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국경(露滿國境) 분수령(分水嶺)

배성동 시민/소설가 / 기사승인 : 2021-08-23 00: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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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범 망명 보고서(18)



만주족 유랑극단 쇼냐

밤늦은 시각에 만주족 여자가 외출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어딜 가는 걸까? 혹시 훈춘 관헌이나 일본군과 내통하는 밀고꾼일지 모른다. 이반이 여자 뒤를 밟았다. 만주족 여자가 가는 곳은 미륵촌 변두리였다. 낯선 이와 귓속말을 주고받고 나온 그녀가 주변을 살폈다. 이반은 눈길을 떼지 않았다. 여자는 치마 속에 무언가를 감췄다. 흔히 밀수꾼 여자는 치마 속에 아편이나 보석을 감춘다. 심할 경우에는 자신의 비밀병기인 음부 속에 감쪽같이 감춘다. 드물게는 암호문이 적힌 기밀이거나 세균을 콘돔 속에 숨기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라면 기밀을 탐지하는 첩보원으로 의심할 수 있다. 만약 첩보원이라면 살려둘 수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세계가 이 바닥 아닌가. 객점으로 돌아온 이반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리에 지켜봤다. 


눈은 쉽사리 그치질 않았다. 어차피 눈이 그칠 때까지 발이 묶여 있어야 했다. 만주족 여자를 뒷조사하던 중에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 만주족 삼림마을에 병든 이리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었다. 거기다 청일전쟁 이후 잠잠하던 돌림병 소문도 들렸다. 가장 무서운 돌림병은 엔과 괴질이었다. 엔은 페스트고, 괴질은 호열자(虎列刺)였다. 두 돌림병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잠복기간이 불과 2~3일로 전염이 빠르고, 걸리면 예외 없이 죽는다는 점이었다. 더구나 돌림병에 대한 지식이 없는 만주 산림지역에 퍼지면 사람들은 거의 죽는다. 삼림마을 사람들은 그 돌림병이 어떤 병인지도 모르고 피를 토하거나 잿빛 설사를 하면서 죽어갔다. 돌림병이 한창 만연할 무렵엔 수십 마리나 되는 이리 떼들이 돌림병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뜯어먹는 일도 벌어졌다. 


밤이 되자 내리던 눈이 그쳤다. 적설량으로 봐서는 내일쯤이면 만주족 객점을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반은 며칠 전에 넘긴 용골을 날셈하기 위해 노장이 있는 신식 목조 건물로 갔다. 노장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 한 잔 하실래요?”


이반을 본 만주족 여자가 불렀다. 그렇잖아도 출출했던 이반은 거절하지 않았다. 


“나, 아저씨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요. 사람 잡는 사냥꾼이죠?”


여자는 취해 있었다. 이반은 여자가 건네는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몸속에 들어간 고량주는 오장육부를 쥐어짰다. 


“아이참, 걱정 말아요. 나도 일본군 정말 싫거든요.”


술은 남녀를 가까워지게 했다. 곁에서 본 쇼냐는 볼수록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서커스로 단련된 날씬한 몸매에 백옥처럼 흰 피부는 갓 서른이 넘어 보였다. 그녀가 입은 만주족 전통복은 풍만한 가슴과 허벅지를 드러냈다. 


“저는 유랑극단 쇼냐예요. 철 지난 유행가 부르고 춤추는 약장수, 알죠?”


술에 취한 쇼냐는 스스로를 밝혔다. 쇼냐는 아라사 서커스 단원과 어울려 공연 다니는 유랑극단 단원이었다. 의원이나 약종상이 없는 변두리 산간벽지에서는 떠돌이 유랑극단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변두리 서커스단에 사람을 모아 놓고 차력이나 곡예 등 온갖 묘기를 보여주곤 했다. 젊은 여자와 마주 앉은 이반은 차츰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저는요, 호랑이 마술사예요. 호랑이도 가지고 노는데 아저씨 같은 싸움꾼쯤이야 아무것도 아녀요.”


