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춰주는 빛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 기사승인 : 2021-08-30 00:00:58
  • -
  • +
  • 인쇄
생활 속의 자연과학

우리는 빛을 통해 세상을 본다. 시각적 인식이 가능한 모든 것은 빛의 반사를 통해 그 형태와 색깔이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며 각막, 홍채, 수정체를 거처 망막에 상으로 맺히게 된다. 여기에서 각막은 눈의 최외각 조직으로 눈을 보호하고 빛을 굴절시켜 망막에 상이 전달되도록 하는 렌즈 역할을 하고, 홍채는 수축과 확장을 통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며, 수정체는 각막에 의해 굴절된 빛의 초점을 미세조정해 망막에 보다 정확히 상이 맺히게 한다. 망막에 도착한 빛은 그곳에 분포된 시세포에 의해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시신경 섬유다발을 통해 뇌의 후두엽으로 전송돼 영상으로 전환된다. 이런 빛에 의한 사물의 인식과정에 대해 1781년 출판된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는 빛은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되는 것이므로 우리의 본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에 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성의 한계에 대한 그의 사상은 빛의 세계에서 과학적 대상으로서 빛이 갖는 특성과 맥을 같이한다. 빛의 이중성이 바로 그것이다.


빛은 파동이자 입자다. 이것이 현재 과학이 이해하는 빛의 모습이다. 파동은 흐름을 의미하며, 입자는 알갱이를 지칭한다. 이것을 흐르는 입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파동은 흐름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입자와는 다른 것이다. 빛의 이중성이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빛이란 무엇인가?’는 과학사에 줄기차게 이어온 논쟁의 대상이었다. 고대 데모크리토스는 빛을 입자라고 주장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원소설을 통해 빛은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18세기에 이르러 아이작 뉴턴은 저서 <광학>에서 빛을 작은 입자의 흐름인 미립자라고 주장했고 당시 과학적 권위가 지대했던 그의 명성 때문에 빛의 파동성에 대한 주장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19세기 토머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빛의 파동설이 큰 힘을 얻게 됐고 이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전자기장의 역학 이론’을 통해 빛이 전자기파임이 이론적으로 입증됐다. 과학적 실험과 이론을 통해 ‘빛은 파동이다’라고 정리될 때쯤 20세기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 대한 논문과 아서 콤프턴의 ‘콤프턴 효과’에 대한 실험이 빛의 입자성을 입증했다. 빛이 파동인 것과 입자인 것이 이론과 실험으로 입증됐기에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졌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빛의 파동성에 대한 대표적인 증거는 토머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이다. 그림1에서 보는 것처럼 광원에 의해 방사된 빛이 단일 슬릿과 이중 슬릿을 통과하면 스크린에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교차해 빛의 띠 모양이 나타난다. 가장 밝은 부분을 중심으로 좌우로 점차 밝은 부분의 밝은 정도가 약해지면서 빛의 띠 모양이 만들어지는데 밝은 부분은 파동의 보강간섭으로, 어두운 부분은 파동의 상쇄간섭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빛이 입자라면 그림1에서 단일 슬롯을 통과한 빛은 이중 슬릿의 중앙에만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빛이 파동임이 입증된다. 

 

▲ 그림1. 이중 슬릿 실험 ©naverkpsdictionary

빛의 입자성에 대한 대표적인 증거는 아서 콤프턴의 ‘광산란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파장이 짧은 X선을 흑연에 쬈을 때 파장이 더 긴 X선이 관측된 것이다. 만약 빛이 파동이라면 흑연이라는 장애물에 부딪혀 반사된 파동의 파장이 동일해야 하는데 더 길어진 것이다. 그림2처럼 빛을 에너지와 운동량을 가진 입자로 가정해 적용했을 때, 입사하는 광자(X선)는 정지된 전자(흑연)와 충돌해 전자에 에너지를 전달하고 전자를 산란(방출)시키는 동시에 자신은 에너지를 잃은 후 산란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때 산란되는 X선은 에너지를 잃었기 때문에 파장이 길어지게 된다. 이를 통해 빛의 입자성이 입증됐다. 

 

▲ 그림2. 광산란 실험 ©naverkpsdictionary

파동은 연속적이고 퍼져나가는 성질을 갖는 반면, 입자는 불연속적이고 집중되는 특성을 갖는다. 상반되는 두 특성이 빛이라는 대상에 함께 부여된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빛이 파동으로 나타날 때는 입자로서의 성질이 사라지고, 입자로 나타날 때는 파동으로서의 성질이 사라진다. 한 가지 실험에서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으며 이것을 상보성의 원리라고 한다. 빛은 거시세계에서는 파동으로 행동하고 미시세계에서는 입자로 행동한다. 


필요에 따라 그 모습을 전혀 다른 것으로 실현하는 빛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본다. 그렇기에 순수이성비판에서 주장한 것처럼 감각을 기반으로 한 이성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빛의 이중성을 통해 우리는 보이기 전과 보이는 순간과 보인 후의 세계가 다름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계(視界)는 보이는 순간에 고정돼 있다. 보는 그 순간에 빛은 우리의 마음을 비춰준다. 우리가 바라보고자 하는 대로 빛은 그러한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한다. 무엇을 보느냐보다 보는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빛은 과학을 통해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