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을 읽고

김수복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 기사승인 : 2022-04-18 0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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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이라고 사전에는 간단하게 정리돼 있다. 하지만 ‘결혼’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사전의 정의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결혼은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사유재산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시대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해 왔다. 그러기에 오늘날에도 정략결혼, 중매결혼, 연애결혼, 동성결혼, 계약결혼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결혼은 ‘인륜지대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지 오래다. 선택이 된 결혼의 구체적인 예가 ‘계약결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변광배는 그 계약결혼을 처음으로 한 사람들이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라고 이 책에서 소개한다. 그리고 그들의 계약결혼이 청춘 남녀가 결혼하기 전에 하는 단순한 실험적 성격의 결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이 자신들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재정립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으로 승화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문고판 크기로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다. 사르트르와 보루아르의 만남에서 계약결혼까지의 과정, 계약결혼 중에 찾아온 갈등과 위기의 순간들, 그리고 각자 계약결혼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사르트르의 <철들 무렵>과 보부아르의 <초대받은 여자>라는 문학작품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 관한 속도감 있는 전개는 그들을 알고 싶은 이들이 큰 부담감 없이, 하지만 가볍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만남은 1929년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지식의 깊이에 매료됐으며 그와의 논쟁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한다. 사르트르도 보부아르와 평등한 관계를 지향했으며 그녀가 자신에게 가장 맞는 여성이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여자가 결혼하기 위해 지참금이 필요한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그들이 맺은 계약결혼은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계약결혼의 일부 조건 또한 파격적이어서 많은 사람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계약결혼의 주요 조건은 “각자는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우연한 사랑의 권리도 인정하며,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저자는 이런 그들의 계약결혼 조건이 사르트르 철학의 주요 사유체계인 ‘자유’, ‘사랑’과 ‘언어’에서 나온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우연한 사랑에 대한 인정’은 각자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어떤 것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다’는 조건은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나의 존재근거를 알기 위해 타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대상은 나의 존재이유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한 사르트르의 철학적 사조에 의하면 계약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랑에 있어서 서로의 주체성을 보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주체성을 갖고 있던 ‘나’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그 주체성은 객체성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나’는 그가 사랑했던 ‘나’가 아닌 것이다. ‘언어’ 또한 그 대상이 가진 본질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설령 내가 설명한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타자에 의해 상황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의 계약결혼은 여러 차례 심각한 위기에 놓인다. 젊은 여성인 올가를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제자들과 관계를 맺는 등 각자의 여성편력과 남성편력은 잦아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50년 넘게 계약결혼을 끝까지 지켜낸다. 저자는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그들의 공통 관심사인 ‘말’, 즉 ‘대화’와 ‘글쓰기’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서로를 “나의 재판관”, “나의 검열관” 또는 “인쇄를 허가하는 사람” 등으로 불렀다. 그들은 각자 사유 체계를 정립하거나 자신들의 작품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서로 격렬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들의 계약결혼은 육체의 정열보다는 정신의 정열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의 주요 개념인 ‘대자와 즉자’, ‘내던져진 인간으로서의 주체성’, ‘나의 존재 근거를 알게 해주는 타자와의 관계’ 등 핵심 내용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 사르트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자신들의 계약결혼을 소재로 한 작품, <초대받은 여자>와 <철들 무렵>도 간단히 소개한다. 보부아르의 <초대받은 여자>는 실재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그리고 올가의 삼각관계가 배경이 된 작품이다. 주인공인 프랑스와즈의 행동은 보부아르가 실제 그들의 관계에서 느껴야만 했던, 여자로서 계약결혼에 관한 심리변화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사르트르의 작품 <철들 무렵>에서 남자 주인공 마티외와 여자 주인공 마르셀은 계약결혼을 한 사이인데 마르셀의 임신을 소재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여자 주인공 마르셀은 아이를 낳기를 원하지만 마티외는 낙태하기를 원한다. 당시 낙태가 불법인 프랑스 사회에서 낙태의 방법을 찾기 위한 남자 주인공 마티외의 행동은 계약결혼을 한 남성, 사르트르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들이 경험한 계약결혼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의 줄거리만 읽었을 뿐인데 여성과 남성의 근원적인 차이점이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두 작품의 줄거리를 잘 정리한 덕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들이 살아서 ‘하나-우리’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 죽어서 이뤄졌다고 말한다. 보부아르는 가족 묘지를 마다하고 사르트르 옆에 묻혔으며 그들 중 한 사람이 거론될 때, 자연스럽게 다른 이도 동시에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의 핵심은 사르트르의 사유체계 안에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나와 타자의 주체성과 그 주체성 간의 결합, “인간은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다”며 강조한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하지만 그것들이 불가능하며 실패할 것임을 알면서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생긴다. ‘나의 결혼생활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김수복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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