이반은 엉뚱하게도 호랑이를 애완견처럼 다루는 쇼냐에게 정이 갔다. 술에 취한 여인이 어느새 자신의 품에 안겨 있었다. 여자의 입김이 차츰 뜨거워졌다. 목을 감은 여자가 착 달라붙자 감당하기 어려운 풍만감에 아랫도리가 불끈 섰다.
 

▲ ©문정훈 화가

 


호문산 호열곡(虎裂谷)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마당에 모였다. 쌓인 눈은 행군에 지장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추운 지방에 사는 북지 사람들은 털가죽을 즐겨 입었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 개털모자와 두툼한 바지에 각반을 차거나 짐승가죽신에 들메끈을 묶은 데 비해 쇼냐는 담비모자에 알록달록한 외투와 부츠를 신었다. 겨울 여자다운 맵시가 났다. 쇼냐를 본 권취문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반은 이전부터 알고 지내는 만주족 여자라고 얼버무렸다. 권취문이 사냥개를 쓰다듬고 있는 얀콥스키에게 다가갔다. 초라한 차림의 조선 사내들에 비해 얀콥스키는 모피 방한복에 가죽 장화로 단단히 준비해 있었다. 


“혹시 풍산개 아니요?”


얀콥스키는 자기네 말을 하는 낯선 조선인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아셨소? 조선 명견 풍산개요.”


조선병대 무관장교로 복무했던 권취문이 개마고원에서 맹위를 떨친 풍산개를 모를 리 없었다. 


“조선 사람이 풍산개 알아보는 거야 당연하죠. 어디서 구하셨소?”


“이반과 조선범 사냥 갔다가 데리고 온 거요.”


행렬이 미륵촌 객점을 나섰다. 소가죽 행랑을 울러 맨 이반이 앞장섰다. 이반이 소지한 총은 노일전쟁에 참전할 당시 사용하던 군용 총이었는데, 제대군인이 많은 연해주 남부에서는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얀콥스키가 소지한 사냥총은 러시아 수렵용 대구경 윈체스터였다. 그와 출렵을 나갔을 때 대호나 불곰을 한 방에 쓰러뜨리는 윈체스터의 위력을 보고 감탄했다. 쇼냐는 이반 뒷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바리바리 싸맨 행랑을 맨 조선 심마니 남녀, 그리고 사내들이 그 뒤를 이었다. 행렬은 얼어붙은 산굽이를 돌았다. 온통 하얀 눈에 잠긴 호열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반의 말로는 서쪽 계곡은 호문산 호열곡이라는 만주식 지명이고, 국경 너머에 있는 동쪽 계곡은 노어로 제국의 무덤이라고 했다. 


만주산림의 호열곡 골짜기는 습기 냄새가 강렬했다. 행렬의 거친 숨소리와 눈발자국 소리, 이따금 쌓인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산이 깊어질수록 짐승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눈 위의 발자국 흔적은 분수령으로 이어졌다. 발자국들은 쉽게 구분됐다. 뭉툭한 멧돼지 발자국은 푹 파였고, 작은 반달형 발굽 노루 발자국은 두 조각이 붙어 파였다. 두 발자국이 엉겨 붙어서 찍힌 것은 오소리 발자국이었고,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리며 찍힌 발자국은 족제비 발자국, 그보다 좀 크고 바로 난 발자국은 이리였다. 이리떼는 사냥감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잔인무도한 놈이다. 무작정 분수령 국경을 넘던 밀수꾼들이 이리떼에게 변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반은 이리떼가 먹다 버린 인골 조각 몇 점과 발겨진 옷자락을 수습해준 일이 있었다. 


