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은 특혜가 아니다

성현정 울산장애인인권포럼 대표 / 기사승인 : 2021-04-19 0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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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이 어떤 의미에서 이해돼야 하는지는 항상 의문이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축하? 또는 위로? 아니면 기념? 감사?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장애인은 자신이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두고 늘 기억하면서 안타까워하고 힘들어하며 살지는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고난이다’, ‘어려움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장애인도 장애로 인해 소외 배제 분리 거부의 상황을 만날 때에야 ‘내가 장애인이구나’ 또는 ‘장애 때문에 어려운 것이구나’를 체감한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단차나 계단 앞에서, 시각장애인은 음성신호가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나 읽을 수 없는 각종 안내문을 받아 들었을 때, 청각장애인은 영어단어는 거침없이 구사하면서 수어는 단 한 단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인권이 보편적인 패러다임이 된 것처럼 보이고 여기저기서 인권교육이 실시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인권이 적용되거나 작동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발견하게 된다. 인권은 여전히 법전에 누워있거나 구호로만 혹은 교육으로만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애인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 교사가 될 자질이 되지 않은 이들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국가가 보장해 줘야 할 안전권과 알 권리에서 밀려난 수많은 영혼과 가족들이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


장애인권을 말할 때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뭔가 대단한 특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오해한다.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와 화장실, 점자나 확대문자 안내문, 수어를 사용하는 화상전화가 과연 특혜인가? 누구 입장에서? 특혜는 같은 조건에서 좀 더 특별한 혜택을 주는 것이다. 계단을 성큼성큼 오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모든 문자나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한글을 잘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자가운전이 가능하고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과연 같은 조건이라 할 수 있을까? 장애인권은 다양한 장애특성을 고려한 대등한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인권은 자본의 논리, 경제의 논리, 다수결의 원리 앞에서 양보되거나 무시돼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 힘의 원리 앞에서 무너져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지만 장애인은 늘 자본의 논리 앞에 효율성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결과물의 양과 속도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효율성보다 효과성이란 측면에서 장애인이 훨씬 유리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을 강사로 양성하고 장애인식개선이나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각급 학교, 시설 등에 파견했을 때 ‘강사비를 주면서까지?’라며 반신반의했던 곳에서 이제는 예산편성도 하고 당사자 강사 요청을 하는 곳들도 많아졌다. 이렇듯 장애인이라서 그 효과성이 높이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아주 가끔 우리 주변에서 인권을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잘못에 대한 면피용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인권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어떻게 작동돼야 하는지, 인권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성현정 울산장애인인권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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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정 울산장애인인권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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