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곧 탄생이다 -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수필가 / 기사승인 : 2020-11-25 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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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위 공직자가 임명을 받고, 국회의 동의를 얻고자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것을 자주 보곤 한다. 그들의 자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과거 발언들이 수면 위로 올라, 보는 이를 당혹하게 만들기도 여러 번이다. 나름의 정치적 사유와 판단으로 내놓았던 소신 발언들이 ‘하나의 당론’이라는 미명 아래 제 빛을 잃어 모호해져 있기도 하고, 예전과 상반된 발언 위에 서 있기도 한다. 최근 관심을 모았던 국정감사에서도 공직자의 소신과 자질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온 나라 안이 시끄럽다.


그들로 인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국민의 가장 인간적인 바람들은 그렇게 박탈당하곤 한다. 이른바 정치 철학의 죽음이다. 전체주의가 끝난 지금도 하나의 목소리만을 중시하는 것으로 자유와 정치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한 사람의 위치와 다른 사람의 위치는 일치할 수 없다. 타자에 의해 보이고 들리는 것이 의미가 있는 까닭은 각자 다른 입장에서 보고 듣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적 삶의 의미다.”(p131)


말이 힘을 잃은 세계 속으로 진입하게 됐다는 사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가 주는 강력한 경고다. 말 없는 행위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다. 행위자는 그가 동시에 말의 화자일 경우에만 행위자일 수 있다. 


다원성을 배제해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어 가는 정치 집단이야말로 진정한 행위자라 볼 수 없다. 획일적인 성격, 오직 하나의 이해와 의견만을 허용하는 것은 개별 존재자로서의 인간성을 말살할 수도 있다. 중요한 ‘인간의 조건’인 동시에 모든 형태의 정치조직의 조건인 ‘다원성’ 즉, 함께 행위하고 말하는 인간의 조건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활동적인 삶이라는 개념으로 나는 인간의 세 가지 근본활동 즉 노동·작업·행위를 표현하고자 한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고 이 지상에서 무엇인가 영속적인 것을 남기기 위해 ‘작업’을 해야 하며 또 우리의 삶을 더 좋은 삶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p73)


아렌트는 우리가 한때 영광이라 불렀던 가장 빛나는 밝음의 위치에 ‘행위’를 가져다 놓는다. 그만큼 ‘행위’를 높이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밝음은 오직 공론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공동사회가 파괴되는 것은 모두가 숨 막히게 하나의 생각을 정답처럼 강요당하거나 스스로 순응하게 될 때이다. 한 측면에서만 보고, 한 관점만을 취해야 할 때 그것은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수로 이뤄진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공동의 삶을 위한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행위가 꼭 필요하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경험했던 것은 순수 활동으로서의 사유가 지식욕과 인식욕에 의해 몰리지 않고서 하나의 열정이 될 수 있으며, 또 이 열정은 다른 모든 능력과 재능을 지배하기보다는 정리한다는 사실이었다.”(P27)
아렌트는 독일 안에서 유대인의 존재로 살았다.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타자라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며 성장했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은 머리를 숙여서는 안 된다. 사람은 저항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그녀에게 다원화를 바라보고, 올바른 행위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구심점이 됐다. 


사회는 각 구성원으로부터 일정의 행동을 기대하며 다양하고 수 많은 규칙들을 부과한다. 이 모두는 구성원을 ‘표준화’시키고 순응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이에 자발적 행위나 탁월한 업적을 갖지 못하게 한다. 대중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사회의 영역은 몇 세기의 발전을 거쳐 마침내 주어진 집단의 모든 구성원을 평등하게 그리고 평등한 힘으로 구속하고 지배하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우려한다. 이는 그녀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에서도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무 사유, 그 자체가 바로 악이라 규정한 것이다. 아렌트의 그런 우려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나 된 목소리를 모으는 당론으로 초심을 잃거나 개인적 소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들보다 진정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를 사유할 줄 아는 우리 국민의 능력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용서’와 ‘약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세우고 새롭게 시작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우수한 민족이다. 


“인간사의 영역인 세계를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황폐화로부터 구원하는 기적은 결국 다름 아닌 탄생성이다. 존재론적으로 이 탄생성에 인간의 행위능력이 뿌리박고 있다. 달리 말해 기적은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 새로운 시작, 즉 인간이 탄생함으로써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이 능력을 완전히 경험하는 것만이 인간사에 희망과 믿음을 부여할 수 있다.”(p344)


한나 아렌트는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능력 중 하나가 ‘시작하는 능력’이라 밝힌다. <인간의 조건>에서 가장 용기를 북돋워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인간의 탄생성과 시작의 기적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전의 행위로 인해 가동된 일련의 사건들의 연쇄를 방해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시작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런 행위가 ‘기적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유일한 능력’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의 시작은 곧 탄생이다. 


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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