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체하여 살아남은 야생동물, 너구리

한상훈 박사,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 기사승인 : 2021-05-11 0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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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야생동물

▲ 동아시아 특산 야생동물 ‘너구리’의 전형적인 모습(김현태 촬영)

▲ 하천변 덤불속에서 주위를 살펴보는 너구리(김현태 촬영

■ 분류: 식육목 개과
■ 영명: Raccoon dog
■ 학명: Nyctereutes procyonoides(Gray, 1834)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 가운데 “곰을 만났을 때 죽은 체하면 살 수 있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실제 이 말대로 죽은 체해 곰을 만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다.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육식성 포식동물들은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 흥미를 지니고 계속 주시하지만, 움직임이 없는 물체에는 곧 흥미를 잃어버려 딴 곳으로 관심을 돌리는 습성이 있다.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해 살아오는 야생동물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호랑이와 표범, 늑대와 여우 등 육식성 포식 야생동물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워 1980년대부터 그 수가 늘어난 ‘너구리’다. 사냥 훈련을 받은 진돗개들이 너구리를 발견하면 달려가 물지만, 너구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체한다. 몇 번 공격한 사냥개들은 움직임도 없는 너구리를 보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흥미를 잃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만일 이동하기 전에 다시 움직임을 보이면 사냥개들이 물어뜯기 때문에 사냥개들이 물러가도 한동안 꼼짝도 않는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살며시 주위를 둘러본 너구리는 더 이상 사냥개와 같은 포식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이때다 싶어 쏜살같이 달아난다.

 

▲ 너구리 생활권 조사를 위해 무선 추적기를 부착해 방사

너구리는 동아시아 특산 야생동물이지만 그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유럽에도 너구리가 살고 있다. 과거 1920년에서 1950년 사이 구 러시아가 중국과의 국경지대인 우수리 지역의 너구리를 생포해 모피 생산과 사냥물로 유럽 국경 지역에 수천 마리를 방사한 것이 지금은 독일 등 유럽 북부지역에 널리 퍼진 것이다. 

 

▲ 너구리의 전 세계 분포 지도(동아시아는 자생, 유럽은 인위적 유입). 출처: IUCN 적색자료집

몸길이 55~70cm, 꼬리 길이 15~25cm, 체중 10kg 내외의 작은 개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너구리는 알려진 것과 달리 겨울잠을 길게 자지는 않는다. 날씨가 따뜻해진 날에는 먹이를 찾아 잠자리에서 나와 배회한다. 가끔 오소리 굴에서 너구리가 함께 발견되기도 해 오소리와 너구리가 겨울잠을 같이 잔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너구리의 재미있는 습성 중 하나는 가족이 같은 지점에서 배설하는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활동 시간은 주로 야간에 활동하지만 때때로 천적이 드문 곳에서는 주간에도 활동한다. 교미 시기는 3월이며, 임신 기간은 60∼63일, 4월 말에서 6월 사이 큰 돌 틈 사이나 큰 나무의 뿌리 틈새에 3∼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수명은 야생상태에서 암컷은 5.5년, 수컷은 7.5년 정도다. 

 

▲ 피부병에 걸린 너구리(청주 월오동, 2013년 1월 18일)


너구리는 개과 동물로 높은 산악지역보다는 인가 주변의 낮은 산 저지대와 도심 공원, 하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매우 친숙한 야생동물이다. 무엇이든 먹는 잡식성 동물로 봄에는 동면에서 깨어난 양서류와 벚꽃 열매를, 여름에는 가재와 뱀, 새알, 딸기, 참외 등을, 가을에는 감과 같은 과일과 곤충 등 동물성과 식물성을 가리지 않고, 도심 공원이나 하천에서는 사람들이 버린 음식 쓰레기까지 무엇이든 잘 먹는다. 너구리는 개과 동물 특유의 ‘디스텐바’라는 사상충에 의한 피부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피부병에 걸린 너구리는 평소 온순한 성격과 달리 사람을 물려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발견하면 즉시 지자체와 119구조대에 신고해 구조 조치가 필요하다. 대개 피부병에 걸린 너구리는 자연사(병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아메리카너구리. 출처: 위키랜드

<특기사항> 아메리카너구리가 방송에서 소개되고 국내에 유입돼 너구리와 혼동하는 기관(지자체)과 방송사, 일반 사람들이 많다. 아메리카너구리는 나무를 잘 타고, 무엇이든 물에 씻어 먹는 습성을 지닌 아메리카너구리과의 야생동물로 우리나라 자생 야생동물 ‘너구리’와 영어 이름만 비슷할 뿐 외모와 계통이 다르다. 아메리카너구리는 라쿤(raccon)이라 하는데, 너구리의 영어 이름은 ‘아메리카너구리를 닮은 개’라는 의미의 raccon dog이다.

한상훈 박사,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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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훈 박사,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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