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평전, 전태일과 윤상원

이종호 기자 / 기사승인 : 2020-11-11 0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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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전태일 50년, 5.18 민주화운동 40년

올해는 한국전쟁 70년, 4.19혁명 60년, 전태일 50년, 5.18 민주화운동 40년이 되는 해다. 11월 13일은 50년 전 전태일이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날이다. 40년 전 5월 27일 윤상원은 광주 전남도청에서 공수특공대원들의 집중사격으로 복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계엄군은 상반신을 불태운 윤상원의 시신을 성명불상자로 처리해 망월동에 가매장했다. 불에 탄 전태일과 윤상원의 주검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군사독재와 병영적 노동통제에 맞선 노동자·민중 투쟁의 거대한 횃불로 되살아났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전태일의 ‘인간선언’과 윤상원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5월 광주의 ‘대동세상’은 2016년 촛불혁명과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선한 공동체와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민’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태일 평전>과 <윤상원 평전>은 삶의 고비마다 우리를 다시 일깨우는 ‘죽비’였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과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의 그 마지막 순간으로 우리를 불러 세워 삶의 결단을 요구하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두 개의 평전을 다시 읽으며 배타와 혐오, 차별과 배제로 분열되지 않는, 자연을 수탈하고 사람을 억압·착취하지 않는, 전태일이 쓴 대로 ‘덩어리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또한 부스러기란 말이 존재하지 않는, 서로가 다 용해되어 있는 사회’, ‘광주코뮌’으로 구현된 해방된 시민들의 자치공동체를 향한, 광장에서 생활로 넓어지고 깊어지는 촛불, 일상의 시민혁명을 새로 꿈꾼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불타는 몸으로 평화시장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가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쳤다. 눈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목이 마르다며 물을 달라고 괴로워하던 전태일이 마지막 남긴 말은 “배가 고프다…”였다. 전태일은 하루 전 아침 라면 한 그릇을 먹고 이틀을 꼬박 굶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도 마지막 순간 고통 속에서 “목이 마르다”고 했다. 전태일은 죽기 석 달 전 일기에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라고 썼다.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었다.


전태일보다 2년 늦게 태어난 윤상원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무기고 앞에서 시민군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한다. “우리는 저들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냥 도청을 비워주게 되면 우리가 싸워온 그동안의 투쟁은 헛수고가 되고, 수없이 죽어간 영령들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윤상원은 1978년 어렵게 입사한 주택은행 서울 봉천동지점에 사직서를 내고 광주 광천공단 일당노동자로 취업해 들불야학에 함께한다. “가난에 찌든 농촌의 아들딸들은 지금 어쩔 수 없이 진학을 포기하고 전국의 노동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고 있다. 동생들보다 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나이 어린 노동자들도 많다. … 마음이 아프다. 그들을 그렇게 핍박 속에 가둬두는 모순과 싸워 우리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내 삶을 바쳐야 하리라.” 전태일과 윤상원의 ‘결단’ 밑바탕엔 나이 어린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내 삶을 바쳐서라도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깔려 있었다. 


전태일과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외침은 여성노동자들이 앞장섰던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으로, 1980년 광주 민중항쟁 이후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의 대규모 노동현장 투신으로 이어졌고, 1987년 7~9월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인간선언’과 전국 노동자 대투쟁으로 폭발했다. 


1987년 7월 5일 울산 현대엔진노조 설립을 시작으로 들불처럼 번진 노동자 대투쟁은 19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 1990년 전노협 결성, 현대중공업 골리앗 점거와 전노협 총파업, 1991년 명지대 강경대 학생의 죽음으로 촉발된 5월 총파업, 1993년 현대그룹노조총연합의 연대 파업, 1995년 민주노총 출범, 1996~97년 노동법 개정 전국 총파업,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공장점거 파업으로 확산됐다.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에도 IMF 이후 2000년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 노동양극화가 심화됐다.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겨운 생존권 투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맞선 공장점거 파업들은 공권력의 폭력에 번번이 깨져나갔다. 


조직노동을 대표하는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공장 담벼락 안 조합원들의 고용안정과 기업복지에 집중하면서 노동조합의 사회연대의식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활동은 약해졌다. 2016년 촛불시위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개별 시민으로 참여해야 했다. 노동조합운동이 1996~97년 총파업 때처럼 국민과 전 세계 노동자들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태일 정신’을 다시 새기고 ‘시민성’을 몸에 익혀야 한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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