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조숙 시인 / 기사승인 : 2021-02-27 00:00:31
  • -
  • +
  • 인쇄
작가세상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것은 생계인가, 오락인가, 마음 수양인가. 이것은 하나인 듯 아닌 듯 혼란스럽다.
낚시는 인류의 역사상 오래된 사냥 중에 한 가지였다. 육지의 동물을 잡아서 먹거리를 해결한 것이 사냥이라면, 강이나 바다에서는 낚시를 통해 풍부한 단백질을 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돌로 만든 낚싯바늘이 신석기인의 유물에서 발견됐다. 풍부한 단백질은 인간의 건강과 수명을 좌우했으므로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낚시는 매우 중요한 먹거리 생산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오늘날 배를 띄워 그물을 드리우고 물고기를 포획하고, 통발을 설치해서 많은 물고기를 잡는 것은 풍부한 단백질 섭취를 위한 것이다. 또한 부의 축적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간을 낚는 사람들이 있다. ‘신이 마련해 준 가장 평온하고, 조용하고, 순수한 레크레이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은 ‘명상하는 사람의 레크레이션’이란 부제가 붙은 를 1653년 출판했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생계형 낚시와 유희를 위한 낚시로 구분한 최초의 책이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1651년에 지은 연시조 <어부사시사>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 작가인 윤선도(1587~1671)가 지었다. 연시조 춘사(春飼)는 65세 때 벼슬을 그만두고 전라남도 보길도의 부용동에 들어가 지었다. <춘사>의 일부다.

날이 덥도다 믈 우희 고기 떳다
닫드러라 닫드러라
갈며기 둘식세식 오락가락 하느고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낫대는 쥐여잇다 탁쥬ㅅ병(濁 甁) 시럿나냐


윤선도는 날이 따뜻해지자 물고기가 뛰노는 것을 보고 낚시를 위해 배를 띄우고 낚싯대(낫대)와 막걸리병(탁쥬ㅅ병)을 싣고 있다. 물고기를 낚아서 생계를 유지하거나, 물고기를 좋은 값에 팔아 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행위를 하면서 레크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평온하고 순수한 명상의 시간. 조선시대 그림 <유하조어도>에 버드나무 아래에서 어색한 자세로 낚싯대를 드리운 남자가 등장한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긴장하면서 한 마리라도 더 얻겠다는 결기를 느낄 수 없다. 비스듬히 어설픈 자세로 앉아서 홀로 있다. 세상으로부터 따로 앉아있는 행위, 낚시의 매력이다. 이 그림은 조선 중기 왕족 출신 화가(1545~1611)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이 그렸다. 서양에서는 프랑스 화가 모네(1840~1926)가 그린 <낚시하는 두 남자>라는 그림이 유사하다. 모네의 그림 속에 낚시하는 두 남자는 잘 차려입은 옷에 모자를 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각각 다른 배를 타고 홀로 명상에 잠겨 있다. 


현대의 낚시는 해양스포츠로 분류된다. 배부르게 먹기 위한 생계형 낚시도 아니고, 명상에 빠지는 순수한 몰입의 시간도 아니다. 한바탕 경기를 치르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정조대왕(1752~1800)은 궁궐의 연못에서 규장각 학사들과 낚시를 즐겼다. 한 마리 낚을 때마다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방영하고 있는 <도시어부>를 보면 물고기의 특징을 분석하고, 알맞은 낚싯대를 고르고, 찌를 고르고, 밑밥을 뿌리면서 누가 더 크고 귀한 물고기를 잡는지 경기를 한다. 스포츠로서 현대 낚시는 어종과 장비와 바다 환경을 연구하면서 경기를 벌이는 행위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낚시 장면을 보면 생계형 낚시를 하던 어부가 순수한 몰입과 명상을 통해 84일 만에 청새치를 만나고, 드디어 목숨을 건 겨루기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다. 그러나 상어의 공격으로 노인은 낚싯배와 비슷한 크기의 청새치 뼈만 싣고 돌아오게 된다. 낚시의 역사를 한 편의 소설 속에 담아내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하다.


조숙 시인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