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울산-365경> 로케이션 촬영지 보고(寶庫)-남목 울산마성

이민정 시민 / 기사승인 : 2022-05-02 0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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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 동부산(山) 산197-1에 있는 울산마성은 조선시대 왕실의 말을 기르던 곳이다. 남목에 있어 지금은 남목마성으로 더 많이 불린다. 해안가나 섬을 중심으로 전국에 200여 개의 목장이 설치됐다. 말이 도망갈 수 없도록 목장 둘레를 돌로 담장을 쌓아 올렸다. 감목관(監牧官)이 파견된 국영목장은 9개고, 울산마성이 그중 한 곳이다. 근처에 봉화를 쏘아 올리던 주전봉수대, 울산테마식물수목원 등으로 이어지는 남목역사누리길이 조성돼 있다. 실제로 한참을 걸어 남목관비(碑) 너머로 돌무더기들이 보이는데 그것이 마성의 흔적이다. 거대한 돌담을 상상하다가 막상 이 초라한 흔적을 보면 살짝 실망스럽다. 공사판의 깨낸 돌무더기 같다. 고증에 따르면 울산마성 둘레는 약 3킬로미터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원형으로 변환해 원주율 공식에 넣어보면 지름이 약 950미터쯤이고, 넓이는 약 22만 평쯤 된다. 축구장 약 100개 넓이다. 1998년 10월 19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됐다.


안내판의 해안가나 섬을 중심으로 목장을 만들었다는 말에서 제주도에도 삼다수로 말이 유명한데 왜 바닷가에 목장이 형성됐는지 궁금해졌다. 포털에서 여러 키워드를 넣어가며 자료조사를 했지만 언급 자체가 없었다. 제주도 삼다수에 말이 포함된다는 말밖에 없다. 그건 나도 안다. 늘 마감시간이 다 돼서야 원고를 쓰는 처지가 되고 보니 전문자료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답답해하던 차에 사단법인 한반도평화와번영을위한협력에서 알게 된 민두홍 씨가 전화를 해왔다. “오빠야가 안 보고 싶더냐”는 말에 말목장이 왜 제주도 등 해안가에 형성됐는지 알아오면 보고 싶어 해주겠다고 하자 문득 본인도 갑자기 궁금해졌다며 전화를 끊는다. 5분도 안 돼서 정답인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해설사에게 믿을만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전화를 해왔다. 말인즉슨, 우리나라는 산이 많았고, 말을 키우는 동안 신나게 달리게 해주려면 평지가 적합하다는 이유라고 했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일단 원고 마감부터 해놓고 확인해볼 생각이다.

 

▲ 남목마성 진입로. ©이민정 시민기자

 

▲ 감목관이자 시인이었던 홍세태의 시비(詩碑).©이민정 시민기자

 

▲ 남목마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이민정 시민기자

산길을 따라 차로 올라가다 보면 작은 다리가 하나 나오고, 올라가는 길에서 오른쪽으로는 남목 도심지가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주전바다가 작은 산 사이로 빛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차로 다리를 건너는 동안 앞의 풍경만 보느라 미처 몰랐는데 그 장면을 찍으려 한 곳에 차를 두고 보니 다리 아래가 아찔하다. 신설된 도로 위로 7, 8층 높이에 걸쳐진 다리라 심장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어떡하든 다리 위에서 보이는 풍경을 찍어보려 했지만 결국 한 컷도 못 찍었다. 내려올 땐 다행히도 도로로 바로 이어지는 샛길이 있어 그 다리를 다시 건너지 않아도 됐다.


웬만한 수목원 못지않은 풍경들이 이어진다. 곳곳의 나무 모양새가 다르다. 작은 나무들이 새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위로 쭉 뻗은 젊은 나무가 있나 하면 굽이굽이 몸을 비튼 늙은 나무들도 있어서 걸어갈 때마다 슬라이드 쇼를 보듯 풍경이 자주 바뀌었다. 어떤 나무는 길을 만드느라 산을 깎은 단면에 뿌리를 그대로 노출한 채 자라기도 했다. 식물에는 문외한이라 나무가 저렇게 자라도 되나 싶다. 사람 뱃가죽을 도려내어 장기가 겨우 붙은 채 사는 모습을 보는 듯한 위태로움이 있다. 울산365경을 촬영하며 억지로 길을 내놓은 곳에는 대개 그런 나무가 꼭 한 그루씩 있었다. 어떤 나무는 밑둥치가 속이 텅 빈 채 굵고 높은 줄기로만 버티면서 연두색 새잎을 뽑아내기도 했다. 기괴하면서도 경이롭다.

 

▲ 뿌리를 드러낸 나무.©이민정 시민기자

 

▲ 남목마성 진입로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주전바다와 공단.©이민정 시민기자

 

▲ 남목마성 진입로의 오솔길.©이민정 시민기자
그날 마성에서만 5000보 정도 걸었으니 차가 더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마성까지는 제법 거리가 멀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왔다. 그만큼 다채로운 오솔길이 이어진다. 마성으로 향하는 길에 왼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좀 전에 주전바다를 봤음에도 나무 너머로 산이 있을 것 같은 고정관념에 주전바다와 공단이 낯설기 때문이다.


