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좌파 후보 루이스 아르세 대선에서 승리

원영수 국제포럼 / 기사승인 : 2020-10-22 0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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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우리는 민주주의와 희망을 회복했다!”

10월 18일 열린 볼리비아 대선에서 민중진영을 대표하는 좌파 후보인 루이스 아르세 후보가 과반 이상을 득표해 승리를 거뒀다. 최종집계는 시간이 걸릴 예정이지만, 에보 모랄레스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낸 아르세 후보는 출구조사에서 52.4퍼센트를 기록해, 각각 31.5퍼센트와 14.1퍼센트 득표에 그친 카를로스 메사 후보와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 후보를 압도적 표 차이로 눌렀다.


루이스 아르세의 득표는 2019년 쿠데타의 빌미가 된 2019년 10월 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기록한 득표보다 증가했다. 당시 에보 모랄레스는 288만9359표(47.08%)를 득표했다. 당시 224만920표(36.51%)를 얻었던 카를로스 메사의 득표율은 떨어졌다.


이번 선거에는 전체 유권자 1142만 명 가운데 733만 명이 참여했다. 해외 거주자의 투표도 실시돼, 30개 나라에서 볼리비아 유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 10월 19일 볼리비아 선거 결과 현지 언론 방송 ⓒ트위터/@eshaLegal

예상을 뛰어넘는 역사적 승리

선거 전 실시된 많은 여론조사에서 아르세 후보가 항상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2위와의 격차는 여론조사마다 달라 투표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었다.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던 지닌 아녜스 권한대행의 사퇴로 우파 야권의 2차 투표 승리 시나리오가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연 결과 예상을 뛰어넘어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의 루이스 아르세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겼고, 2위 후보와의 격차도 20퍼센트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이로써 볼리비아는 2019년 11월 쿠데타로 퇴진한 좌파정권이 선거를 통해 다시 정권에 복귀하는 역사적 승리를 기록하게 됐다.


10월 18일 일요일 밤 선거법원이 입장을 바꿔 출구조사 결과의 발표를 허용했다. 아르세와 MAS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엘알토, 라파스, 코차밤바 등 주요 도시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폭죽이 터졌다. 라파스의 MAS 당사에서는 지지자들이 “우리는 MAS다!”라는 슬로건을 외치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아르세 후보는 “볼리비아 민중에게 감사하고자 하며, 그들의 희망과 기대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단결을 회복할 것이며, 한 걸음 한 걸음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상원 후보인 레오나르도 로사는 “우리는 억압의 정부가 되지는 않겠지만, 2019년 쿠데타 당시에 일어난 센카타와 사카바의 학살을 잊지도 않을 것이며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19일 카를로스 메사는 아르세와 MAS의 승리를 인정하고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쿠데타 정권을 이끌어온 지닌 아녜스 권한대행도 “아르세 씨와 초케완카 씨가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인정하며,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볼리비아를 민주적으로 통치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펠리페 솔라 아르헨티나 외무장관은 볼리비아 민중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논평을 냈다. 그는 “아르헨티나는 쿠데타 지도자들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1년 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에보 모랄레스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 망명 중인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도 이번 승리를 기뻐했다. 그는 쿠데타로 축출당한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볼리비아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쿠바가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시기에 우리에게 커다란 지지를 보내줬다. 그들에게 감사하며, 오늘 나는 살아있다”고 말했다. 


모랄레스는 개인적으로 이번 승리를 축해해준 프란시스 교황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동시에 선거운동 기간 극우세력의 도발을 평화적으로 견뎌낸 MAS 활동가들에게 공을 돌렸다.


모랄레스는 이번 승리가 “남아메리카에 희망을 되돌려 줬고, 우리의 작은 경험으로부터 라틴 아메리카를 다시 한 번 단결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오늘 우리는 전 세계에 1년 전에 했던 약속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수백만이 되어 돌아왔다!”는 말로 승리의 기쁨을 표현했다.
 

▲ 볼리비아 대선에서 승리한 루이스 아르세 당선자(가운데) ⓒEFE

우파와 과도정부의 충격적 패배

시민 공동체(CC) 후보인 카를로사 메사는 전 대통령으로 2005년 민중봉기로 불명예 퇴진한 바 있다. ‘우리는 믿는다 동맹’의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 후보는 산타 크루스의 기반을 동원해 2019년 쿠데타로 이어진 반정부 폭력투쟁을 이끌었다.


우파 성향의 카를로스 메사와 극우 성향의 페르난도 카마초의 득표를 합하더라도 아르세의 득표에 못 미치는 결과는 집권 우파세력에게 충격이었다. 1차 투표에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아르세 후보가 과반에 못 미치는 경우 결선투표에서 우파 성향의 표를 집결시켜 정권 접수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쿠데타 이후 볼리비아는 지속적 소요사태, 정치적 불안정, 정치적 암살과 진보세력 탄압 등의 혼란을 겪었다. 쿠데타 이후 구성된 지닌 아녜스의 과도정부는 재선거 실시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주어진 과제는 도외시한 채, 천연자원 해외매각, 주요 산업 민영화 등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회귀했고, 코로나 위기에 대한 부실한 대응으로 대중적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아녜스 과도정부는 코로나19 위기를 핑계로 당초 5월로 예정된 선거를 여러 차례 연기했고, MAS의 선거 참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며 MAS 정치인과 활동가들을 탄압했다. 후보로 나서 재집권을 저울질했던 아녜스는 낮은 지지율 때문에 우파후보 단일화 명분으로 투표 직전 사퇴했고, “MAS의 정권 복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10월 초 과도정부의 아르투포 무리요 외무장관은 4일 동안 미국을 방문해 “국가안보” 문제와 선거에 관해 미국 측과 협의했다. 무리요는 유권자들에게 카를로스 메사에게 투표하라고 호소하는 등 불법적 선거운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녜스와 무리요는 군과 경찰이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는 말로 쿠데타 재발을 염두에 둔 위협을 하기도 했다. 특히 무리요는 최근 군인들에게 “목숨을 거리에 남겨둘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볼리비아 우파의 모든 노력은 실패했고, 대중은 MAS를 선택했다.

역사적 의미와 전망

10월 18일 대선승리로 볼리비아는 2019년 쿠데타 이후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로 복귀하게 됐다. 탈법적 쿠데타를 극복한 볼리비아 좌파의 정치적 승리는 2002년 4월 쿠데타를 민중의 힘으로 뒤집은 베네수엘라의 데자뷰이며, 미국의 앞마당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다. 


에보 모랄레스의 망명을 허용한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그리고 베네수엘라와 쿠바 등의 외교적 지원도 중요했지만, 우파 쿠데타 정권의 집요한 탄압에도 저항을 계속한 볼리비아 민중의 승리는 21세기 라틴 아메리카 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더불어 브라질과 콜롬비아, 칠레 등의 우파 정권을 내세워 경제봉쇄로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압박했던 미국의 대 라틴 아메리카 전략도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MAS의 승리는 최근 핑크 타이드의 쇠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파 정권의 블루 타이드를 추구한 미국의 무리한 외교정책에 파산을 선언했다.


루이스 아르세는 당선 일성으로 “새 정부의 첫 조치는 가난한 민중을 위한 기아 반대 채권”이라고 밝혔다. 9월 16일을 기준으로 볼리비아에 거주하는 18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이 기금을 받게 된다.


원영수 국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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