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다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2-03-29 0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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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최근에 쓴 <순례 주택>을 읽고 더욱 좋아졌다. <순례 주택>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내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다. 집의 가격이나 브랜드로 사람을 구분 지으려는 어른들 모습에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는 작가는 그런 모습의 어른 말고, 아이들이 닮고 싶은 어른을 그리고 싶었단다. 성찰하는 어른. 이와 같은 작가의 의도가 주인공 순례 씨와 수림이에게 고스란히 묻어나 독자가 ‘나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또, 그 눈으로 다른 사람의 세상도 따스하게 볼 수 있게 한다.

 


유은실 작가의 또 다른 책 <나의 독산동>은 ‘나의 세상’을 마주하는 어린아이의 순수하고도 당당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주인공 은이는 학교 시험에서 ‘이웃에 공장이 많으면 생활하기 어떨까?’라는 문제를 읽고 당연히 ‘매우 편리하다’를 골랐지만 틀리고 말았다. ‘시끄러워서 살기가 나쁘다’가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은이가 사는 동네는 이웃에 공장이 있어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공장에서 일하다 아이들에게 밥도 주고 숙제도 봐줄 수 있고, 다친 아이의 무릎을 닦아 줄 수 있다. 할머니들은 인형공장에서 부업도 할 수 있고, 아이들은 혼자 잠들어도 무섭지 않다. 문을 열면 공장이고 엄마 아빠는 거기에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는 그날 밤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도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딴 동네에 사니까 공장이 많은 우리 동네가 얼마나 좋은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기억이 하나쯤은 있다. 반대로 자꾸 꺼내어 자랑하고 싶은 기억도 있다. 다 지나간 이야기임에도 각각의 기억엔 계급과 같은 것이 있어 서로 다른 층위에 놓인다. 기억을 계급에 가둔 사람이라면 독산동과 같은 이야기는 맨 아래에 놓여있을 확률이 높다. 가난하고 소외됐던 시절이 그리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대단하다. 이 이야기에는 계급이 없다. ‘나의 세상’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 세상에서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할지도 또렷이 보인다.


2014년, 청소년 소설 <변두리> 출간 기념 인터뷰(http://ch.yes24.com/)에서 유은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0년대는 변두리에서 변두리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변두리 인생이 점점 더 외곽으로 떠밀려요. 그것을 향한 분노였습니다. 저는 힘겹게 변두리가 삶의 중심이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엄연한 제 역사였는데, 그것을 덮으려는 시도가 싫었어요. 명백하게 분노한 게 구로공단을 구로디지털단지로 개명했을 때였어요. 구로공단이 뭐가 부끄러운가를 세상을 향해 묻고 싶었어요. 구로공단 노동자가 뭘 잘못했죠? 무슨 죄를 짓고 살았어요? 저임금 노동자로 국민소득 향상에 기여했지요. 제 고향 이름을 누더기로 만든 데 대한 분노가 생겼어요. 그 분노가 문학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했고요.”
기억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언제나 옳다. 진심으로 그 분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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