마성터의 좁고 편편한 곳에 평상이 하나 있다. 여기서 김희정 작가가 싸온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그동안 촬영일마다 개인 일정이 계속 이어져 촬영에 참여하지 못한 게 미안해서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김밥 속을 많이 채우지 못해 민망하다며 물과 함께 내놓았다. 김밥의 미덕은 단무지. 단무지만 있어도 김밥은 완성된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매력적인 장소 중 하나는 마성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30여 평쯤 되는 잔디밭이다. 사진으로 잡으려니 앵글이 잘 안 나오긴 했지만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의 장면에는 무척 좋을 장소다. 영화를 업으로 살다 보니 늘 화면비를 16:9에 맞춰오다가 최근 사진 작업은 4:3으로 하고 있다. 예전 필름 규격이야 4:3이었지만 미장센에 있어 특별한 의도가 아니고는 16:9, 2.35:1 또는 그 이상, 가능한 와이드앵글이 시원하다. 가로비를 늘리면 아마 더 좋은 장면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울산마성 감목관비.©이민정 시민기자

 

▲ 울산마성 감목관 사택 터.©이민정 시민기자

나무가 많은 곳을 가면 사극이나 무협영화가 가능한지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2005년 첫 작품으로 준비하던 <케테르>가 판타지 무협이었는데, 지금도 겉멋 가득한 판타지 액션을 연출하고 싶은 로망이 있어서 그것부터 확인한다. 대부분 특수촬영장에서 크로마키 촬영을 하게 되겠지만. 그 작품은 엎어졌지만. 그리고 지금은 다큐멘터리로 노선을 바꾸긴 했지만. 그럼에도 판타지 무협 연출에 대한 미련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마성 인근의 숲길은 그런 장면이 가능한 곳이 제법 있다. 내가 쓰던 판타지 무협은 불특정한 시대와 정통성 없는 액션을 지향하기 때문에 아무려면 어떠랴만, 그래도 전선이나 시멘트는 될 수 있는 대로 없는 게 더 좋다. 마성으로 오고 가는 길에서 시멘트 대신 납작한 돌이나 흙이 마음에 든다. 다만 오솔길이라기엔 폭이 넓은 흙길이 조금 아쉽다.


마성 진입로에서 300미터쯤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옛 성곽 전망대가 있다. 대리석으로 안내판이 있고, 수백 년의 세월이 묻은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여지없이 아파트와 주택들이 들어차 있다. 그 가운데 감목관 사택 터가 있다. 파스텔톤의 연두색과 노란색 둥근 지붕의 작은 학교가 있는데, 그 터를 보존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유서 깊은 장소에 있는 학교란 의미도 제법 크겠다 싶기도 하다. 바로 뒤에 남목성당이 있고, 우주아파트 등 지은 지 오래됐을 크고 작은 공동주택단지들이 가득하다.

 

▲ 남목마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남목 도심지.©성경식

 

▲ 남목마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주전바다.©성경식

 

▲ 남목마성 터.©성경식

제법 긴 산책로와 오솔길에서 화장실은 마성터 인근에 딱 하나가 있다. 마성을 오르내리는 길은 여러 갈래다 보니 나름대로 중간 지점을 잡았나 보다. 여자화장실은 딱 두 칸인데 안쪽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기겁하고 뛰쳐나왔다. 냄새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뻥 뚫린 변기 아래로 시커멓게 보이는 배설물과 그 깊이감 때문에 숨을 헐떡여야 했다. 호흡이 거칠어지니 온힘을 다해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손가락 한 마디 만한 파리가 날아다녀 밖에서 호흡을 골랐다. 다른 칸으로 들어가 급하게 볼일 보고 나온 뒤 한참을 밖에서 숨을 뱉어내야 했다. 친환경, 친자연 뭐 그런 것이려나? 화장실을 난립시키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이건 좀 곤란하다. 재래식 화장실을 처음 써본 건 아니지만 편리하고 깨끗한 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고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나처럼 높은 곳 싫어하고 예민한 사람은 대단히 곤욕스럽다. 손 씻는 곳도 없었다. 이 화장실, 좀 바꿀 필요가 있다.

 

촬영하던 날은 다섯 군데를 돌기로 돼 있어서 마음은 조급했지만 걷는 시간이 길어서였을까, 제법 여유롭게 풍경들을 감상했다. 여기는 연인이 등장할 장면, 여기는 사기꾼이 등장할 장면, 여기는 젊은 부부와 어린 자녀가 등장할 장면, 여기는 노부부, 그렇게 중첩되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그만큼 단조로운 듯 다채로운 곳이다. 둘씩 셋씩, 삼대가 한데 몰려다니면서 이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보기 좋았다. 죽은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이 됐다.

 

▲ 남목마성으로 향하는 오솔길. 저 멀리 남목마성 터가 보인다.©김희정

비슷비슷한 패널들이 많아서 스쳐 지나가려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커다란 시비 앞에 멈추기에 그 모습을 담았다. 남목마성의 감목관이자 시인이었던 홍세태의 <저녁에 앉아서>란 제목의 시다. 1연의 ‘흰 눈’으로 시작해 2연 ‘겨울 바다’, ‘추운 날씨’, 3연 ‘차갑게’로 이어지더니 마지막 4연은 ‘갓난아기’, ‘봄바람’, ‘입춘’으로 마무리된다. 겨울 긴 밤이 외로웠을 테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노래했다. 고즈넉하면서도 참 훈훈한 시다.


남목마성으로 오간 그 거리에도 어김없이 이런저런 조형물들이 있었다. 대개 그런 조형물을 볼 때면 번잡하다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내심 불만이었는데, 남목마성은 돌이나 나무를 활용해선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인공물과 자연이 잘 어울려 여린 연두색 잎들만큼 편안했다. 남목마성 일대는 좋은 촬영지다.


이민정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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