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핑크타이드의 퇴조?

원영수 국제포럼 / 기사승인 : 2018-10-10 19:30:38
  • -
  • +
  • 인쇄
국제

핑크타이드의 역사적 의미와 전망

흔히 핑크타이드로 알려진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의 물결이 퇴조하고 있다. 2015년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적 위기, 아르헨티나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 우파 정권의 등장, 브라질의 탄핵 쿠데타 등 좌파 정권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거나 일정 기간 유지해온 정권을 빼앗기고 있다.



올해 멕시코 대선에서 좌파 후보 오브라도르의 당선을 제외하면, 라틴 아메리카 주요 국가는 우파 정권의 손에 넘어갔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등 좌파 정권이 몰락한 외에도, 콜롬비아 역시 우파 정권이 유지되는 등 핑크타이드 초중반의 좌파 강세가 크게 퇴색한 상태다. 위기 속의 베네수엘라에 볼리비아, 나카라과 정도에 좌파 정권이 명맥을 유지하고, 한 때 좌파 블록의 담당했던 에콰도르까지 급격히 우선회하면서 핑크타이드 좌파 정권의 위력은 심각하게 감소한 상태이다.



핑크타이드: 선거혁명의 확산


기본적으로 핑크타이드는 199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에 맞서 등장한 좌파 정부의 확산 현상을 가리킨다. 냉전시기 가장 격렬한 계급투쟁을 벌였던 라틴 아메리카에서 20세기 후반과 전혀 다른 정치적 현상이 일어났다. 1959년 쿠바 혁명과 1970년 칠레 혁명, 1979년 니카라과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 계급투쟁의 정점이었는데, 그 가운데 칠레(1970~73년)의 비극이 20세기 유일한 선거혁명이었고 그 결말은 비극이었다.



이에 비해, 20세기 초반은 연이은 좌파의 선거혁명 시대가 도래했고,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좌파 정권이 등장했다. 이 유례없는 충격적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1960~70년대의 강력한 무장투쟁의 흐름(레드타이드)과 비교해 핑크타이드라는 용어가 사회화 됐다. 또 동시에 새로 등장한 좌파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공유하지만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각 나라마다, 각 정부마다 각자의 경험과 역사를 반영한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덜 급진적이란 의미에서도 핑크타이드라고 불린다.



역사적으로 이런 정치적 변화를 주도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이며,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은 최근까지 핑크타이드의 좌파 블록을 구성하고 있고, 반면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은 미국과의 관계, 국내정책 등에서 좌파 블록에 비해 덜 급진적인 온건한 타협적 정책을 추진해 핑크타이드의 우파 블록을 형성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단결 아래 갈등보다는 차이와 다양성의 공존 형태를 취했다.



핑크타이드의 역사적 진화


기본적으로 핑크타이드는 세 개의 국면을 경과해 왔다. 첫 번째 국면은 1998~2002년 시기로, 마이너스 성장률, 실업과 빈곤, 불평등 증가 등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극에 달했다.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 브라질의 무토지 운동 등을 배경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 좌파 정권이 등장했다.



두 번째 국면은 대략 2003~08년의 시기로 2002년 브라질에서 룰라의 대통령 당선으로 정치적 지각변동이 대륙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당시 콜롬비아와 칠레, 페루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좌파 정권이 집권했고, 사실상 좌파의 집권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볼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 등의 나라에서 좌파의 집권은 역사적 충격이었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적 경기회복과 일치하며, 주된 동력의 중국의 산업화였다. 중국은 광물, 천연가스, 석유, 농산물 등의 국제 원자재 수요의 붐을 주도했고, 이로 인한 높은 국제 원자재가는 집권한 좌파 정권들이 친민중적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남미의 극빈국 볼리비아는 초국적 자본에 대한 로열티와 세금 부과를 통해 국가재정을 증가시켰고, 반빈곤 프로그램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핑크타이드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대한 민중과 좌파의 대응이며, 경제적 측면에서 석유와 원자재 붐에 기초한 반신자유주의적 기조의 확산이었다. 그 결과 라틴 아메리카 전체적으로 빈곤율과 절대빈곤은 상당히 감소했고, 민중의 복지와 생활 향상이 실질적으로 이뤄졌다. 경기상승을 동반해 형성된 새로운 중산층은 핑크타이드의 중요한 수혜자였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에 따르면 대부분의 좌파 정부는 민중의 생활 향상과 빈곤 감소에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자본주의 구조의 근본적 개혁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심지어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혁명적 수사에도 볼리바르 혁명은 근본적 반자본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핑크타이드 정부들의 경제 정책은 대단히 온건한 수준에 머물렀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마저 기득권 과두세력의 경제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고, 국유화 역시 파산기업에 국한됐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좌파 정부 아래서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는 안정화됐고, 빈곤이 감소했고, 새로운 중산층이 등장했다. 이는 냉전시대에 우파 정부의 실패를 좌파 정권이 이뤄낸 역설적 성과다. 외형상 기층민중과 중산층, 대자본 모두가 핑크타이드에서 각자 파이의 몫을 키운 윈윈게임으로 보이지만, 그 내부는 보기보다 훨씬 더 복잡한 동학이 작동하고 있다.



빈곤이 감소하고 민중복지가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성과는 제한적이고, 새로운 중산층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자본과 기득권 세력은 좌파 정부의 유화적 정책에서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지만, 결코 좌파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거나 기득권에게 피해할 줄 가능성이 있는 경우 기득권 세력은 좌파 정부의 정책에 격렬히 반대했다. 비록 정권은 내줬어도 과두세력은 자신의 네트워크와 힘을 이용해 좌파 정권을 압박하고 무력화시키고 있다.



