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같은 성격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0-09-23 00: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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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보험을 두고 남편과 고민했다. 설계사가 우리 부부에게 80세 보장을 100세로 늘리면 좋다고 권했기 때문이다. 80세 전에 지구가 망한다는 남편의 주장은 굳건했다. 포유류는 암에 잘 걸린다는 설계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암에 걸린 지인들의 얼굴도 아른거렸다. 그것은 암에 걸린 나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졌다. 이미 수입의 15%을 보험으로 지출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1만9600원 보험은 부담스럽다.


나는 몇 살까지 살고 싶지? 80세와 100세가 된 내 모습은 어떨까?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까? 보험은 여러 물음표로 이어진다. 보험에 심드렁한 남편에게 가입 여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욕보다 더 심했다. 남편은 착한 얼굴로 “당신 같은 성격이 암에 잘 걸릴 것 같아”라고 읊조렸다. 한방 먹은 나는 되물었다. “뭐? 나 같은 성격이 어떤데?” 남편은 절대 비난할 뜻은 없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예민하고…” 1분도 걸리지 않았을 짧디 짧은 대화가 주는 영향은 컸다. ‘나 같은 성격이 암에 잘 걸린다고?’ ‘내가 예민하다고?’ 반박불가다. 나 예민하다.


암에 잘 걸릴 성격이니까 나만 보험 가입하기로 했다. 설계사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나는 고자질했다. “남편이 저보고 암에 잘 걸릴 성격이래요.” 순수하게 일러바친다는 의도만 있었다. 그런데 확인 사살이 일어났다. “맞아, 에니어그램 머리형들이 암에 걸리는 확률이 더 높긴 해.” 부연 설명도 잊지 않으셨다. “생각이 많고 작은 것도 그냥 못 지나치는 성격이 그렇지.” 에니어그램은 성격 및 행동 유형을 9가지로 분류한 이론인데 크게는 머리형, 가슴형, 장형으로 나뉜다. 이번에도 반박불가다. 나 머리형이다.


이로써 나는 암에 잘 걸리는 성격을 몇 가지 갖춘 셈이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고 작은 것도 그냥 못 지나치는 성격인 것을 인정한다. 하마터면 “저예요”하고 손을 들 뻔했다. 설계사가 보험 가입하면서 이렇게 질문이 많은 고객은 처음이라며 내 위상을 높여 줬다. 보험 가입할 때마다 그랬다. 몇 년 전, 보험 가입 알아보다가 질문을 적은 적이 있다. 20개를 적고 나서 보험 가입을 포기했다. 보험은 가입하면 쭉 가야하니까 더 신중하게 된다.


가입하고 보험회사에서 확인 전화가 왔다. 몇 가지 질문 중에 두 가지가 모르는 내용이었다. 질문에 어버버했더니 내용을 알고 있냐고 상담원이 재차 물었다. 다 알고 가입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모르는 내용이 있다니. 다른 사람들은 대충대충 가입하나? 설계사에게 다시 안내 받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대답 잘하라고 설계사가 당부했는데 어쩔 수 없다. 난 작은 것도 못 지나치는 성격이니까. 설계사에게 마저 설명을 듣고 가입이 완료됐다. 설계사에게 ‘돌다리 다 두드리고 건너는 고객 감당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세요. 제가 융통성이 없어요’라고 문자를 남겼다. 


암에 잘 걸리는 성격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큰일을 준비할 때 뒤탈이 없다. 결혼, 이사, 집수리가 그랬다. 때론 내 꼼꼼함에 나도 놀란다. 과제나 시험도 결과가 좋다. 남들은 지나칠 작은 구멍이 보이니까 질문도 많다. 요즘 애들은 물음표살인마라고 부르던데, 내가 그렇다. 집도 늘 정돈돼 있다. 애들 키우는 집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다. 뭐든 양면이 있으니까 암에 잘 걸리는 성격도 그럴 거다. 빛을 발해도 암에 걸리면 무슨 소용인가. 


보험도 양면이 있는 것 같다. 살면서 안 아플 수는 없다. 만약을 대비해서 가입한다. 넣어두면 안심은 되지만 복불복이다. 내가 낸 돈보다 적은 혜택을 받을 확률이 크다. 그렇다고 질병에 걸려서 돈을 타길 바라지도 않는다. 아프면 목돈이 나가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마다 자동이체로 보험비가 빠져나간다. 보험은 쓰는 용어도 낯설고 알면 알수록 어렵다. 뜻밖에 이번 보험가입을 통해서 나 같은 성격이 어떤 성격인지 알았다. 차라리 욕이 더 나았을까.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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