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이도 똑같이

전은영 울산장애인부모회 동구지회 회원 / 기사승인 : 2021-07-27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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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자폐의 동반질환 중 하나인 수면장애가 있는 아이는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4시간 이상을 자는 법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늘 보초를 서는 심정으로 교대로 잠을 청해야 했고, 혹여나 피곤해서 둘 다 잠에서 못 깨어난 날은 어김없이 사건 사고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주로 새벽 1시에 잠들어 4~5시에 일어나는 삶을 계속 살다 보니 우리 부부는 너무나 지쳐서 이대로는 곧 한계에 부딪힐 것 같았다.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과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여러 고민 끝에 의사의 약 처방을 받아들였고, 약은 아이의 수면장애와 감정 조절에 유의미한 결과를 주었다. 하지만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었고, 아이는 잠을 얻은 대신에 ‘폭식’이라는 부작용을 얻었다. 


약을 먹은 지 고작 1년 만에 18kg이 증가한 아이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고, 그것 또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식단조절을 하라고 했지만 지능이 낮은 아이에게, 자폐로 인해 감각이 예민한 아이에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체중조절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주말을 아이와 등산하는 날로 정했다.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를 쓰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장애아이를 데리고 산을 오르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자폐 아이들 중에는 특정 감각이나 촉감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아이는 그것이 ‘비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수병에 둘려 있는 비닐이다. 더운 여름 등산을 하는 사람들 손에는 가지각색 브랜드의 생수병이 들려져 있었고 아이의 시선은 온통 사람들의 생수병에만 꽂혀 있었다. 덩치 커다란 아이가 갑자기 뛰어들어 손에 있는 생수병을 뺏으려 하니 사람들은 당연히 놀랐을 것이다. 더군다나 위생에 예민해져 있는 코로나 시기이니 말이다.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아이의 장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고, 또는 사과를 하고 오해를 푸는 그 사이에도 아이는 또 다른 사람에게로 뛰어가는 일이 반복됐다. 


의아하겠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그 ‘비닐’을 달라거나 주라고 말한 적이 없다. 무례하게 뛰어들어 빼앗듯이 하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한결같이 일관된 태도로 교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얘기를 들은 사람 중 10명에 7~8명은 즉각 아이에게 비닐을 떼어준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하찮은 쓰레기이므로, 사실 별일이 아닌 것이었다.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그 것까지 일일이 설명하기엔 내 시간도, 그들의 시간도 모자랐기에 뜻밖의 이 문제가 우리의 등산을 발목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번은 달랐다. 아이가 자그마한 아주머니 한 분의 생수병으로 뛰어가서 뺏으려는 찰나에, 그분께서는 아마 아이의 장애를 눈치채셨는지 뒤따라 뛰어오는 나를 한 번 보시고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이러면 안 되지! 이건 나쁜 행동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고 제법 냉정하게 말하자 아이도 움찔하고 내 뒤로 숨었다. 내 짧은 설명과 사과가 이어졌고, 아주머니는 다시 아이에게 가서 “이 비닐이 갖고 싶었니? 그럼 예쁘게 주세요~라고 말해 볼까? 할 수 있겠니?”라고 말씀하셨고, 아이는 쭈뼛대며 돌쟁이 아기 같은 말투로 “주..떼..요~ 비닐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고 비닐을 떼어주고 가셨다. 별일 아닌 이 일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장애를 이해하면서도 비장애아이를 대하듯 잘못된 일을 일러줘서 고마웠고, 아이가 자기표현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고, 진심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셔서 감사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아이가 막무가내로 뛰어가서 빼앗거나 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내가 그동안 수도 없이 아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가서 예쁘게 주세요 하는 거야~ 뺏으면 안되는 거야~” 하지만 엄마의 말은 그저 잔소리 중 하나였거나, 엄마는 이미 만만한 존재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혼나는 경험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장애아이가 갖고 싶어 하니 다들 안쓰러운 마음으로 들어주거나, 간혹 불쾌해하며 무시하거나 하는 경험이 일반적이었는데, 같은 상황에 비장애 아이가 그렇게 버릇없이 굴었다면 다들 옳은 훈육을 했으리라 생각하니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비로소 나도, 아이도 깨달았다. 그날의 경험(?) 이후로는 아이와의 등산이 한결 수월해졌고, 아이도 무조건 뛰어가기보다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등 발전된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좋은 마음으로, 혹은 동정으로 하는 일들이 사실은 더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때가 있다. 나는 장애, 비장애를 떠나 하면 안 되는 행동, 옳지 못한 일에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물론 장애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장애아동의 부모 중에서도 장애아이니까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또한 아이를 망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르지만 또 똑같은 아이 아니겠는가. 정의와 예의, 옳고 그른 일을 가르치는 데는 장애 여부가 필요치 않은 것 같다. 


전은영 울산장애인부모회 동구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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