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합니다

조강훈 민주시민교육센터 강사 / 기사승인 : 2021-06-16 00:00:35
  • -
  • +
  • 인쇄
민주시민교육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던 1980년 당시 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나는 친구와 자취를 했습니다. 자취집 근처에 전남대학교에 다니던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는 내 ‘롤 모델’이었습니다. 위풍당당, 정말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가 전해주는 캠퍼스 생활 이야기에 마음은 이미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5월 하순이 돼서는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왜 학교에 가지 않냐”고 물으면 부모님 농사일 도와 드리려고 왔다고만 했습니다. 표정이나 행동도 예전의 그가 아닌 무언가 모르게 대단히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가니 광주에서 북한군이 개입해 폭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엄령이 내려졌으니 말조심하라고 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동네에 들어서니 선배 집 주변에서 어른들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 선배를 불상의 사람들이 와서 붙잡아 갔다고 합니다. 그 선배의 집을 지나칠 때마다 노모의 울음소리가 문턱을 넘어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씬도 마라”는 학교 선생님의 불호령에 왜냐고 물어볼 생각은 엄두조차 내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론 잊혀진 기억이 되었습니다.


1980년 들어 정치에 개입하려는 신군부의 움직임에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5월 15일, 광주에서는 대학생 3만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에 이어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을 체포 감금하고 국회까지 점령했습니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대학휴교령·보도검열강화·정치활동금지 등의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공수부대가 조선대학교와 전남대학교를 점령했고, 광주 시내에 분산 배치돼 각 학교 주변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했습니다. 


5월 18일 일요일, 광주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이 대학생과 무고한 시민까지 닥치는 대로 살상·폭행했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광주시민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5월 27일, 계엄군은 무력으로 전남도청을 점령했습니다. 10일에 걸친 광주민주화운동 결과,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등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대구로 이사를 했습니다. 80년대 대구에서도 수많은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87년은 고문치사로 박종철 열사가 사망했고,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던 시위대를 향해 발사된 최루탄에 맞아 이한열 열사가 희생됐습니다. 거센 민주화의 물결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그런 87년 가을에 잔악무도한 공수부대의 만행과 입에 담지도 못할 비극의 현장 광주민주화운동의 영상물을 보았습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질 못했습니다. 


41년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가슴 아픈 역사가 미얀마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2020년 총선 결과에 반발한 군부가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30여 일을 맞는 현재 국민통합정부를 중심으로 군부의 폭력과 공격으로부터 지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방위군(PDF)’을 창설해 대항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쿠데타 발생 후 군부의 발포와 폭력에 가족과 이웃이 희생되자 자위적, 자체적 무장단체를 조직해 저항했습니다. 현재는 시민방위군에 합세해 무장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은 그 시작부터가 비슷합니다. ‘군부 쿠데타’ 시위의 발단부터 잔혹한 진압 작전 과정까지 ‘광주’와 유사합니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부에 저항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시민들이 분연히 일어선 ‘민주 항쟁’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에 항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미얀마의 경우 수도인 양곤과 제2 도시 만달레이 등에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5.18은 광주에서만의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항거하는 시민들을 향해 진압하는 군부의 만행도 5.18 당시의 상황과 닮아있습니다. 진압군은 자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도 모자라,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해 현재까지 8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5.18 역시 10일간의 항쟁 기간 집단 발포와 민간인 학살 등으로 166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군부가 언론을 통제,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것도 동일한 행태입니다. 사망자 수를 축소하거나 사망 원인으로 외부의 개입설을 주장하는 것도 흡사합니다. 5.18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언론을 통제하며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군부의 잔혹한 진압을 자위권 행사라 정당화했습니다. 이로 인해 5.18은 1988년 청문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8년 동안 폭동이라는 오명을 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립된 광주와 달리 미얀마는 시위대가 각종 휴대기기로 촬영한 영상을 SNS로 공유하며 국제사회에 미얀마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얀마의 상황에 국제사회는 군부의 잔혹한 진압 행위를 규탄하고 다양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민간단체의 연대와 지지, 지원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의 폭압성에 민주시민들이 얼마나 저항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미얀마 난민에게도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미얀마에선 쿠데타 이후 발생한 국내 난민은 7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인근 인도나 태국 등으로 빠져나간 난민도 수십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국경지대에 난민캠프를 설치하고 난민을 돕기 위한 실질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가적 지원부터 더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은 외세의 침략도, 강대국의 탄압도, 다른 나라와의 전쟁도 아닌, 같은 나라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벌어진 극악무도한 만행입니다. 군사독재와 군부의 탄압에 오래도록 열망했던 민주주의를 외쳤던 것인데 돌아온 것은 곤봉과 무자비한 총검이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우리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수많은 민주열사의 값진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성숙되고 성장했습니다. 미얀마도 대한민국처럼 군부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민주주의 화신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민주주의가 하루빨리, 그리고 반드시 승리하길 기원하면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합니다.

 

조강훈 민주시민교육센터 강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강훈 민주시민교육센터 강사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