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에 다다르는 자세에 대하여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5-10 0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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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보내는 한 가지 묘안으로, 랜선 책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책을 핑계로 만나 각양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요즘은 아무래도 그런 만남이 부담스럽다 보니 온라인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사이버 공간으로 ‘패들렛’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동시 접속이 가능하고, 작성 및 수정도 쉬운 편이라 오히려 더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소감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가장 좋은 점은 자신의 속도에 맞게 책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나로서는 사실 책 읽는 것이 전보다 훨씬 재미있어졌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이 모임에서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사회와 그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신념이 어떻게 충돌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 주는 이 책에서 내 관심을 가장 끌었던 것은 야로슬라프가 아들과의 일을 계기로 시대의 변화를 직면하던 장면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과 민속음악 연주자라는 자신의 배경이 아들에게 많은 기회를 가져다줬지만, 정작 그의 아들은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내 노래들은 그에게는 히브리어나 마찬가지다. 전혀 그에게 흥미를 주지 못한다. 그는 따분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를 할 수 없다고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세대는 베비이부머, X세대, 밀레니얼세대(또는 Y세대), Z세대로 나누어져 있다. 태어난 시기와 성장기에 노출되는 환경을 고려해 나잇대로 나눴는데, 이들 집단에 관한 연구는 각종 마케팅회사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연구해 온 분야로 새로운 세대의 성장을 감지해 내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사회 변화를 예측하기도 한다.


여러 분야에서 각 세대가 갖는 특징이 매우 다른데,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세대는 항상 이전 세대의 울타리 안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전후 세대와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베이비부머들은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제공했다.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중시한 X세대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형식적인 것을 거부하는 Z세대를 키워냈다. 그런데 정작 부모 세대가 준 혜택으로 풍요롭게 성장한 자녀 세대들이 부모 세대의 거의 모든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함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것도 결국은 변화의 위기를 맞게 된다. 변화를 일으키는 쪽은 무심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쪽은 애잔하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은 분명하다. 지금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바꿀까의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대도 결국은 또 다른 과거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 다음’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라는 말에는 하나의 생명체를 넘어서 그가 살아온 시대적, 공간적 맥락이 함께 있다. 그것을 함께 짚지 않고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비판한다는 것은 매우 무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날 세우지 않고, 지나온 세월에 대한 경의와 도래할 시대에 대한 환대를 동시에 할 수는 없을까. ‘신’세대들은 무심하게 변해가지 말고 애잔하게 변해가기를, ‘구’세대들은 애잔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무심하게 적응하기를. 어차피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누구라도 언젠가는 뒤에 서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서로를 보았으면 좋겠다.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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