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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송골로 숨어들어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10.18
원주 송골 원진여의 집으로 은거1898년 1월 3일 이천 관아의 병정들이 여주 전거론 해월의 은거지를 급습했으나 손병희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넘겼다. 해월의 은거지가 탄로 난 것은 김연국의 경솔한 행동 때문이었다. 당시 김연국의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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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집에 병정이 온다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10.11
오늘 우리 집에 병정이 온다해월은 손병희에게 도통을 전수해 후계 구도를 정리했다. 해월은 동학에 입도한 지 2년 만인 1863년 8월 14일에 37세의 나이로 수운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됐다. 이후 동학 교단의 책임자로 35년간 고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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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를 후계자로 확정하다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10.03
땅 아끼기를 어머니 살과 같이 하라해월은 여주 전거론으로 오기 직전인 8월 추석에 자신이 후계자로 삼아 집단지도체제를 이끌었던 김연국, 손천민, 손병희 3명을 불러 “내가 일전에 너희들 세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천하가 다 달려들어 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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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식천(以天食天)의 생태·생명 중심의 생활을 제시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9.27
향아설위(向我設位)를 제도화하는 데 25년이 걸려 해월이 앵산동에서 은거했던 곳은 제자 신정희(申正羲)의 집이었다. 신정희의 집은 현재 이천시 설성면 수산1리 한 민가(진상미로 924번길 133-29) 앞의 밭으로 변했다. 이곳은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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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아설위(向我設位)의 혁명적 제사법 시행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9.20
음죽 앵산동(陰竹 鸎山洞)으로 이주 1897년을 상주 은척원에서 맞은 해월은 나이 71세의 노구였다. 동학혁명의 여파가 많이 가라앉았지만, 해월은 여전해 교도들에게 몸가짐을 신중히 하라고 당부했다. 한겨울에 은척원을 찾은 이병춘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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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다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9.06
밥 한 그릇[식일완(食一碗)]의 의미를 아는 것이 만사지(萬事知) 해월은 1892년 상주 왕실촌에서 이미 ‘밥이 한울이다’라는 ‘식즉천(食卽天)’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1896년 음성 창곡에서 말한 ‘만사지(萬事知)는 식일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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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여성이 주도하는 세상 될 것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8.30
우리 도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나올 것 해월이 치악산 아래 수레너미에서 김연국・손천민・손병희의 ‘삼암(三菴)’에게 교단의 사무를 관장하게 했던 1896년 초에 호남의 도인인 박치경(朴致景), 허진(許鎭), 장경화(張景化), 조동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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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孫秉熙)에 반발해 시천교(侍天敎)로 갔다가 상제(上帝)교를 세운 김연국(金演局)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8.23
삼암(三菴) 중 가장 먼저 해월과 인연김연국은 해월이 임명한 집단지도체제인 ‘삼암’의 맏형격이었다. 그리고 세 명 가운데 가장 먼저 동학에 입도해 가장 오랜 기간 해월을 모셨다. 김연국은 1857년 2월 강원도 인제군 남면 달리촌(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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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문필로 교조신원운동의 상소문을 지은 손천민(孫天民)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8.16
청주의 이방에서 동학의 핵심인물로 성장한 손천민(孫天民)손천민은 1857년 충청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청주 관아의 아전 집안에서 태어난 손천민은 아버지를 이어 청주 관아의 이방을 지냈다. 손천민은 손병희(孫秉熙)의 큰형 병권(秉權)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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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과 3·1 독립운동을 영도한 손병희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8.02
내원암 기도와 항일의 다짐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긴 이후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했지만, 이것이 빌미가 돼 폐위됐고 군대마저 해산됐다. 이에 분노한 백성들은 의병 전쟁을 일으켰으나 일제는 강압적으로 진압했다. 호남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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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孫秉熙), 손천민(孫天民), 김연국(金演局)의 3인 집단지도체제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7.26
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한 경통해월은 동학혁명 이후 교단의 수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1896년 1월 11일 손병희, 손천민, 김연국 3인의 집단지도체제를 마련했다. 이날 해월은 “너희들 세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천하(天下)가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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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동학 교단 재건 시작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7.19
해월을 보호하기 위한 제자들의 헌신 동학혁명은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동학도를 중심으로 일으킨 의거였다. 하지만 동학혁명이 실패로 막을 내리자 동학 교단의 최고 책임자인 해월이 받은 충격은 극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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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과 일본군의 추격망을 벗어난 해월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7.11
가는 곳마다 관군의 추격1894년 12월 24일 음성 되자니 전투를 끝으로 호서 동학농민군은 해산했다. 해월은 동학농민군을 해산시키면서 어려운 시국이지만 안전하게 피신했다가 후일을 기약하자고 당부했다. 호서 동학농민군들은 눈물을 머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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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 동학농민군 보은 북실에서 관군에 대패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7.05
용산전투에서 호서 동학농민군 승리12월 12일 아침에 전직 군수 박정빈이 주도하는 옥천의 민보군과 청주병이 다시 상용산리 동북쪽에서 동학농민군을 공격해왔다. 동학농민군은 산 위로 올라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호서 동학농민군이 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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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행하는 동학농민군 영동 용산(龍山)에서 관군 격퇴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6.28
해월이 이끄는 호서 동학농민군 충청도로 도피 무주의 설천과 월전 전투는 북행하는 해월의 호서 동학농민군이 전라도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면서 싸운 마지막 전투였다. 호서의 동학농민군이 충청도로 넘어오자 충청도 군현에서는 이들을 저지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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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임실에서 손병희와 재회한 후 호남 탈출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6.21
총기포 이후 관에서 해월 체포에 혈안9월 18일 총기포로 호서의 동학농민군이 논산으로 향할 때 해월은 동행하지 않고 청산 문바위골에 남아있었다. 청산 일대의 동학농민군이 문바위골에 모여들자 해월의 은신처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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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에서 동학농민군 최후의 혈전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6.14
동학농민군 금산에 들어온 일본군 야습일본군 인천 병참사령관은 동학농민군 토멸(討滅)을 위해 입국한 후비보병제19대대를 동로(東路), 중로(中路), 서로(西路)의 세 길로 1개 중대씩 출동시켰다. 동로로 이동한 일본군은 이천(利川)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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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의 동학농민군 전라도 북부 지역 장악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6.07
무장포고 이전에 금산에서 기포한 동학도(東學徒)무장에서 전봉준이 포고문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동학혁명을 전개하기 전에 혁명의 불길을 올린 곳이 금산(錦山)과 진산(珍山)이다. 이 두 지역은 1914년 금산군으로 통합됐고 1963년 행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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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嶺湖) 동학농민군의 최후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5.31
진교에서 영호 동학농민군 일본군・관군과 첫 교전일본군은 10월 5일에 고성에 도착해 토포사 지석영이 이끄는 관군과 합류한 후 진주의 구해창(舊海倉)을 거쳐 10월 7일에 곤양군으로 들어왔다. 곤양읍에는 성곽이 있어 병력이 주둔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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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嶺湖) 동학농민군의 활동
성강현 전문/문학박사/동의대 겸임교수 2019.05.24
서부 경남의 동학 성장장흥의 동학혁명이 전개되기 일주일 전에 전라도에 인접한 경상도 하동의 고성산에서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의 대규모 전투가 있었다. 고성산 전투로 대표되는 경상도 서부의 동학혁명은 영남과 호남의 동학농민군이 합세해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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