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몸 교과서>, <일단, 성교육을 합니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21-10-26 0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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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라떼는 성교육을 떠올려 본다. 음… 성교육이랄 게 있었나?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여겨지는 ‘소파술 영상’마저 본 적이 없는 듯한데, 만약 보았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이 영상을 시청한 수많은 여학생이 소기의 목적인 순결에 대한 맹세보다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니, 특히나 심약한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행히도) 못 본 것이 틀림없다.(참고로 난 중3 사회 시간에 영화 마루타를 보다가 충격에 엉엉 울어버린 전적이 있다.) 


그나마 기억을 짜내고 짜내서 떠오른 건 교련시간. 연로하고 강마른 교련 선생님의 지시하에 열심히 붕대를 감았던 기억과 여고생의 품행, 즉 교복 블라우스 안에 반드시 메리야스를 입으라는 둥, 살색 스타킹은 신지 말라는 둥, 다리 벌리고 앉지 말되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는 입어서는 안 된다는 따위의 설교를 들은 것이 그 시절 내가 받은 성교육의 전부였던 것 같다.


여중, 여고 학생들에게 성(性)이란 없는 듯 굴어야 하는 영역, 성인이 되어야 비로소 알 게 되는 영역이기를 강요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하긴 남중, 남고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았겠지만, 넘치는 성욕을 축구, 농구 같은 신체활동으로 승화(?)하도록 요구받았던 걸로 보아 남학생은 여학생 다는 좀 더 일찍 성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말 여중, 여고 시절의 성은 유폐되고 유예된 것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그 시절 우리는 “오빠가 하도 졸라서” 섹스한 친구들의 모험담을 듣고, 누가 임신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문을 들으며, 야자 시간에는 사회가 여성의 신체를 보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몰래 “×양 몰카”를 보았다. 그리고 복도에서 지나가는 여학생의 꼬투리를 잡아 귓불이나 팔 안쪽 살을 꼬집는 어느 선생을 함께 욕하며, 귓불과 팔 안쪽 살이 지니는 성적인 느낌과 의미를 진작에 간파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성(性) 그 자체였던 것이다.


교사로서 성교육을 생각해 본다. 프로이트가 인간은 리비도(libido), 즉 성적에너지를 갖고 태어난다고 했음에도 여태껏 아동‧청소년의 성은 부수적인 것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으로 취급해왔다. 학창시절에 성교육 안 받아도 커서 아이 낳고 잘만 사니까 학교는 성 따위에 신경 끄고 공부나 잘 시키라는 목소리도 잔존하지만, 최근에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실효성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한 층 커져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실효성 있는, 올바른 성교육은 도대체 무엇일까?


십수 년 전 등장한 “구성애 성교육”이 솔직한 성을 표방하지만 성은 터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로 남아 있고, 특히 몇몇 주제(자위, 음란물 등)에 대한 “아들 가진 부모”의 고민이 여전한데 학교 성교육의 목적과 방향, 내용, 대상 등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생식에 초점을 둔 기존의 성교육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폭력예방‧임신예방 교육을 넘어 아동‧청소년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인권과 존중에 기반한 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녀×몸 교과서>, <일단, 성교육을 합니다>는 사춘기를 비롯해 청소년의 섹슈얼리티, 가치와 태도 등을 포괄하는, 양육자와 교사도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어쩐지 이 두 권의 책을 독파하고 나면 “오티스”처럼 청소년의 다양한 성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오티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의 주인공이다.) 성교육의 지침서이자 실용서인 두 권의 책이 교사들과 양육자들에 널리 읽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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