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인생, 경주 옥녀봉

노진경 시민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21-07-26 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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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동남아의 여름을 닮아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계속됐다.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생은 요즘 날씨가 흐려도 우산을 잘 챙기지 않는다고 했다. 비가 와도 금방 그치기 때문이란다. 스콜을 닮은 장마가 지나가고 드디어 한여름이 왔다. 덥고 습한 공기 덕에 마스크를 쓰고 있음을 더욱 자각하게 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최근 여름방학이 되어 초중등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정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쉼의 시간이 생겨 한결 느긋해진 평일이었다. 얼음 잔뜩 넣은 커피를 보온병에 챙겼다. 텃밭에서 얻은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배낭에 담았다. 가벼운 복장으로 간월재에 오르며 계곡에 발도 담그고 일몰도 보고 혼자 오롯이 시간을 보내볼 요량이었다. 

 

▲ 충효생태하천길

주차하고 산행을 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최근 서울에서 경주로 이사 온 벗이었다. “언니 뭐해?”라는 질문에 “산에 가려고”라고 했다. “나도!”라고 함께 가고 싶다는 그이의 말에, 어디냐 물었더니 집이라고 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벗의 집까지는 차로 40분,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얼굴 보고 대화한 지 어언 한 해가 지났다. “나 여기서 거기까지 40분 걸려. 어서 준비해.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 홀로 자연과 교감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 했던 계획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경주로 향한다. 반야칼국수, 삼보마을아파트, 경주는 역시 신라의 수도로 불교의 흔적이 거리 곳곳에서 느껴진다. 티베트불교 공부를 하는 벗과 너무나 어울리는 곳이라 생각한다. 

 

 

▲ 김유신묘 앞의 벚나무길

연초 지병으로 수술 후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수술 이후 첫 산행이라고 했다. 나는 산행이 아니고 산책이어도 좋으니 가볍게 걷자 했다. 벗은 일상 산책코스인 충효생태하천과 흥무공원에서 송화산과 옥녀봉 이정표가 보인다고 했다. 매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몸이 회복 중인 데다, 혼자 가기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함께면 한번 도전해 보고싶다 했다. 

 

▲ 벗이 일상 산책 중에 만났던 이정표

벗은 평소에 가고 싶었던 산을 갈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고 난 덕분에 의도치 않은 새로운 산을 알게 돼 좋다고 했다. 김유신묘에서 시작하는 산행, 벚나무 길을 걷는 동안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더위를 각오하고 나섰는데, 간헐적으로 부는 시원한 산바람이 고맙다. 이렇게 기대 없이 만나는 모든 것들은 감사하고 반갑다.

 

▲ 녹음이 짙은 여름 산길

숲길에 접어드는데 경주국립공원 화랑지구라는 지도가 보인다. 조그마한 동산으로 생각했는데 국립공원이라니 의아하기도 하고 이곳에 오길 역시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벗에게 하고픈 말을 전한다. 굳이 정상이 아니어도 되니 충분히 과정을 즐기자고, 몸을 잘 챙기며 지구 자전 속도로 걷자 한다. 벗이 웃으며 “대체 그건 어떤 속도야?”하고 묻는다. 

 

▲ 의자를 만나 쉬어가는 중

트인 조망 없이 쭉 걷는 숲길, 덕에 볕 없는 그늘 속을 걷는다. 여름의 녹음을 만끽하기엔 더할 나위 없다. 옥녀봉 이정표를 따라 걸으며, 그동안 살며 느꼈던 마음들을 두런두런 나눈다. 걷는 동안 나무들이 바뀐다. 활엽수 길을 지나, 소나무 길을 걷고, 대나무길이 나오고 다시 활엽수 길이 나온다. 대화하고 숲을 찬찬히 살필 수 있는 것은 느린 걸음 덕일 것이다. 

 

▲ 산 중턱에서 보이는 경주시내

 

▲ 습하지만 시원했던 대나무 숲길

 

▲ 옥녀봉 이정표

반복되는 똑같은 보폭의 계단을 만났다. 대화가 사라지고 걸음이 빨라진다. 문득 잠시 걸음을 멈춘 그녀의 얼굴을 살피니 처음과 다르게 파리하다. “힘들지? 내려갈까?” 묻는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하고 반문한다. 등고선 지도를 살피니 주곡선 두 줄이 남았다. 한 줄 간격에 해발고도 20m 차이니 40m 올라가야 한다고 답한다. 거기에 덧붙여서 “나는 이미 충분해, 초록 숲에서 여름을 온전히 만끽했어”라고 대답한다. 벗이 내려가자 한다. 우리는 미련 없이 산을 내려온다. 다시 그 내려오는 걸음에 집중한다. 하산 길에 만날 무엇이든 모두 편견 없이 반겨보려 한다. 바다에서 몸을 둥둥 띄워놓고 떠 있던 어느 때 기억처럼. 

 

▲ 반복되는 오르막 계단에서 쉬는 중

 

▲ 하산하기 전 벗과 함께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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