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온다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 기사승인 : 2021-05-10 00:00:51
  • -
  • +
  • 인쇄
시론

울산시가 인권기본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권센터를 설치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나고 있다. 울산시 인권센터는 인권침해구제기관으로서 타 시도에서 이미 운영 중인 인권옹호관제도와 같이 시 행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활동을 담당하게 된다. 7인으로 구성된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를 통해 인권센터에 진정된 사안을 검토하고 구제방안을 결정하는 것이다. 울산시는 인권센터의 본격적인 운영에 따라 인권침해에 대한 상담과 조사의 신청, 진정사건의 처리 절차 등 구체적인 인권침해구제 절차를 규정하기 위해 ‘울산광역시 인권기본조례 시행규칙안’을 마련하고 5월 5일까지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시행규칙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인터넷(자치법규정보시스템)이 난리가 났다. 

 

‘울산광역시인권기본조례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 대해 5월 4일에서 5일, 이틀에 걸쳐 463개의 반대 의견이 줄줄이 달렸다. 일찍이 조례에 대한 의견 제출은 봐왔지만, 조례 시행규칙 제정과 관련해 이렇듯 격렬하게 주장을 전개한 것은 본 적이 없다. 이례적이다. 동시간대에 올라온 울산시의 입법예고에 대해 유일하게 이 사안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반대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더욱이 조례의 시행규칙이라는 것 자체가 조례에서 위임한 사항을 시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절차와 내용을 실무적으로 담아내는 것에 불과하기에, 463명이 넘는 사람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의견서를 제출할 만한 성질의 대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이번 사태를 아주 이례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반대 의견 역시 거의 대부분이 ‘반대한다’는 단순 의견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간혹 ‘학생들에게 바른 성을 가르쳐 주세요’, ‘반대합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십시오’, ‘차별금지법 반대합니다’, ‘요즈음 교육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존경심이 하나도 없고 그저 월급쟁이 직업인 취급하겠습니까, 절대로 반대합니다’라고 해 이번에 제정하고자 하는 시행규칙과는 연관성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울산시 인권행정을 반대하기 위해서 누군가 조직적인 대응을 한 흔적들이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다. 누가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지는 그러나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반대 논리로 내걸고 있는 ‘바른 성교육’,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 등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울산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포괄적 성교육’과 ‘학생생활규칙 개정’ 등에 맞닿아 있기에 조직적인 대응이 일부 보수 기독교계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가 있다. 

 

울산에서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단체인 ‘깨끗한 나라 만들기 울산본부’는 보수 기독교계에서 결성했다. 2018년 1월 25일에 출범했던 ‘동성애대책시민연합’으로 ‘나라사랑 구국기도회’, ‘악법 저지 및 나라 살리기 집회’, ‘잘못된 조례 제정 저지’, ‘성경적 성교육 강사 양성 교육’, ‘전광훈 목사 초청 국민대회 및 구국기도회’, ’포괄적 성교육 반대 집회’ 등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다. 이들은 여러 가지 단체 이름으로 겉포장만 변신해가며 활동을 부풀리고 있다. 마치 기독교계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말이다.  

 

가장 최근에는 울산시교육청의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가짜 뉴스를 전파하며, 담당 기관인 청소년성문화센터와 교육청 담당 부서에 대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무차별한 항의 전화 등을 통해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울산교육청이 학생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기준으로 작성한 ‘학교생활규정 개정 권고’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교인들을 동원해서 각 학교의 학부모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반대할 것을 조직하고 있다. 이들의 대응은 수년 전에 비해 조금씩 진화하고 있으며, 꼼꼼하고 지속적이다. 

 

이례적인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동안 움츠렸던 그들,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들이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우려부터 앞선다. 문제는 이들의 대응이 지난 시기와 달리 매우 조직적이고 격렬할 것 같다고 보이는 점이다. 아마도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재보궐선거에서 보수가 압승한 이후 촛불 민심 아래 숨죽여 있던 보수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가고 있는 상황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인권, 민주, 노동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정책과 제도를 저지하기 위한 선봉대 역할을 담당해왔던 일부 보수 기독교계는 2년 전에도 소위 3대 조례를 저지하기 위해 시의회 본회의장을 점거해 회의 진행을 막아 나섰고, 급기야 시의회 부의장을 겁박했던 전력이 있다. 너무도 명백한 위법 상황이었지만,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이들을 철저하게 단죄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 같은 상황을 재현시키는 것이 아닌지 씁쓸할 따름이다. 

 

이번만큼은 적당히 대응하기 어렵다. 저들은 이미 사활을 걸고 대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도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저들의 행태를 반복할 수는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이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이 열성을 부리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는 볼테르의 말에 힘을 주어본다.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