과육 즙을 내서 드시던 그 시절, 은행 열매를 대신해서 드셨다면 할머니의 천식은 좀 나아졌을까?


최미선 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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