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언니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20-10-22 0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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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무튼 시리즈를 즐겨 읽는다. 덕후들의 덕질 에세이 같은 느낌인데, 얇고 앙증맞은 책에 대상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를 듯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가볍고 편하다. 책장을 덮는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튼!” 외치게 만드는 부수 효과도 있다. <아무튼, 산>을 읽고는 영남알프스 9봉 등산을 시작했고, <아무튼, 피트니스> 때는 데드리프트를 하기 위해 바벨을 사다가 집에 들여 놓기까지 했으니. 


32번째 시리즈 <아무튼, 언니> 편을 폭풍 공감하며 읽다가 비슷한 경험으로 쓴 글이 있어 소개한다. 교실에 들어서자 한 학생이 호기롭게 내게 내뱉은 말은 다름 아닌 “선생님은 남자예요, 여자예요?”였다. 보결 수업 차 들어갔던 2학년 교실에서 기습 공격을 당한 것이다. 동학년 선생님들께는 “몇 학년 몇 반 선생님이에요?”라는 질문이 주어졌다던데… 짐짓 못들은 체했는데도 끈질기게 묻는 학생을 불쾌한 표정으로 말없이 쳐다봤더니 시끌벅적했던 교실엔 정적이 감돌고, 곧 “죄송합니다”라는 사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다! 타인에게 성별을 묻는 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례한 행위인 것이다. 이런 무례한 질문은 처음 받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대처법(웃음으로 무마하기, 불쾌한 척하기, 되묻기, 화제 돌리기 등)이 있음에도 늘 상처로 남는다. 그리고 되풀이되는 상처받기 경험을 통해 성별이분법적인 사회 질서를 재생산하는 권력의 구조를 생각해본다. 


여자(남자)아이는 어떻게 여성(남성)이 되는가? 푸코(Foucault)를 빌려와 얘기하자면, 여자(남자)아이는 신체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규율(discipline)을 통해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여성(남성) 주체로 만들어진다. 즉, 큰 키, 까만 피부, 화장하지 않은 얼굴, 짧은 머리카락, 근육, 운동복 차림은 여성, 특히 “젊은 여교사”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정체성”을 확인하는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규율은 거대 권력이 아닌 개인의 생활 전반에 침투해 있는 미세 권력이기에 무해해 보인다. 하지만 “남자/여자예요?”라는 질문은 질문하는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당신은 비정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여자는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규율을 큰 저항 없이 재생산한다. 


일상에서 스몰토크랍시고 “몇 살이냐? 결혼은 했나? 아이는 있나? 애인은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을 우리는 소위 “빻았다”거나 “꼰대스럽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학교에서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가치중립적’ 지식을 전수하는 역할을 맡은 교사일수록 발화 권력을 민감하게 인지해야 한다. “여자애가~, 남자애가~”로 시작하는 대수롭지 않은 말들에 가로막혀 수많은 아이들의 잠재력은 억압당하며, 규율(이성애, 가부장제 질서 등)에 부합하지 않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은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혐오 앞에 호모사케르(Homo-Sacer)가 된다. 그렇다면 교사의 책무는 우리 아이들이 장차 호모사케르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가르치고 보호하는 데에 있을까? 


피아제(Piaget)를 빌려와 생각해보면, 9세 아동의 스키마에 들어맞지 않은 ‘젊은 여교사’의 등장은 충분히 혼란스러운 것이었으리라. 인지적 갈등 상황에서 동화/조절 과정을 거쳐 평형 상태에 이르는 것을 학습이라고 본다면 “나”의 등장은 매우 적절한 학습 기회인 것이다. 교사들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이마저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상성의 굴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집단이 교사다. 삶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교육이 어떤 울림이 있을까? 벨 훅스(bell hooks)는 약한 자가 쥐고 있는 가장 중요한 권력 가운데 하나는 자신에 관한 정의를 권력자가 강요하는 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도록 가르칠 것이 아니라, 세계의 기준과 잣대에 자신을 맞추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는 용기를 갖도록 곁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삐딱한, 경계에 위치한, 명징하지 않은 교사의 등장이 더 필요한 이유다.


[에필로그] 2학년 보결 수업은 ‘물에 사는 생물들’ 빙고 게임과 더불어 마이쮸를 나눠 먹으며 몹시 활기차게 마무리됐다. 쉬는 시간이 돼 한 학생이 다가와 히죽히죽 웃으며 “근데 선생님 남자예요, 여자예요?”라는 질문을 반복했고, 난 그 웃음에 담긴 복합적인 의도를 확인하며 좌절하려는 순간에 다른 학생이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야. 그게 왜 궁금해?”라며 쉴드를 쳐 주었다. 잠깐 엿본 희망의 찰나를 통해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내어보기로 한 하루였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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