그 뒤를 따라간 큰 발자국은 표범이었다. 호랑이 발자국보다 작았지만 네 발가락과 둥근 뒷 패드는 선명했다. 이곳의 맹주인 표범과 호랑이는 분수령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분수령을 꼭짓점으로 호열곡에 들어서면 만주범이 되고, 노국 땅으로 넘어가면 아무르범이 된다. 행렬은 표범 발자국을 따라 내처 올랐다. 호랑이는 계곡을 좋아하고, 표범은 주로 바위 지대를 선호한다. 표범은 자신을 추적하는 것을 눈치채면 몸을 숨긴다. 반면에 호랑이는 매우 교활하다. 호랑이는 사냥꾼이 자신을 쫓는 것을 눈치채면 우선 멀리 도망 갔다가 몰래 되돌아와서는 뒤에서 덮친다. 그래서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다.
 

▲ ©문정훈 화가

 

 

노만국경 분수령

분수령은 결코 높은 재는 아니었다. 아무리 부드러운 눈길이라도 힘겹긴 매한가지였다. 조선 심마니 청년은 자신의 여자를 챙겼고, 이반은 뒤따르는 쇼냐가 뒤쳐질세라 끌어주었다. 객점을 나선 지 한 마장 만에 노만국경 잿마루 분수령(해발 373m)에 올라섰다. 


“청국에서는 이 재를 분수령이라 부르고, 아라사에서는 제국의 령이라 하오. 여긴 전쟁 때마다 요충지였어.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요.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동해와 연결됐으니 그럴 만도 하지. 분수령을 놓치면 바다가 막히는 거요.”


분수령 꼭짓점에 올라선 이반이 일갈했다. 권취문은 국경지대를 굽어 살폈다. 산군(보리소프 고지)은 남북으로 뻗었고, 동서로 흘러내려가는 물길은 바다로 향했다. 그야말로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산은 스스로 물길을 내고, 물은 스스로 길을 낸다. 특히 물길이 흘러가는 노령 밀림 끄트머리에 드리워진 동해바다는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저승과 이승을 떠도는 삼도천 따로 없구려. 꼭 구만리 삼도천에 올라선 기분이요.” 


분수령은 만주와 노국을 관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탓에 항상 외침의 위협에 시달렸고, 호랑이 등뼈 산세는 외침을 막아냈다. 이 재의 별명이 제국의 무덤인 것도 침략했던 외침이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첩보전의 통로이기도 했다. 남쪽 연해주와 조선, 청국으로 통하는 지름길이라 첩보원을 비롯한 밀렵꾼, 아편 밀수꾼, 무역상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분수령 꼭짓점에 올라선 이반이 산 아래 놓인 노령 일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북으로 곧게 뻗은 저 땅이 노령 연해주입니다. 터 잡고 살아온 만주족들이 대부분이고, 고려인들도 사오. 이 땅을 통치하는 노군부대는 내륙에 들앉았오. 고려인 농사꾼, 금전꾼, 나 같은 사냥꾼도 더러 있소. 물론 사나운 범도 설치고, 이리, 불범도 돌아다니오. 멀리 보이는 해안가를 포시에토라 부르오. 고려인들은 주로 150리(60km) 포시에토 해안을 중심으로 모여 삽니다. 우리가 갈 연추는 동해바다를 따라서 두만강 가까이 있어요. 여기선 백 리 더 될 겁니다.” 


권취문은 이반이 가리키는 동해바다를 보았다. 연해주 최남단과 만나는 두만강 푸른 물줄기가 시야에 잡혔다. 그 너머 보이는 산천은 조선 땅이었다. 남의 나라 국경 꼭짓점에 올라서서 조국 산하를 보는 권취문의 마음은 심난했다. 예측할 수 없는 망명객의 삶은 위험이 불가피하다. 권취문과 조선별동대 대원들은 남녘을 바라보고 허리를 굽혔다. 뭇 중생들은 서로가 침범 하지 않고도 스스로 살아가는데, 오직 왜놈만은 그렇질 않았다. 조선을 강점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안겨준 불구대천의 원수 놈을 어찌 잊으랴. 분수령아, 백의동포 물리지 마라. 목숨 걸고 싸우다가 장렬히 묻히겠노라.

※ 이 글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배성동 시민기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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