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 기사승인 : 2020-09-24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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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간실격>의 표지그림은 에곤 쉴레의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다. 며칠 굶어 보이는 인물이 멍한 눈으로 생각에 잠긴 모습은 주인공과 닮아있다. 패전 후 일본의 상황은 일본인들의 삶의 방향을 잃게 했고 이 책을 읽으며 희망과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실격된 주체가 있다면 인간이기 위한 자격은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한국과 일본은 차이가 있다. 성실하게 위대한 삶을 살았더라도 자살로 끝난 인생은 쓸쓸함과 아쉬움을 남긴다. 청년기에 가족 중 한 명을 사고로 먼저 보냈다. 사고사여도 남은 자의 고통이 너무 커 아무리 힘들어도 자살은 말자고 결심했다. 지금이 죽는 것만 못한 삶이라면? ‘치욕스러운 좌절과 냉혹한 실패’ 상태에서의 인생이 추한 것이라면?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을 접하고 복잡해졌다.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만난다면 말없이 안아주고 싶다. 그가 겪었을 심리적 어려움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린 시절 가졌던 불만과 수치심으로 죄의식을 갖게 됐고 그로 인한 부끄럼은 그의 인생 전반에 깔려 있다. 수치심은 삶을 주체로서 살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수치심을 가지면 삶의 끈을 놓기도 한다. 아우슈비츠의 생환자로 살게 된 장 아메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서전처럼 쓴 이야기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섣부른 위로의 말이나 충고의 말이 아니었다. 그에게 무엇이 필요했던가? 생의 마감을 여러 번 시도한 그에게서 너무나 살고자하는 의지를 느꼈다면 아이러니인가? 


수치심과 결핍으로 어린 시절을 채웠던 대목에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쌀쌀한 가을저녁 노을 지는 풍경은 내게 짙은 외로움이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같이 놀던 동네아이들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가고 나만 갈 곳 없는 외톨이처럼 그 노을 지는 풍경 속에 덩그러니 던져졌다. 돌아갈 집이 없는 것도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 스산함은 지금도 종종 찾아온다. 내쳐지는 느낌은 아름다운 풍경을 공포로 만들었다. 인정받고 싶은 심리 아래 거부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불안과 슬픔이 익숙한 감정으로 다가와 삶이 고달플 때가 있다.


주인공 요조는 겉과 속이 다른 어른들을 보며 회의를 느껴 익살꾼의 가면을 쓴다. 진심을 숨긴 가면은 거리두기다. 그런 그를 간파한 다케이시의 등장은 공포로 연결된다. 다케이시의 예언대로 요조에게는 여자들이 꼬이고 본질을 깨닫는 화가가 된다. 요조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인물로 호리키가 있다. 그로 인해 다양한 여자와의 관계와 공산주의 모임에 빠져든다. 호리키는 지속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새로운 국면을 연결하는 인물이다. 


요조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는 ‘여자’다. 카페 여급이자 사기범의 아내였던 쓰네코를 만나 행복을 느끼지만 동반 자살의 실패로 혼자 살아남는다. 경찰 취조에서 유리하게 사용하려 소비한 야한 이야기와 각혈하는 연기를 검사에게 들켜 모멸감을 느낀다. 세상은 살아가는 게 힘겹기만 해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었던 요조를 살려내고 죄를 씌운다. 


여기자 시즈코의 정부로, 만화가로 그럭저럭 적응하는 듯하다 모녀의 행복이 자신 때문에 망칠 것 같은 생각에 또 떠난다. 순수하고 믿음이 강한 요시코와 결혼해 안정을 누린다. 그러나 요시코의 강간사건은 비극이 되고 그는 죄 없는 아내를 용서하지 못한다. 자살 실패로 모르핀에 중독되고 정신병원에 감금돼 인간실격을 선언한다. 행복도 불행도 없는 삶이 된다.이 소설을 읽으면 솔직히 불편하다. 요조라는 인물이 겪는 온갖 불행뿐 아니라 그가 지닌 부끄러움과 한계점들이 내게도 존재한다. 읽다보면 요조만큼은 아니지만 부끄러움, 혐오감, 나약함이 내 심연 속에 추악한 면모로 있어 마주하기 싫다. 부정하고 싶은 어두운 내면을 부인하고 싶다. 요조에게는 그 시작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미리 주어진 세상을 의미하고 그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투쟁한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행동들은 본질적 자아와 세상 속 자아를 분리시킨다. 세상이 정해둔 인간 자격에 맞추지 못하면 인간실격이 된다. 아버지가 곧 세상이고 놓인 환경을 상징한다면 아버지는 나쁘다. 요조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실격 당했다. 요조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은 다른가?


이은민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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