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금과 증여계약의 법리

박현철 변호사 / 기사승인 : 2021-04-19 00: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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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법률

오늘은 “증여”라는 계약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아래는 필자가 진행한 사건을 각색한 사실관계다(필자가 진행한 사건과 법리적으로는 동일하나 사실관계는 전혀 다름을 안내한다). A는 B와 학창 시절 동창이었는데, 평소 A는 B를 흠모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한 번도 표현하지는 못하고 지내왔다. B는 A에게 전혀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없었으며 오랜 소꿉친구로만 여기고 있었다.


성년이 된 후 B는 작지 않은 사업을 시작했고 열심히 몰두했으나 결국 수억 원의 빚만 남기고 폐업하게 됐다. 반면, A는 전문직 종사자로 수백억 이상의 상당한 재산을 축적하고 있었는데, 평소 흠모했던 B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B에게 만나자는 전화를 먼저 했다.


오랜만에 술 한 잔 하며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하던 중 B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을 A에게 고백하게 됐고, 이때다 싶었던 A는 평소 B를 흠모했던 마음을 은근슬쩍 표현하며 B에게 수억 원의 채무를 자신이 대신 변제해 주겠다고 했다.


B는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그럴 수는 없다며 한사코 반대했으나, A는 내게 그 정도 금액은 그리 큰돈이 아니라며 B의 통장으로 수억 원을 입금했다. B는 불편한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으로 A의 호의를 받아들였으며 겨우 강제집행이나 채권추심 등의 어려운 상황을 탈피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다시금 작은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몇 주 뒤, A는 갑작스레 B에게 혼인해 줄 것을 요구했다. B는 갑작스러운 A의 요청에 오히려 부담감을 느꼈고 연락을 피하게 됐다. 그러던 중 A로부터 자신이 변제한 수억 원이 대여금이었으며, 혹여 대여금이 아니더라도 자신은 B에게 ‘다시는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어 증여를 한 것’인데 B가 개인 사업을 다시 시작했으니 계약위반이라며 이미 증여한 돈을 돌려놓으라는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자, 사건의 쟁점은 어떻게 될까?


첫째, 대여금의 인정 여부. 이와 관련해 우리 판례는 ‘당사자 사이에 금전의 수수가 있었다는 사실에 관하여는 다툼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대여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피고가 다투는 경우 대여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대법원 2014.7.10. 선고 2014다26187 판결 참조)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다. 단순히 금전이 오갔다고 해 이를 소위 ‘빌려준 것이다’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위 상황과 같이 A가 B에게 호의로 단순 증여를 했을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 채무를 변제했다고 볼 수도 있으며, 물품 대금으로 판단할 수도 있는 ‘금전 수수의 사실’을 무조건적으로 대여금 계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만일 대여금을 주장하려면 원금, 이자, 변제기 등을 기재한 차용증 등이 제출돼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여금 부분에 대해서는 이를 입증할 원고 측의 증거가 없으므로 기각을 구했다.


둘째, ‘사업을 다시는 하지 않기로 했는데 사업을 다시 했으니 계약을 위반한 것이며, 이에 반환을 청구한다는 주장’의 인정 여부. 이와 관련해 원고 A측은 민법 561조 상의 부담부 증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부담부 증여란 증여를 받는 쪽에서 일정한 행동을 하거나 혹은 일정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본 사안처럼 ‘사업을 하지 않기로’ 계약을 했으나 ‘사업을 했기 때문에’ 증여계약이 해제된다는 것을 일종의 “해제조건부 계약”이라고 한다. 즉 어떤 사실이 발생하는 경우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상대방이 별도의 의무를 부담하는 약정을 하였는지는 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원하는 대립하는 의사가 있고 그것이 말 또는 행동 등에 의하여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외부에 표시되어 합치가 이루어졌는가를 확정하는 것으로서 사실인정의 문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그 존재를 주장하는 자가 증명하여야 하는 것이다’(대법원 2010.5.27. 선고 2010다5878 판결 참조)라고 판례는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업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계약에 대해 B가 명시적 혹은 묵시적인 의사표시로 계약이 체결됐는지를 A 측은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충분한 증거가 없었기에 기각을 구했다.


결국, 1년 이상의 소송 기간이 진행되며 원피고는 치열하게 위 계약의 존재 여부에 관해 다퉜고 수천 개의 문자 내역, 수십 시간의 통화 내역을 전부 분석한 결과 필자 측에서는 대여금이라든가 부담부 약정을 한 사실이 없음을 반증해 승소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히 금전의 수수가 있었다고 하여 대여금을 반환하겠다고 찾아오는 의뢰인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단순한 금전 수수 행위만으로는 대여금을 입증할 수 없다. 따라서 누군가 급전이 필요하다며 금원의 대여를 요청할 때는 문자나 전화 통화상으로라도 원금, 이자, 변제일 정도는 합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박현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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