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참배 유감

박덕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 기사승인 : 2021-06-28 07: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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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수비오 화산 폭발에 사라진 폼페이, 그런 사건이 서울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1700년 동안 화산재에 묻혀있던 서울을 먼 훗날 고고학자들이 발굴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동작동 인근을 발굴하던 학자들은 144만 평방미터의 거대 분묘군을 발견한다. 5만이 넘는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고고학자들은 눈에 띄는 무덤 하나에 주목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가장 큰 규모의 무덤이다. 장기판의 왕처럼 전체를 굽어보며 위엄을 과시한다. 여기가 최고 권력자가 묻힌 곳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분묘군 공간 구성이 위계질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묘군은 ‘국립서울현충원’이다. 그 무덤의 주인은 한때 ‘다카키 마사오’라는 일본 이름을 가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새해 원단과 현충일, 대통령과 정부·국회 인사들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다. 비단 이때만이 아니다. 당 대표나 대선 후보로 선출돼도 이들은 동작동을 찾는다.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공적 가치를 구현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묵념을 올린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공헌한 이들의 정신을 기린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권위의 수직계열화가 이뤄진 이곳, 대한민국 최초 국립묘지에 중심적 권위를 부여하는 일은 이제 어렵다. 아니, 멈춰야 한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은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6년 대통령령 1144호 ‘군묘지령’을 근거로 시작됐다. 안장 자격은 군인과 군과 관계된 사람들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시작은 국군묘지였다. 그러다 이승만 대통령이 같은 시기에 이동녕·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안장된 효창원에 운동장을 지으며 논란이 일었다. 심산 김창숙과 야당 의원들은 효창운동장 건축을 격렬히 반대했다. 효창원이야말로 추모의 장소가 돼야 하며, 운동장 건축은 친일분자의 순국선열 모독이라는 것이었다. 이 논란은 국군묘지 안장대상자에 ‘순국선열’을 추가한 이후에 잦아들었다. 이후 1965년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명칭을 바꾼 배경이기도 했다. 

 

같은 해인 1965년 이승만 전 대통령 안장은 이 국립묘지가 ‘권력 공간’으로 변질된 최초의 계기였다. 순국선열 등 다른 안장자들은 국가원수보다 공간적으로 아래에 위치해야 했다. 위계의 수직계열화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권위질서의 구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안장으로 완성된다. 국립묘지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넓게 자리 잡은 것이 박정희 묘역이다. 친일과 반공주의, 군사독재를 하나로 수렴한 인격체가 박정희였고, 한국 현대사를 질곡으로 몰아넣었던 어두운 역사가 그의 묘역에서 신전을 구축했다. 국립서울현충원참배가 청산해야 할 역사의 유령을 경배하는 일이 되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공적 가치는 독립·호국·민주·사회공헌 등의 범주로 나뉜다. 그 각각이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존중되는 공적 가치는 사실상 ‘호국’, 다른 말로 하면 ‘반공·군사주의’ 하나에 불과하다. ‘반공·군사주의’ 옆에 독립·민주·사회공헌이 들러리로 존재하는 것이 대한민국 보훈의 실상이며, 그 극명한 현실태를 볼 수 있는 곳이 현충원이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백선엽이, 12.12 군사반란 및 5.18 내란의 안현태와 4명의 장군이 현충원에 묻히는 이유다. 반공·군사주의는 반민족행위자와 반민주행위자들에게 이렇게 면죄부를 발급한다. 이렇게 일그러진 공적 가치질서의 중심, 그곳이 국립서울현충원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국가이념을 구현한 곳은 현충원이 아니다. 그곳은 차라리 해방 후 환국한 임시정부가 직접 조성하고, 이동녕·김구·조성환·차리석 등이 묻힌 효창원이다. 헌법 전문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효창원에는 또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가 묻혀있다. 안중근 의사의 허묘도 있다. 새해 원단에 정치인들이 제일 먼저 참배해야 할 곳은 국립서울현충원이 아니라, 이곳 효창원이다. 

 

올해 안에 여야대선 후보들이 결정된다. 각 정당의 후보들은 독립·호국·민주·사회공헌 등 대한민국의 공적 가치를 위해 희생·공헌한 이들을 기리는 참배 행사로 대선 행보를 시작할 것이다. 

 

이들 후보에게 권한다. 대한민국 국가이념을 구현한 공간, 효창원부터 참배하라. 구시대 권위 질서의 수직계열화가 구현된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는 상대화하라. 이렇게 반공·군사주의의 일원적 지배에 거리를 두라. 대한민국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존중돼야 하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박덕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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