세 번째 국면은 2008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로 글로벌 경제위기 시기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국가에 비해 경제위기의 직격타를 맞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자 남미 전역에서 경기퇴조가 시작됐고, 2012년 석유가격 폭락은 베네수엘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세 번째 국면은 2012년에 본격화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 정권의 위기나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우파 정권이 재등장한 직접적인 경제적 배경이 되고 있다.



핑크타이드의 구성과 내부 동학


기본적으로 핑크타이드는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가 주도했고, 1990년대 급진적 사회운동의 동학이 유례없는 선거혁명을 통해 좌파 정권의 연속적 출현으로 완성되었다. 2000년대 중반 라틴 아메리카의 대부분이 좌파 정권 아래 놓이게 됐고, 선거정치는 더 이상 우파와 과두제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그렇지만 핑크타이드는 단일하거나 동일한 실체라기보다, 급진 좌파 블록(베네수엘라-볼리비아-에콰도르의 급진적 삼각동맹)과 온건 중도좌파 블록(브라질-칠레-우루과이의 온건 삼각동맹)의 양축으로 구성돼 있다. 양측은 분열과 대립하는 양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탈제국주의화와 반신자유주의 기조에는 통일되어 있으되, 각국의 역사적 조건과 내부적 세력관계 상의 차이에 따라서 대내외 정책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이 양대 축 외부에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페루, 과테말라, 파나마,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등이 존재하며, 이 작은 나라들 역시 역사상 유례없는 정권교체와 선거혁명을 경험했다. 유일하게 핑크타이드 외부에 존재했던 나라는 장기 내전 상태였던 콜롬비아와 멕시코, 그리고 합법적 좌파 정권이 쿠데타로 몰락한 콜롬비아와 멕시코, 온두라스와 파라과이 등이다.




중국과 핑크타이드


2005~2013년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라틴 아메리카 직접투자는 5퍼센트 정도였고, 이 수치가 급상승한 2017년에도 15퍼센트 정도였다. 그러나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인수합병 사례를 고려하면 중국은 미국과 EU, 캐나다에 이어 라틴 아메리카 4위의 투자국이다.



게다가 세계의 공장 중국은 다른 경쟁자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다. EU의 직접투자는 스페인이 주도했지만 경제위기로 인해 투자여력을 상실했다. 그 다음이 네덜란드인데, 기본적으로 금융 도피처를 추구하기 때문에 실제로 네덜란드 자본도 아니고 출처도 불확실하다.



이에 비해 중국은 기존 투자 외에 많은 투자계획을 갖고 있고, 다른 경쟁상대에 비해 더 급속하게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직접투자 외에도 무역 확대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중국 개발은행의 차관은 세계은행, IMF, 범미주 개발은행 등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 차관 공여는 석유, 천연가스, 광물 협정과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위한 것이며, 일부 상환은 현물로 이뤄진다.



중국의 경제적 팽창은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미국-유럽의 경제적 지배에 대한 도전이자,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는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권의 굳건한 동맹자가 되고 있다. 물론 중국의 투자는 자본주의의 중장기적 전망에 따른 전략일 수도 있고, 예상되는 자원 고갈에 대한 대비전략일 수도 있지만, 중국의 투자와 지원은 핑크타이드를 직간접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핑크타이드와 사회운동, 미래


핑크타이드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바꾼 현상이다. 현재의 위기와 퇴조에도 핑크타이드는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하고, 빈곤 감소와 복지 향상 등 적지 않은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은 20세기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의미가 엄청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성과가 좌파 정부의 시혜라기보다는 개혁을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민중운동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이런 성과는 방어적 성격에 머물렀다. 1980~90년대 좌파가 정치적으로 몰락한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과 계급투쟁이 신자유주의 과두세력에 저항했고, 신자유의의 파산과 정치경제적 위기 속에서 핑크타이드가 출현했지만, 민중-사회운동의 다수가 좌파 정부에 포섭되면서,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사회운동의 투쟁력은 상당히 약화됐고, 급진적 사회운동은 좌파 정부와 갈등관계에 들어가기도 했다.



핑크티이드의 퇴조와 위기 국면이 자동적으로 핑크타이드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익이 집권하는 경우 민중-사회운동의 저항이 거셌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경우 21년만에 총파업이 벌어졌고, 아르헨티나에서도 마우리시오 마크리 우파 정부에 맞선 일련의 파업이 일어났고, 최근 여성운동은 낙태 완전 합법화를 위한 대중운동을 창출했다.



핑크타이드의 위력이 약화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핑크타이드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제적 주류 제도언론은 좌파 정권의 무능을 이유로 지적하지만, 좌파 정권을 대체한 우파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 외에 다른 대안이 없고, 우익은 정치적 기반이 좌파와 민중의 저항을 제압할 만큼 강력하지도 않다.



대표적으로 2017년 브라질의 탄핵 쿠데타는 선거 외의 수단을 통한 탈법적 정권 탈환이고, 선거를 통한 재집권에 좌절한 브라질 우익 역시 정당성과 정치적 기반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10월 총선의 최종 결과에 관계없이 브라질 자본주의와 정치체제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동시에 멕시코 대선에서 오브라도르의 승리는 시차를 둔 핑크타이드의 북진이자, 지연된 민주화의 결정적 승리다.



이런 맥락에서 핑크타이드의 위기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핑크타이드의 퇴조 또는 종말은 국제적 주류 미디어의 주관적 희망에 불과하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위기가 지속되고 낡은 신자유주의가 위기의 해결책이 아닌 이상, 세 국면을 경과한 핑크타이드의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다.



원영수 국제포럼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영수 국제포럼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