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당(末堂) 서정주의 선운사

정익화 울산생활과학고 교사 / 기사승인 : 2021-03-23 0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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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여행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1990, 송창식 3집)


봄날 송창식의 노래를 들으며 고창 선운사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호남의 한이 서린 꽃, 동학농민혁명의 원혼이 서린 꽃이 댕강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니까요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1967,선운사 동구, 서정주)

 


역사의식 없이 아니, 역사를 부정하고 쓰는 달콤한 시는 절절합니다. 일제 강점기의 친일 행위를 반성함이 없이 선운사 초입 주막에서 육자배기 가락을 회상하는 시인의 감성은 탁월하기만 합니다. ‘국화 옆에서’ 내 누이를 회상하며 위안부 문제는 눈감았겠지요.


한국어를 가장 잘 표현한다는 시의 달인 말당 서정주, 미당이 아니고 말당으로 표현하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두환이 5.18 광주 학살로 정권을 찬탈한 다음에 청와대로 기자들을 불렀다고 합니다. 서가에는 시집도 꽂아두고요. 기자들이 무슨 시를 좋아하느냐고 하니까 각하께서는 말당(末堂) 서정주를 읽고 있다고 했다지요. 미당(未堂) 서정주의 친일 행위와 독재 부역 행위를 민중들이 한풀이로 만든 우스개인데 절묘합니다.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하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는 식으로 비겁한 변명을 해, 겨레말을 가장 잘 구사한 미사여구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기억되어 집니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에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2002년 발표된 친일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됐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됐습니다. 그리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됐습니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친일파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서정주 본인은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노비의 자식이었던 서정주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자 했으나 문학적 능력을 친일과 독재 미화에 사용해 재능을 민족 배반에 활용한 셈이 됐습니다.


1930년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해 구속됐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되고 이로 인해 퇴학당한 과거가 있지만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을 하고 태평양 전쟁과 카미카제 같은 전쟁범죄들을 찬양하며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했습니다. 훗날 이 전범 행위가 불거지자 서정주는 이때 전범 행위를 종천순일파라고 자칭하며 부끄러워할 줄을 몰랐습니다. 친일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교육과 예술에서 계속 빛을 발한 미당은 내란 및 반란 수괴죄인 전두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중략>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가장 순박하고 전형적인 한국 전통의 정서와 가락’으로 일왕을 칭송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을 찬양했습니다.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생가에는 초가를 복원하여 시인을 기리고 있는데 친일시와 친일행적은 전혀 거론하지 않아 아쉽습니다. 관악구에서는 미당이 30여 년간 살던 서정주 고택을 개조하여 <미당 서정주의 집>으로 만들었지만 여기도 친일 독재 부역 행위는 부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상병 시문학상, 신동엽 창작상 수상자인 송경동 시인은 미당 문학상 후보를 거부했습니다.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이 친일 부역자라는 이유에서 3000만 원짜리 문학상을 탈 수 있는 기회를 던졌습니다.

 


2차 대전 후 프랑스의 반나치 예술인들의 사형, 재산 몰수 등의 처벌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언론인과 지식인, 예술가들은 선과 악에 대한 영향력이 일반 민중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정익화 울산생활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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