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환생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기사승인 : 2021-01-28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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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아이의 책장 사이로 유명한 화가의 그림카드집이 꽂혀 있었다. 각 카드엔 르느와르, 모네, 마네, 클림트, 반 고흐 등 근현대 화풍을 주도했던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담겨 있었다. 하루는 아이가 그 그림카드를 한장 한장 넘겨 가며 보고 있었다. 그닥 재밌어하는 눈치는 아닌데 아이의 표정을 좀처럼 읽을 순 없었다. 순간 그림에 대해 뭔가 설명하고픈 생각은 들었으나 미술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게 좀 아쉬웠다. 공부 좀 해둘 껄…


그런데 그림을 들여다보니 화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아이도 충분히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그들이 무엇을 주로 그렸는지, 어떻게 그렸는지, 어떤 색을 많이 사용했는지 등등 그 특징에 대해 아이랑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테면 르느와르는 사람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는 점, 클림트와 반 고흐는 짙은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 점, 모네는 마치 붓을 찍듯이 그린 점 등 아이도 그림의 차이를 느끼는 듯했다. 어떤 그림은 화가가 그렸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해 보였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었다. 솔직히 아이나 아빠나 그 그림의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그림 보는 눈이 거기서 거기까지인 걸 어쩌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패스.


아이가 서너 살 때 엄마랑 함께 하는 미술놀이 수업을 한두 해 다녔다. 난 가끔 시간을 내 참관한 적이 있었다. 주제에 맞춰 여러 색의 물감을 벽이건 바닥이건 자유롭게 표현하는 수업이었다. 우리 아이는 매번 물감을 받는 즉시 한 데 섞어 시커멓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 교실 전체 난장을 만들기 일쑤였다. 그런데 선생도 엄마도 개의치 않았다. 이건 그저 방임 수준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미술놀이가 끝날 때쯤이면 아이는 온몸에 물감으로 샤워한 듯 시커먼 채로 욕실로 끌려갔다. 이렇게 미술을 경험했던 아이의 그림 감상이 특별할 리 없다.


부모 모두 그림을 볼 줄 아는 식견은 없었으나 아이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그림카드로 뭐라도 해볼 참이었다. 각 그림카드를 두고 아이랑 화가 맞추기를 해봤다. 가능할까 싶었다. 이게 그림 공부나 아이 정서에 좋을지 알 수 없으나 그냥 즉흥적으로 시도해 봤다. 근데 아이가 곧잘 맞추는 게 아닌가. 작가마다 그림의 특징이 비교적 명확해서 그런지 아이가 쉽게 찾았다. 맞출 확률이 높아갈수록 아이의 흥미나 몰입도 살아나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놀았다.


다음 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엄마와 아이는 함께 그림을 그렸나 보다. 아이가 스스로 그린 그림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아이의 그림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 그건 추상화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전화로 무엇을 생각하며 그렸냐고 물었다. 아이의 답에 난 그만 휘둥그레졌다. 아이는 공룡을 그렸단다. 그리고 클림트를 생각하며 노란색을 많이 썼단다. 화가의 이름조차 외우는 게 어려웠을 텐데… 아이가 어떤 가게에서 클림트의 그림을 봤다고 말했던 게 이제서야 기억이 났다. 그리고 장조림용 메추리알을 까면서 그 무늬를 보고 모네 그림 같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카드놀이의 효과였을까. 왠지 나는 뿌듯했다.


아이의 그림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매사 아이에게 설명하고 다그치고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설명충 아빠였다. 지식은 늘 나눠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만큼은 어쩔 수 없이 설명할 수 없는 늪에 빠졌으나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백성현 글 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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